궁극의 USB Gadget

2007.12.19 17:44
USB... Universal Serial Bus 였던가. 여하튼 데이터 전성과 전원공급을 모두 하면서 무슨 IT 기기든 USB 포트에 꼽으면 바로 동작하는 진정한 Plug & Play를 실현한 훌륭한 물건이다.

그런데,


...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OTL...

수년전의 쌤쑹 물티태스크 3000인가 하는 동영상에 이어서 최고의 패러디로 인정. 유럽사람들이 원래 이런 블랙 코미디에 익숙한가보다.  ㅡ_ㅡ;;;


P.S. 웹사이트도 진짜다. www.usbw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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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캐나다 최초'의 안드로이드를 만든 중국계(아마도) 연구자가, 사실은 로봇 연구에 있어 '세계 최초'의 업적(?)을 세웠음이 드러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우선 닥치고 동영상 한편.
 

[○] 다 봤으면 한번 생각해보자.



... 뭐 그래도, 이 홍보용 사진은 참... 만든 사람의 취향을 참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국경을 뛰어넘은 덕후의 힘! May the (police) force be with you!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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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우리나라의 폰 케이스 업체 중 가장 내게 점수를 따고있는 Cozip 에서, 아이폰 폰케이스를 출시해서 수출(only) 한단다. 열심히 잘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림을 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다음과 같다.

Cozip iPhone Case
Cozip iPhone Case

Cozip iPhone Case
Cozip iPhone Case

아주 깔끔하게 잘 디자인된, 훌륭한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바로 다음 순간, 애플 로고를 보여주기 위해서 뚫어놓은 저 구멍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애플의 iPod이나 iPhone은 그냥 '디자인'이 최소화된 '기능' 부분일 뿐이고, 나머지 '외양', '성능' 부분은 다른 제조회사에서 케이스나 스피커 등을 부가해줌으로써 완성되는 구도를 지향해 왔지만, 역시 애플의 사과 로고는 과거 "디자인=브랜드"라는 걸 추구했던 때와 달리 디자인 이상의 브랜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NY Times의 Pogue 동영상에서 다음 장면에 나왔던 "Ah... Is there an apple logo?" 이라는 촌철살인의 대사를 기억해 본다면, 요즘 세상에 진정한 브랜드 파워라는 것이 어디에서 나와서 어떻게 커가는지를 좀 곱씹어 고민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Okay then with apple logo

Pogue 동영상 리뷰로는 특이하게도 YouTube에 올라오지 않은 이 동영상은 원 출처를 링크해 두었으니 재미삼아 한번 보시기를.
The iPhone Challenge: Keep It Qu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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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지난번 CHI에서 있었던 "Who killed design?" 이라는 패널 토론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2가지 잘 알려진 해석이 "design"과 "Design"이라는 식으로 구분된 적이 있다. (물론 디자이너들은 대문자 "D"로 시작하는 쪽을 추구한다는 식이다.)

  • design: styling / cosmetic / decoration / product of designing
  • Design: designing / communication / process of designing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약본을 전 회사에 두고왔... OTL...) 대충 이런 식의 오만하고 비논리적인 구분이었던 것 같다. 뭐 이런 식의 현상이야 디자인 외에도 예체능계나 인문계나 이공계나 늘상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딱이 어느 그룹만 힐난받는 건 불공평하다 하겠다. (일례로, 전산학과 졸업생에서 프로그래머와 개발자의 차이에 대해서 질문해보면 된다. 가끔은 개발자와 developer의 차이에 대해서도 모종의 구분이 있는 듯 하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 되겠다.)

얘기가 아예 삼천포에서 출발한 듯. 어쨋든 제목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소위 "D"esign, 즉 디자인 행위 자체에 대해서 였다.

그리고, 기왕 삼천포에 온 김에 덧붙이자면, Web 2.0은 웹으로 인한 시대조류의 변화일 뿐 웹 그 자체의 뭔가가 아니므로, 이 글도 웹디자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건 마치 플러스펜이 출시되어 인기를 끌자 '플러스펜 디자인' 같은 말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Web 2.0은 대세지만, 웹디자인이 그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Web 2.0이 나오기 훨씬 전에도, 디자인 계에서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 '사용자 참여적' 디자인 등의 개념이 있어왔다. 한동안 주부평가단을 만들어보고, 설문지를 돌리고, 의견을 묻고 하다가, 그게 또 아닌가 싶어 사용자를 회의실에 앉히고, 관찰할 수 있는 방에 앉히고 그러다가, 요즘 유행은 역시 나가서 사용자의 서식지 -_- 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개념의 다소 급진적인 움직임으로 등장했던 것 중에는, 사용자가 직접 디자인하게 한다..는 개념이 있었다. 수많은 디자인 학과에서 학생들에 의해서 제안되었던 부질없는 아이디어들은 건너뛰고, 몇년전부터 성공적으로(추측이다. 여하튼 계속 운영하고 있는 걸 보면) 실제 사용자 중심..이 아닌 그냥 '사용자의 디자인'을 허용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Nike ID. (http://nikeid.nike.com/)

Nike ID Studio

그리고 Mini Cooper. (http://www.miniusa.com/#/build/configurator/mini-m)
Mini Cooper Configurator
 

그리고 오늘 하나를 더 발견했다. 참으로 Web 2.0 시대... Wikinomics 혹은 Crowd-sourcing 개념에 부합되는 '디자인' 웹사이트랄까.

ReDesignMe.org
redesignme.org screenshot


물론 예전에도 나쁜 디자인(정확하게는 불편한 디자인)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가 있었지만 - 대표적인 사례가 Bad Human Factors Design 이 되겠다 - 이 경우엔, 동영상 리뷰를 올릴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사이트 제목처럼 'Redesign'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직 활성화되어 있는 부분은 이전의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만일 오른쪽 단의 재디자인 제안..부분을 활성화하고, 그 내용을 직접 의사결정의 소재로 삼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많은 바보같은 디자인이 이런저런 핑계로 채택되지 않고 대중이 원하는 디자인은 선택.. 아니, 그야말로 스스로 디자인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어느 회사든 한쪽 구석에 이런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그 재디자인을 직접 채용하지는 않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복잡할게다) 다음 제품을 만드는 데에 발판으로 삼거나 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참여와 나아가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꺼다.

Web 2.0 시대는, 소위 전문가들에게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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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퇴직기념(?)으로 팀원들이 준 선물이 iPod인 덕택에, 지난 며칠간 iTunes-iPod ecosystem을 벤치마킹 하느라고 푹 빠져 살았다. (iTunes가 먼저 나오는 것에 주의. ㅎㅎ ) 그러다가 문득 요약 transcript만 읽고 넘어갔던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대화가 생각 나서 전체 동영상을 Podcast로 받아서 들어봤다.

지난 5월말 있었던 이 대화는 - 비록 이발소 의자에 앉아서 진행되기는 했지만 ^^; - 참...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MS와 Apple.. 아니 각각의 대표주자인 게이츠와 잡스의 증의 관계와 서로 다른 관점이 드디어 어느 정도 수렴되는 모습을 보인 자리이기도 했고, 그 UI에 대한 특허분쟁이 적어도 법적으로는 마무리된 상태에서 최초로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함께 일을 하던 두 사람의 한 사람(잡스)은 아직 현역 엔지니어의 모습으로, 한 사람(게이츠)는 CEO의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IT 분야의 커리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transcrpt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28분쯤에 나오는 잡스 형님의 코멘트다.

"You know, what's really interesting is, if you look at the reason that the iPod exists and Apple's in that market place, It's because this really great Japanese consumer electronics company, who kinda owned the portable music market - invented it and owned it - couldn't do the appropriate software. Cause iPod is really just softwares; software in the iPod itself, software on the PC or Mac, and software in the cloud(=인터넷) for the store. And it's in the beautiful box, but it's software. If you look at what a Mac is; It's OS X. It's in the beautiful box, but it's OS X. And if you look at what an iPhone hopefully be; it's software. And, So, the big secret about Apple - of course, not so big secret maybe - is Apple views itself as software company."

그리고 사회자(Mossberg인 듯)가 "하지만 많은 고객들은 당신 회사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잘 조합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하자.

"Alan Kay had a great quote back 70s, I think, he said; 'People that loves software, wanna do their own hardware'."

... A. Kay의 이 인용구는 전의 글에서도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 맥락에서는 얼마나 자신감이 충만해 보이는지...

어쨋든 MS와 Apple을 비교하면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나름대로 "software in the beautiful box"라는 표현은 이후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뭐 우선은 그 자리에 있던 Apple의 hardware designer들이 '때려칠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고, 많은 consumer electronics company들이 '그럼 어쩌지...'라는 고민을 시작했(어야 한)다.

이전 회사에서 배운 것 중에 "업(業)의 개념"을 올바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있다. Xerox는 복사기 회사가 아니라 'Documentation 회사'로 스스로를 정의함으로써 광학적 문서보관 시스템이나 문서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고, Sony도 가전기기 제조업체가 아니라 entertainment 업체로 재정의하면서 컨텐트(영화/음악) 분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비록 두 회사가 모두 그 이후에 큰 빛을 못 보고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ㅠ.ㅠ ) "업의 개념"이라는 말의 유행은 상당히 오래전에 지나간 듯 하지만, 그런 유행과 상관없이 수십년 전부터 몸소 입증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어쨋든, 이 대화(panel discussion?)를 듣다보니 오히려 MS는 hardware에 집착을 보이고, Apple은 software & service에 중심을 두고 있어 각각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이 분야의 다른 key player들은 각각 무엇을 중심으로 어떤 회사가 되어갈지 꽤 흥미진진하게 생각하고 있다.



P.S. 동영상에서 하나 더 재미있는 대목... 50분쯤. 사회자가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꺼냐고 물어보았을 때, 굉장히 곤란해 하면서 말을
       돌린 농담 한마디다. (Apple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인 듯 ㅎㅎ)
       "Isn't it funny it ships that leaks from the top?"

P.S. 1시간이 지나면, 잠시동안 UI의 미래에 대한 두 사람의 비슷하지만 다른
       코멘트(그야말로 동전의 양면)가 나온다. 그동안 일하면서 생각한거랑
       과히 다르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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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었나... 여러 가상세계 상에서 avatar를 공유하기 위한 - 즉, 하나의 아바타로 여러 월드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 연구가 진행 중이란다. 사실 연구라기보다는 '협약'에 가깝겠으나... 여하튼 가상세계라는 것이 웹사이트만큼 많아지고, 캐릭터라는 것이 ID만큼 많아지는 세상이 진짜 올지도 모르겠다. 이건 한동안 유행했(다가 실패했)던 통합인식 ID와 흡사한 흐름이잖어...

사실 virtual world에서 캐릭터를 만들 때의 심정은 ID를 만들 때의 심정과 조금 달라서, 여러가지 캐릭터를 만들어 여러가지 인생(?)을 즐기고 싶은 게 당연하다. (ID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 있나? 그 차이는 역시 '각자 자아가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하느냐 '대체적인 자아를 통한 비일상적인 이벤트를 즐김'을 목적으로 하느냐의 차이일까? 여하튼) 그렇다면 Universal Avatar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기는 하다.

아래는 BBC 뉴스의 해당 기사 전문. (이렇게 퍼나르다가 언젠가 혼날 듯...)


관련 웹사이트랄까... http://virtualworlds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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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한 작품의 파급력

2007.09.27 12:49

How Star Wars Changed the World (2005.5. Wired Issue 13.05)

오른쪽 아래 미니맵을 클릭하면 확대된다. 그래도 안 보이면 아래 URL로 보기.
http://www.wired.com/wired/archive/13.05/images/map.swf


The Blade Runner Nexus (2007.9. Wired Issue 15.10)

왼쪽 메뉴를 선택하면 해당 항목이 보인다. 글씨가 안 보이면 아래 URL로:
http://www.wired.com/images/flash/RS_BL.swf


Wired Magazine에서는 가끔 이런 그림을 보여준다. Geek에게도 hero가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이거야 원 주눅 들어서 살겠나. 쩝. (그러면서도 기를 쓰고 찾아내서 은근슬쩍 스크랩하는 이유는 뭔데!)

p.s. 혹시나 해서 Peter Jackson 연대기도 찾아봤지만, 적어도 wired에는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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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http://www.asktog.com/columns/070iPhoneFirstLook.html

위 Tog 본인의 글에 따르면, pinching gesture 자체를 자기가 Sun Microsystems에서 일하던 시절 고안해서 동영상으로 만들었다가 영상의 길이 때문에 짤리고(Starfire Project, 1992), 몇년 후 자기 책에서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Tog on Software Design, 1996, p.78)

Pinching Gesture
Hiroshi pops up the display on his notebook and pinches his workspace, shrinking it by 20 percent to reveal an abstract map of the room with an icon for each system in it. He slides the icon representing the new data onto Julie's computer.

이 사람이 Apple에서 일했던 것이 1978~1992년이니까, 아이디어가 먼저든 뭐든 특허도 안 냈다고 하고... 사실 동영상 만들어서 특허를 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저 그림도 gesture를 말할 뿐 multi-touch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지는 않다.

여하튼 위 원글에서 Tog도 결론내리듯이, 이 모든 UI 상의 발전들이 다양한 fidelity를 갖고 분야 내에서 발전되어 왔다는 것은 여러 관점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closed circle인 UI 분야에서의 public UI라는 생각도 들고 뭐 그렇지만(머릿속에 정리가 안 되고 있음), 다른 한편으로는 뭐 아이디어 먼저 내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있는 아이디어 잘 조합해서 실용화를 위한 특허를 내고 상품화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역시 정리가...)



P.S. 저기 책에 나왔다는 문구의 'Hiroshi'가 혹시 그 Ishii 교수인가 해서 찾아보니, Ishii 교수는 1992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일본에 쭈~욱 있었던 것 같다. NTT Human Interface Lab.에서 뭔가 tangible UI 관련 작업도 한 것 같고... 그렇다면 학회에서 만났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인연으로 이름을 싣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UI의 사용자가 Hiroshi라는 것은 우연같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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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이 글은 2005년 사내에서 게재했던 컬럼을 옮긴 것입니다. 아직 공개여부를 확인받지 못했으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분께서는 저자의 서면동의 없이 이 글의 참조나 인용이나 등등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편에서 대중 인터페이스는 인간 대중의 UI 개선 활동이라고 일단 정의했으나, 사실 이때의 UI 개선은 단순히 사용편의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훨씬 다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는 대중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 혹은 가질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 가치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집단이기주의로 이해될 수도 있으며, 평소 개개인으로 관찰될 경우에는 이성과 상식의 베일에 가려진 인간의 본성이 대중 속 익명의 개체를 통해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집단이기주의의 경우 해당 대중이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를 단체로서 규정하고, 단체 안에서의 의견을 규합하여, 이를 단체의 공식적인 의견으로서 대내외로 표출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이는 대부분 장기적인 사회현상으로 다뤄질 수 있고, 다양한 규모의 문화/준문화 권에서의 관점의 차이를 다루는 문화적 UI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 묘하게도, 대중 인터페이스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이 문화적 UI라는 연구 주제에 대하여, 필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자.  =_=a;;

하지만 대중 속에 묻힌 개체의 익명성에 기인한 행동은 이보다 훨씬 단기적으로, 아니 주로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익명적 행위’는 행위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으리라 생각되는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반사회적이거나 파괴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때의 익명성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 즉 그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주변의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 행동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동참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하여 그 행동의 결과를 행위자로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고 있을 때에 성립되는 것이다. 길거리 광고판의 모델 얼굴에 씹던 껌을 붙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 행위를 제지할 마음이 없었을 테고, 그 행위를 한 사람 역시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뭔가 개인적인 일로 화가 나서 공중전화 부쓰를 발로 찬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의 제지를 받기는커녕 함께 발길질을 해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익명적 행위는 그러한 행위가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듯 하지만, 조금만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너무나 명확하게, 피해자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행위인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행위에서 피해자는 광고판을 관리하고 청소해야 하는 사람이나 공중전화 부쓰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일 수 있고, 혹은 그 광고 모델을 좋아하기에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상한 다른 행인이나 공중전화를 사용하려다가 깨어진 유리 조각에 손을 벤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이러한 가능성과 사례를 제시하면서 익명적 행위를 비난하고, 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피해자가 인간이 아닐 때는 어떨까?


2. 인간들, 로봇을 만나다.

지난 수년간, 대중 소비자에게 최초로 상용화되는 로봇은 청소 로봇임이 명확해졌다. 미국 iRobot社의 진공청소기 로봇인 Roomba가 2002년 발매 이후 미국에서만 100만대 이상 팔려나가면서, 청소 로봇은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가정용 로봇으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꿈 같은 로봇 세상에 대한 많은 가정과 우려가 무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은 어느 순간 로봇은 우리 가정에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간을 공격하기에는 로봇이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인간은 로봇을 집안에 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 여기에 대한 궁금증에서, 2004년 3월 삼성종합기술원 HCI Lab. (현재의 Interaction Lab.)에서는 당시로선 가장 고도의 지능을 갖춘 청소 로봇들을 사무실에 설치하여 청소를 하게 하고, 이에 대한 연구원들의 반응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IT 분야에서 다년간 종사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일부 연구팀은 가정용 로봇을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상당히 편향된 대상이었지만, 사실은 ‘우리도 외국 연구소처럼 로봇 풀어놓고 일해보자’는 욕구가 컸기에 그런 문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P

이 로봇 방목 퍼포먼스(?)에 사용한 청소 로봇은 Karcher社의 RoboCleaner RC3000으로, 당시 시중에 나와 있던 청소 로봇 중에는 유일하게 적외선 항법장치를 이용한 자동 충전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다른 모델의 청소 로봇들은 자동 충전을 지원하지 않거나 그 방식이 원시적이어서, 비교적 넓은 연구실 환경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다.

Karcher RC3000



가동 후 첫 며칠 – Exploratory

RC3000 in action
로봇이 연구실 한편에 설치되어 가동을 시작하자, 곧 연구원들은 모터 소리를 내며 책상 사이를 누비는 이 귀여운 물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보인 행동은 그 기능성에 대한 것으로, 특히 장애물에 부딪혔을 경우의 반응(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에 관심을 갖고 발로 진행방향을 가로막는 행동을 보였다. 사실 로봇은 진행 중의 충격을 분석하여 주변 지형을 파악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로봇의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개미의 진행방향을 방해하는 장난과 같은 행동을 한 후에야, 사람들은 로봇의 본래 기능 – 즉 청소기로서의 성능에 관심을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작은 쓰레기를 그 진행방향에 놓아두고 제대로 빨아들이는가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소 로봇이 충전기 base station을 떠나 필자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연이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예상(혹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기는 했으나, 그 유형은 전혀 뜻밖이었다. 복잡한 랩의 배치를 고려할 때 충전기를 찾지 못해 어딘가에서 방전된 채로 발견되리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고, 가장 큰 문제는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장애물임이 드러났다. 이 시도의 대상이 된 장소는 아래 도면과 같이 80여명의 연구원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곳으로,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일반 가정집처럼 장난감과 신문과 같은 장애물이 바닥에 널려있지 않으므로 로봇이 활동하기에는 오히려 좋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소 로봇 구동을 시작한 당일, 로봇의 ‘실종사건’은 1시간에 한번 꼴로 발생했다. 필자는 연구실 어딘가에서 잠적해 버린 청소 로봇을 찾아 허리를 굽힌 채 연구실 구석구석을 몇 번이나 뒤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연구실 곳곳에 설치된 배선용 ‘쫄대’를 넘지 못해 얹혀진 채 멈춰있는 로봇을 자주 발견하게 됐다. 사람에게는 그냥 바닥과 마찬가지로 밟고 다니는 설비가, 로봇에게는 넘지 못하는 장벽이 된 것이다. 배선용 쫄대는 연구실 곳곳에 수십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번번히 로봇을 ‘구조’하기 위해서 출동할 순 없었기 때문에, 가급적 로봇 스스로가, 혹은 주변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청소 로봇은 기계적으로 완성된 형태였기 때문에, 로봇에 지렛대나 스프링과 같은 부가적인 장치를 달아 스스로 쫄대를 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실패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Kick Me If I’m Stuck.” 이라는 표시가 부착되었다. 이로서 로봇이 쫄대 위에 얹히게 되었을 때 주변에 앉아있던 연구원이 발로 밀어주어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청소 로봇이 사무실 환경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는데, 그것은 연구실 정문에 설치된 자동문이었다. 민감한 움직임 감지 센서에 의해 구동되는 이 자동문은 청소 로봇이 문을 향해 접근하면 절묘한 타이밍으로 문을 열어 주었고, 따라서 로봇이 스스로(?) 연구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봇의 ‘실종사건’에 비해 ‘가출사건’은 로봇이 스스로 새로운 기능을 한다는 면에서 뭔가 기특해 보이는 면이 있었고, 가동 3일째부터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밖으로 나가는 로봇을 연구실 안으로 되밀어 주기 시작했다.

가동 일주일째 – Curiosity
첫 가동 후 일주일 동안은, 청소 로봇에 대한 연구원들의 기대가 조정되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경우 로봇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만족되지 못하고 실망을 주었으나, 몇몇 기능의 경우엔 오히려 기대 이상의 성능에 크게 기뻐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반응은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나 그렇지 않은 연구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났는데, 청소 로봇의 구조와 기능적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연구원들조차도 그러한 기능들과 환경의 조합에 의해 로봇이 어떠한 문제를 우연히 해결하게 되면 감탄을 마지 않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봇의 행동 패턴에 대한 갈채와 야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고 있었다. 입구가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가 몇번의 시도 끝에 성공적으로 빠져 오는 모습을 본 연구원은 로봇의 단순한 기능(벽에 부딪히면 튕기는 방향으로 돌아 진행한다)의 미학에 대해서 칭찬했고, 결국 빠져 오지 못하고 배터리가 방전되어 멈춰있는 모습을 본 연구원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을 비난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해 로봇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은 특히 그 소음에 대한 반응에서 두드러졌는데, 복도 쪽에 앉아서 로봇의 소음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그 소음이 시끄럽다고 느꼈고, 복도 쪽에서 멀리 앉아 있기에 가끔 로봇이 왔다가는 정도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괜찮은 정도의 소음으로 인식했다. (참고로 사용된 청소 로봇의 소음은 약 54db로, 사람이 대화할 때의 목소리 크기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대신 청소 로봇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자리의 사용자들은 청소 로봇이 가까이 왔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있었다. 결국, 로봇에 대한 각 사용자의 조정된 기대치는 서로 달랐지만, 실제로 로봇을 접하면서 원래의 상상하던 것에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기대 조정 기간을 거치자, 연구원들은 청소 로봇에 대한 각자 나름대로의 모델을 가지고 로봇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행동을 했던 연구원 S씨는 항상 청소하러 다니는 로봇의 튼튼함에 대한 믿음과 기특함에 대한 나름의 표현으로 (본인의 주장) 로봇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동문 바깥으로 나가려는 로봇을 다시 들여놓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던 것 같지만, 이후엔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걷어차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S씨 외에도, 로봇과의 생활이 장기화되자 그 소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불평하는 연구원들이 점차 늘어서 필자에게 ‘실험’의 목적과 기한을 묻는 연구원들이 매일같이 있었다.

가동 보름째 – Sympathy
가동을 시작한지 보름이 넘도록 로봇에 대한 연구원들의 반응이 안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필자는 다음 연구실 도면의 (A) 위치에 있던 로봇을 (C)로 옮기고 새로 한 대의 로봇을 (B) 위치에 추가 설치하여 모두 2개의 청소로봇이 연구실을 돌아다니도록 했다. 이로써 연구원들이 로봇과 만나 상호작용할 가능성도 2배로 늘고, 따라서 로봇에 대한 호감이든 반감이든 보다 빨리 그 반응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연구실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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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동 3주째를 맞은 3월 23일, 연구원 누군가가 그림과 같은 종이컵과 쪽지를 로봇에 부착했다. 쪽지의 내용은 “저는 24시간 청소만 하는 불쌍한 로봇입니다. 여러분의 조금한 정성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되어 있었으며, 요컨대 청소 로봇이 익명의 사용자에 의해서, ‘앵벌이 로봇’으로 기능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쪽지를 붙인 누군가는 일부러 ‘조금한’과 같은 잘못된 한글을 사용하여 앵벌이 소년의 안내문을 적절히 패러디하고 있었다!)  이 종이컵은 사실 로봇의 충전기 진입을 어렵게 했기에, 필자는 종이컵 윗부분을 잘라내어 로봇이 앵벌이 기능과 청소 기능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필자가 넣어둔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시작한 로봇의 앵벌이는 이후 일주일만에 480원으로 늘어났고, 이후엔 점차 ‘수금’되는 액수가 줄어 약 3주 후에는 아무도 동전통에 돈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1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이기에 때로는 동전통이 무거워 충전기에 올라가는 것을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마도 세계 최초로 스스로의 노동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얻는 ‘앵벌이 로봇’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주로 ‘얼마나 버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 많기는 했지만. -_-a;;

3월 28일, 마침내 소음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이 접수되었다. 한 연구원이 포스트잇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적어 로봇에 부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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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얘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청소…), 역시 ‘소리’ 문제가 해결되야 할 거 같구요. &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라 사실 상당히 신경이 쓰입니다. 좀더 익숙해지면 괜찮을지 :) 옆에 오면 깜짝깜짝 놀라요.”

이전부터 로봇에는 “저에 대한 의견을 포스트잇으로 붙여 주세요~ :)” 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 의견이 게시된 것은 이 경우가 처음이었다.

가동 한 달째 – Empathy
애당초 HRI (Human-Robot Interaction)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한 퍼포먼스인 이상, 이 일이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명확한 반응이 나오는 시점에서 그만두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따라서 앞의 쪽지를 접수하고 종료를 계획하던 중,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 연구원이 자신의 자리 옆의 복도를 가로지르는 쫄대에 종이 빗면을 부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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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복사용지로 만든 이 빗면 덕택에 로봇은 쫄대에 걸리지 않았고, 연구원은 덜덜 소리를 내며 쫄대에 걸려 있는 로봇의 엉덩이를 차주기 위해 일어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연구원이 로봇이 쫄대에 걸려있을 때의 소음이 시끄러워서 그랬는지, 그렇게 얹혀 있는 로봇이 불쌍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로봇에게 불편한 환경을 사용자가 스스로 개선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의 현상이었고, 또 빗면을 설치함으로써 몇몇 개인 사용자에게만 미치던 불편함을 줄이면 전체적으로 부정적 반응이 줄어들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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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3월 31일부터 가동한지 만 한 달이 되는 4월 1일까지, 얇은 플라스틱 판(제본용 반투명 표지)을 휘어서 만든 튼튼한 빗면이 연구실 길목에 있는 대부분의 쫄대에 설치되었고, 이 과정에서 청소 로봇이 앵벌이로 벌어들인 돈이 일부 사용되었다. 앵벌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익명의 연구원에 대한 경의로, 모금함에는 “모금액 480원은 장애로봇을 위한 빗면 설치비용으로 사용됩니다. 감사~” 라는 메시지가 부착되었다. 물론 실제로 연구실 내 수십 곳에 설치된 배선용 쫄대 모두에 빗면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30여 개의 빗면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장당 180원짜리 플라스틱 판이 15장 이상 사용되었다. (총 2,700원) 여기에 업무시간이 끝난 후 쫄대를 찾아 다니며 하나씩 빗면을 설치한 필자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계산은 맞지 않았으나, 이런 메시지와 환경의 변화가 또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 interaction으로 여겨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비록 제대로 횟수를 적어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빗면을 설치하기 전에는 로봇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아 쫄대에 얹혀 있는 로봇들을 찾아 ‘구조’한 것이 하루에 3~4회이고, 이외에도 연구원들이 도와준 횟수도 상당했으나, 빗면 설치 후에는 ‘구조’ 횟수가 반 이하로 준 것은 물론 쫄대에 걸려 있는 것보다 배터리 방전으로 구석에 멈춰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빗면을 설치함으로써 로봇이 연구원을 귀찮게 하는 일은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이 실험(?)은 언제 끝나느냐’고 묻는 연구원도 많이 줄었다.

가동 한 달 반째 – 설문조사
의외의 해결안을 통해 로봇과 연구원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훨씬 자연스러워 졌으며, 연구원들이 방전된 로봇을 충전기에 가져다 놓는 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필자의 로봇 ‘구조’ 활동은 3~4일에 1번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로봇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고 귀찮게 하지도 않게 되자,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이제 로봇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 퍼포먼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필자는 이 시점이 청소 로봇에 대한 안정된 관점이 생긴 시기라고 판단하고, 퍼포먼스를 종료하기에 앞서 4월 20일경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청소 로봇에 대한 관점을 조사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로봇이 활동했던 연구실에 근무하던 70여명의 연구원 중에서 설문에 응한 사람은 44명으로, 원래 여성이 적은 연구소였기 때문인지 여성 응답자는 8명뿐이었다.

별 생각 없이 ‘로봇이 돌아다니는 연구실’이란 걸 한번 경험해 보자고 진행된 로봇 방목 퍼포먼스답게, 설문조사 결과에서 별로 특이할 만한 분석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2달 가까이 청소 로봇을 지켜 본 연구원들에게 막연히 “100점 만점에 몇 점?” 이라는 질문을 던지자 평균 67점이 나왔으며, 이는 일반 가전제품을 생각하면 낮을 수 있지만 로봇의 특수성(과도한 기대치와 그에 따른 실망감)을 고려할 때 기대 이상의 수치라 하겠다. 또한 로봇의 지능수준이 만족스러운가를 묻는 질문(매우 불만족스러우면 -2점, 매우 만족스러우면 +2점)에서도, 평균 -0.4점을 기록해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은 수치를 보였다.

청소 로봇이 로봇인가? 가전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래도 뚜렷하게 가전이라는 의견이 많아 79.1%를 기록했는데, 이는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원(78.6%)이나 그렇지 않은 연구원(79.3%)이나 비슷한 수치이므로 장기간 로봇을 접한 사람에게 ‘로봇’이라는 단어가 갖는 환상은 더 이상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실이라는 거친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로봇이 살아남는 데에는 많은 연구원이 도움을 주었음이 밝혀졌는데, 44명의 응답자 중에서 30명 이상이 “장애물을 넘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뒤에서 밀어줬다”거나(31명) “구석에서 헤매고 있어서 탈출을 도와줬다”라고(32명) 응답했으며, 어떤 식으로든 도와준 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소수(2명)에 불과했다.

이 설문에는 이후 청소 로봇을 계속해서 연구실 내에 운용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얄궂게도 정확히 50:50의 찬반수가 나왔다. 찬성한 22명의 가장 큰 이유(10명)는 “HCI Lab에서 로봇 연구를 한다는 홍보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바닥이 깨끗해져서 환경 개선 효과가 있다”는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에 반대한 22명의 가장 큰 이유(13명)는 “소음이 시끄러워서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것으로, 비록 동등한 수치가 나왔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결론은 명확했다.

가동 두 달 – 종료
연구실에 청소 로봇을 가동하여 다수 연구원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기 시작한지 2달여 만에, 연구실 구석에 설치된 충전기와 청소 로봇은 단계적으로 철수되었다. 2대의 충전기에서 수거된 쓰레기(먼지)는 약 350g으로, 2달 동안 시끄럽게 돌아다닌 것치고는 청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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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Robots are aliens
영화 <Men In Black>은 지구에 숨어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감독하는 비밀기관을 묘사했다. 이 기관의 고참 요원인 K는 “인간은 이성적이기 때문에, 외계인이 지구에 있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왜 굳이 사람들을 속이느냐.”는 신출내기 J 요원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A person is smart. People are dumb, panicky, and dangerous animals.

처음 로봇들을 연구실이라는 험한 환경과 수십 명의 연구원이라는 대중 앞에 풀어 놓았을 때에, 필자는 뒤의 문장에 관심이 있었다. 과연 인간 대중의 ‘집단이기주의’와 ‘익명적 행위’는 어떤 식으로 이 로봇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자신의 일을 방해할 뿐 실질적으론 별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때때로 신경 써주지 않으면 복도를 가로막고 있을 뿐인 이 ‘물건’들에 대한 거부감은 과연 이 로봇들에게 쏟아질 것인가? 혹은 배후의 조정자인 필자에게 쏟아질 것인가? … 아무래도 디스토피아 distopia적인 SF영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이런 상상들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물론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기술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도 높은 연구원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는 했으나, 2달여 동안의 ‘로봇 방목 퍼포먼스’에서 부각된 것은 오히려 위 대사의 앞쪽 대사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 생경한 존재(로봇)에 대해서 무작정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 상대(로봇)의 행동과 움직임을 관찰하고, 어느 정도 조작을 가하면서 그 반응을 보기도 하는 등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지적 생물체를 만난 것과 같은 행동패턴을 보였다. 또한 개인은 그들(로봇)과 조우했던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나름대로 대응방식을 갖게 되었고, 이를 자신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반영시켰다. 그러다가 이 반복적이고 따분한 존재(로봇)에 대한 관심을 점차 사그라졌고, 분명히 변함없이 묵묵하게 자신(로봇)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 이 글을 읽은 심리학자 중 누군가가 인간 관계의 발달 모델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_-+  하지만 어쩌면 로봇은 인간에게 있어서 <Men In Black>의 외계인 같은 존재는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UI 연구자들은, 인간 개개인의 이성에 호소해서 로봇을 그들의 생활 속에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대중으로서의 인간의 또 다른 측면이 그 관계를 그르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이 글을 게시판에 올림으로써, 도대체 몇 명이나 이 개별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 20050419 냥 =8-)

※ 참고: 설문조사에 사용된 문항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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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이 글은 2005년 사내에서 게재했던 컬럼을 옮긴 것입니다.

가위: 버내큘러 인터페이스
대중 인터페이스 public interface란 무엇일까? 저는 그 근원을 산업 디자인에서 말하는 버내큘러 디자인 vernacular design 행위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상 제품들, 이를테면 가위 같은 것들은 어느 순간 오늘날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이자, 사용자였던)의 손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최적의 형태로 수렴된 결과입니다. 중세시대에 사용된 가위의 모양에서 지금의 모양이 변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조금씩 결합되어 아무개가 디자인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진 형태를 갖게 된 것입니다.

대중 인터페이스의 특징은, 역시 누군가가 “이 물건은 이러저러하게 쓰는 이렇게 생긴 물건이니 그렇게 사용할지어다!”라고 제시한 것이 아닌, 어떤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그걸 사용해 가면서 대중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 조금씩 바꿔서 스스로의 문화 속에 녹여왔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욕심이 좀 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 테마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첫번째 주제는 인간의 문자, 그 자체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 다음부터는 존댓말이 사라졌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1. 문자통신의 진화

인류는 유사이래로 – 말 그대로 – 원거리의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음성과 몸짓을 대신하여 문자를 사용해 왔다. 문자의 유래를 봐도 처음에는 가축의 수를 센다든가 물물교환을 위한 의사소통을 한다거나 신묘한 현상에 대한 경외를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그것이 점차 독립적으로도 완성된 의미와 구조를 갖게 되어 그 맥락을 벗어나도 뜻을 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기록’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정보가 제한(시각적인 것으로)되어 왔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역사 상 가장 효율적인 정보 기록 및 전달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잠깐... 필자의 변명]

이 문자통신 textual communication 은 주로 역사와 같이 기록의 목적을 위주로 쓰였고(사실 이 경우엔 ‘통신’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된 경우는 표지판, 간판, 안내문(poster) 등, 대부분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일방적인 ‘알림’의 용도가 많았다. 그런 문자통신이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마도 ‘편지’라는 개념이 발명된 이후일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그 문자가 적힌 물건(대나무든, 양피지든, 종이든)을 들고 직접 상대방에게 가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불쌍한 졸병이, 때로는 우연히 심부름값을 벌게 된 여행자가, 때로는 충직한 하인이 그 일을 맡았다. 그러다가 우편 시스템이 생기면서 문자통신을 전문적으로 전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고, 이는 전신망이 세상에 제법 퍼진 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 편지는, 그야말로 수백년에 걸쳐서 일세를 풍미했던 상호 문자통신 방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편지는 문자통신가 가진 한계를 - 아주 조금이지만 –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쌍방향 대화는 온갖 미사여구와 구조화된 문장으로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으며, 상대방과 의견조절을 해야 할 때에도 다양한 수준의 대안에 대해서 나열함으로써 원컨대 다음 편지왕래에서는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었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점잖지만 치졸한 저주를 퍼부음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더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감정 중에서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것으로 만인이 쉽게 인정해주는) 것, 즉 ‘사랑’만큼은 이게 잘 안 되었던 것이다. 물론 베르테르쯤 되는 문장가라면 세상 온갖 아름다운 것을 갖다 붙이고 과장하고 (때로는) 폄하함으로써 로티(롯데라고 쓰니 좀 웃긴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겠지만, 보통의 선남선녀들에게는 이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주 하고 있다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진한 키스나 강한 포옹이라도 해주련만,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를 아무리 적어넣는들 그 마음이 전해질 리가 없다. 그래서 향수도 뿌려보고, 머리카락도 잘라 넣어보고, 낯뜨겁지만 입술연지도 찍어 보내보고 그랬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건 왠지 너무 노골적이고, 적어도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때로는 외설스럽기까지 하다. 마음을 전하면서 뭔가 애틋한 마음을 훼손하지 않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그때, 누군가가 위대한 발명을 했다. 즉 편지 말미에 “X”, “O”라고 적음으로써 각각 ‘키스’와 ‘포옹’을 뜻하도록 한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기는 하지만, 건전하게 가자. 건전하게…) 아마도 최초의 ‘문자를 통한 비문자적 감정 표현’이 될 이 표시는 곧 문장력 떨어지는 대다수 연인들의 편지에 유행처럼 번져서 “x”, “X”, “XXXXX”, “XX OOOOO” 등 나름대로 다양한 변용을 보이게 된다.

이후 전신이 전화로 발전하고, 또 이 전화라는 게 특별한 기술(전신은 어려웠던 게다… 쯔돈쯔돈… -_-a; )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인정되면서 편지는 첫번째 시련을 맞게 된다. 요컨대 실시간을 용건을 전달할 수 있는 전화를 두고 굳이 펜대를 놀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편지는 이 위기를 ‘문자’라는 자신의 특장점으로 의외로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사용자들은, 이 대중들은 전화와 편지가 서로에 대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음성 대화는 자신의 기분이나 주변의 상황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한편 어떤 문제에 대해서 편지를 쓰게 되면 곰곰이 생각해서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어 말실수(‘글실수’라는 말은 없다)로 인한 문제를 막을 수 있다. 결국 전화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실시간성)이 있지만, 어떤 경우엔 여전히 편지가 보다 나은 매체였던 거다. 그런 이유로 문자통신은 이 새로운 기술 – 전화 – 와 함께 한동안 잘 지냈고, “XXX(쪽쪽쪽)”과 “OOO(꼭꼭꼭)”도 명맥을 유지했다.

편지에 결정타를 먹인 기술은 컴퓨터 네트워크였다. 내가 만든 문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이 읽어볼 수 있게 되자, 이건 편지와 전화의 장점만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특히 과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던 이 네트워크(ARPANet)를 세상에 공개하자마자, 이 새로운 기술에 열광한 젊은 컴퓨터 공학자과 그 친구들은 곧 이 기술을 제멋대로 뜯어 고치면서 새롭고 (가끔은) 편리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메시지 전송 sndmsg, 이메일 e-mail, 텔넷 telnet, 파일전송 ftp, 고퍼 gopher 등과 같이 학술적인 토론과 정보 교환을 위한 용도였던 것이, 이 네트워크가 인터넷 internet 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되자 좀더 대중적인 용도, 즉 하루 온종일 이야기를 한다거나(IRC; Internet Relay Chatting) 여러 명이 온라인 상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MUD; Multi-User Dimension) 방법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기술 발전 속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발전한 인터넷은, 곧 인류 문명에서 근근히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편지와 전화 사이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곧 편지와 전화의 장점을 모아 놓은 이 새로운 실시간 문자통신 기술에도 단점은 있었다.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을 다시 기억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컴퓨터 공학자들은 이에 또다시 접속자들이 앞 사람이 올린 글들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BBS; Bulletin Board System)이었고, 이 BBS를 통해서 비로서 많은 유익한 토론이 오해 없이 차근차근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 그렇다, 오해 없이. BBS 이전의 네트워크를 통한 실시간 문자통신에서는 짧은 몇 개의 문장만을 주고 받음으로써 의사소통을 하곤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막 떠오른 문장을 때로는 부주의하게 상대방에게 보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고, 특히 농담 삼아 던진 이야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흐려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상대방이 발끈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상대방이 눈앞에서 장난스런 눈을 반짝이면서 미소를 띄고 이야기하면 아무렇지 않게 웃고 넘길 이야기가, 근엄한 검은 화면에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되었을 때에는 쉽게 용서되지 않는 도발로 여겨지곤 했던 것이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한 BBS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제안이 하나 등장했다.

19-Sep-82 11:44    Scott E  Fahlman             :-)
From: Scott E  Fahlman <Fahlman at Cmu-20c>
 
I propose that the following character sequence for joke markers:
 
:-)
 
Read it sideways.  Actually, it is probably more economical to mark things that are NOT jokes, given current trends.  For this, use
 
:-(

Smiley: Archetype of Emoticon?
짜잔~ 이모티콘 emoticon이 발명된 것이다. 물론 이 때(1982년)는 아이콘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기에 이모티콘(emotion + icon)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1970년대에 유행했던 웃는 얼굴 마크(노란 바탕의 둥근 모양을 가진)를 뜻하는 ‘스마일리 smiley’라고 불렸다. (어쩌면, 당시 이 노란 웃는 얼굴 마크가 평화의 상징으로 쓰였기에 인터넷 토론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표시라는 뜻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마일리를 제안했던 스캇은 노벨 평화상을 받아 마땅하다. 이후 이 스마일리를 기본으로 수백가지 다양한 ‘표정’의 스마일리 들이 인터넷을 통해 생성되고 공유되면서 ‘방금 얘긴 농담이니까 화내지 마세요~’라는 원래의 용도보다 훨씬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언어를 주고 받음으로써 전달되지 않았던 다른 종류의 정보들을 전달하게 되었다. 스마일리로 인해서 인터넷 상에서는 오해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으며, 비록 그 스마일리가 격심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그 귀여움 덕택에 듣기 민망한 욕설과 저주보다는 감정을 덜 격하게 했을 테니 분명 인류 평화에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원래의 :-) 라는 이모티콘은,  ;-P  :-X  8-D  *<:^D  등 다양한 변화를 거치게 되고, 특히 동양의 사용자들이 코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동양, 특히 일본의 만화에서는 코를 그리지 않거나 희미하게 표현함으로써 귀여움을 표현하는 일종의 시각 문화가 받아들여져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  :>  X(  등의 표현을 포함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한동안 스마일리는 서양에서는 :-) 변형을, 동양에서는 :) 변형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즉 웹(Web; WWW; World Wide Web) 개념이 등장하고 브라우저를 통해 세계의 문자 정보를 그림과 함께(!!!)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그리고 매킨토시 Macintosh™를 비롯하여 윈도우즈 Windows™라는 GUI OS를 기반으로 한 PC가 널리 팔리고 마우스로 클릭하기만 하면 된다는 간편함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중들 – 기존의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공유되어 있는 문화나 인터넷 본연의 목적성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 을 아우르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용자들은 이 스마일리를 자신들에게 익숙한 GUI 요소인 아이콘 icon에 빗대어 ‘이모티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또한 전혀 새로운 다른 형식의 이모티콘을 창작해내기 시작했다. 그 중 괄목할만한 것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어떤 형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를 사용하는 현상이었다. 이를테면 유명한 영화인 스타트랙 StarTrek 의 우주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O-=T_,--- 를 사용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아스키 아트 ASCII art 라고 불렸던, 이전의 문자를 이용한 그림 표현 방식과 융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본고에서 다루는 대중 인터페이스와는 주제가 다르므로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 사실 여기서 더 주제가 벗어나면 귀찮아 질 듯 하다.  =8-d  )

보다 명백한 진화는 동양에서 발견되었다. 서양에서는 여전히 위의 전통적인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해, 복잡미묘한 감정 표현이 필요했던 동양의 대중들은 얼굴 표정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로 형식의 얼굴, 즉 ^_^ 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새로운 형식은  T_T  *^0^*  x_x 등 다양한 표정으로 발전하더니, 일본 만화 특유의 풍부한 감정표현 형식언어 들을 원용하여  >_<  =_=  6^v^; 등이나 심지어  \^o^/  {{{@_@}}}  \(-.-\)=333 등과 같이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 상태를 전달하게 되었다.

특히, 알파벳만으로 되어 있는 미국 표준인 아스키 코드 ASCII code에서 벗어나 자국의 문자를 이모티콘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이모티콘은 또 한번 역동적인 진화를 거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문자들은 비교적 그 형상이 단순해서, 다른 형상으로 차용하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한글의 경우에는 자모의 형상을 이용하여  ㅠ_ㅠ  -_ㅜ  o(ㅡ_ㅓ  [ㅎ_ㅎ]  ^오^  -ㅂ-  -ㅛ-  등과 같이 변용되었으며, 심지어  (/으ㅁ으)/ㅠ ㅕ ㅛ 와 같은(호통을 치며 밥상을 들어 엎고 있다;;) 표현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글은 그 제자(製字) 특성상 몇가지 자모의 기본 형을 조합 및 변형한 문자가 많아 대부분 문자의 이모티콘 활용도가 많은 반면, 글자모양이 훨씬 다양한 일본의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해당 맥락에 맞는 특정 문자가 중점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을 보이며, 동시에 다양한 특수문자를 함께 사용하여 높은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문자를 적용한 사례로는 ヾ(≧▽≦)ノ"   ゚・(つД`)・゚・   (-“-メ)  
┐(´ー`)┌  등이 있다. 최근에는 외국어 입력이 비교적 쉬워졌으므로, 가까운 중국의 한자는 물론 생소한 서구의 문자들마저도 포함하여  凸(-ω-メ)z 등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와 같은 이모티콘은 또 휴대폰 문자메시지(SMS; Short Message Service)라는, 새로운 기술의 유입으로 인해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처음에는 주어진 전송량(80bytes) 안에 용건을 입력하기 위해 고심하던 사용자들은, 가로 16자(한글 8자)로 고정된 형식을 갖는 이 공간을 다양한 문자 그림으로 채우게 된다. 이 문자 그림들에는 기존 이모티콘의 형식을 따르는 것도 있었지만, 점차 (특히 휴대폰의 화면이 8줄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서) 화면을 가득 메우는 명백한 ‘그림’으로 바뀌게 된다.

이 글을 적고 있는 2005년 초 현재, 개인 대 개인 간의 실시간 문자통신은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문자통신을 위한 기술은 점점 더 큰 폭으로 진화할 것이고, 이모티콘도 이에 맞춰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최적의 형태로 적응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여기까지 문자통신의 역사에 있어서, 그 매체의 단점을 보완하여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진화의 역사를 대략 서술해 보았다. 문자 통신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문자를 대표적인 통신 매체로 사용하게 되면서 감정과 같은 비문자 정보를 함께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대중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보조적인 인터페이스가 이모티콘이었다. “XXX OO”에서 시작해서 “ :-) ”이나 “ (^o^)a; ”, 그리고 “ (つ`曰`)つ ”에 이르기까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이모티콘은 최근의 통신 기술인 휴대폰 문자메시지에서도 문자통신 자체를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결국 문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편지에서 전신, 인터넷 등으로 이어지는 수십년간의 기술적 발전의 이면에서, 대중은 그 근본적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하고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문자 입력을 조합하여 만드는 이모티콘의 생명력은, 무엇보다도 그 시대 대중 사용자들이 공감대를 이루는 개념을 누군가의 재치있는 발상으로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쉽게 이를 변형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어느 정도(글꼴에 따라 다르지만)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럽다는 장점에 있다.

최근 그래픽 중심의 웹이 다른 모든 매체를 대신하게 되면서 풍부한 그래픽이 이모티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의 인스턴트 메신저 instant messenger나 몇몇 웹 게시판들에서 문자 이모티콘을 그림으로 된 아이콘으로 자동 변환해 주거나 별도로 삽입할 수 있게 되고 휴대폰이 문자메시지를 대신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 메시지를 지원하게 되면서, 오히려 문자 이모티콘이 가졌던 높은 자유도와 실시간성, 그리고 무한대의 변형가능성이 많이 퇴색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문자통신이 존재하는 한 그 맥락 하에서 언어적 내용 이외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이모티콘의 진화는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얼굴표정의 그림 이모티콘이 적용되고 있는 최근에도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감정 – 좌절 – 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인  _| ̄|○ 이 쉽게 입력할 수 있는  OTL 로 널리 재생산되어 사용되는 것이 그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앞으로 대중 인터페이스 public interface를 논의함에 있어서,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생적인 UI 개선 행위, 혹은 그 결과물을 대중 인터페이스라고 일단 정의하기로 하자. 어째 글의 앞뒤가 바뀐 것 같기는 하지만. -_-;;;

@ 20050330 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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