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ive Surplus

2010.08.05 08:25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 일년에도 몇번씩 새로 조합된 (주로) 마케팅 용어가 그럴듯한 설명과 함께 등장해서 우리들을 현혹시키지만, 정작 그 대상인 시장 혹은 사용자 집단 만큼은 수십년이 지나도록 크게 변한 적이 없다.

아래와 같은 용어가 유행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 쌍방향 미디어. 멀티미디어.
  •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 프로슈머(prosumer).
  • 소셜네트워크. SNS.
  • Web 2.0
  •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 소셜게임(social game).
... 이런 주제들의 연결선 상에서, 아래 동영상을 보게 됐다.

Clay Shirky: How Cognitive Surplus will Change the World


요컨대, 매체를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도 좋아하는 대중들이, 남는 시간과 재능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쉽게 세상에 연결되는 인터넷 매체와 공유된 표준 기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문화는 자발적이며, 자발적인 채로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라는 이야기인 듯.

아직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서 더 자세히 적어봐야 내용을 옮기는 정도만 될 것 같으니(게다가 원래의 웹페이지를 보면 자막과 관련 설명이 한글로 잘 번역되어 있다), 좀 더 곱씹어 볼만한 구절 몇가지만 적고 넘어가자.
  • Cognitive Surplus (잉여인지; 결국 '남는 머리'인데, 한글자막에 나온 인지잉여라는 표현은 문맥 맞추기가 힘들어서;;)
  • No one person knows what everybody knows. (모든 사람이 현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 전체를 알지는 못한다.)
  • We were couch potatoes because that was the only opportunity given to us. (과거 TV가 바보상자였던 이유는 일방향적인 소비가 매체를 쓰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Intrinsic Motivation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내적 동기는 보상에 의해서 주어지는 외적 동기보다 강하다)
  • Design for Generosity (사람들로 하여금 베풀 수 있도록 해주는 디자인)
  • Communal Value to Civic Value (보다 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그리고 구글해서 찾아낸, 발표 중 인상적이었던 실험결과 그래프 하나.


UX가 제품/서비스 개발 전반에 걸쳐 입을 떼지 않는 분야가 없기는 하지만, 사실 실무적인 측면에서는 사용자의 내면을 직시하는 이런 관점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게임 업계에 있다보니 요새는 무슨 게임이든 소위 "소셜게임 요소"를 넣어서 홍보 효과라도 노려볼까 하는 경우도 꽤 자주 보는데,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든 게임 디자인이든 표면적으로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어떻게 엮어 보려고 하지 말고, 보다 근원적으로 위와 같은 대중의 잉여력을 활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사실 사용자가 직접 만든 UI 스킨이라든가, 플래시 UI라든가, Wiki 형식의 다양한 정보 사이트라든가, 블로그를 이용한 제품 체험단이라든가, 심지어 게임 하나당 수십개에 달하는 게임정보 게시판이라든가... 뭔가 잉여력을 모아서 뭔가에 활용하려는 노력은 이미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 단지 그 각각의 개념을 하나하나 좇는 사람은 이미 많으니, 한 발자욱 물러나 '잉여인지'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기회가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 뿐이다.

뭔가 새로운 용어가 나타날 때마다 무조건 덥썩덥썩 입에 담지 말고, 애당초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건지, 그 현상이 있게 된 인간사회의 본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전에는 그런 현상이 어떻게 다뤄졌으며, 그때와 뭐가 달라져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됐고 바뀌지 않은 어떤 점은 또 무시되고 있는지... 뭐 그런 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을 일깨우는 강의라고 생각해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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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Microsoft Windows OS에서 그 악명높은 "블루 스크린"과 함께 가장 나쁜 기억으로 꼽히는 게 있다면, 역시 Ctrl-Alt-Del 조합일 것이다. 원래 일반적인 사용상황에서는 우연히라도 나올 수 없는 키조합으로, 어떤 사용 상황에서도 시스템 관련 명령을 입력할 수 있는 일종의 'backdoor'로서 궁리해 낸 것이겠지만, 정작 그걸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사용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뻗어버린 프로그램을 강제로 종료할 때)거나, 그 외엔 일반 사용자에게는 어차피 잘 사용하지 않는 상황(CPU 점유율을 보거나 비밀번호를 바꿀 때)이거나, 왜 굳이 이렇게 어렵게 써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부팅 후 비밀번호 입력할 때) 뿐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Ctrl-Alt-Del에 대한 우스개 소리도 많았고, 아예 아래 그림과 같이 키보드를 만들어버린 용자도 등장했다. 누가 만들어서 처음 인터넷에 올렸는지야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만일 저게 동작하는 거라면 재미있겠다 싶을 정도.

Ctrl-Alt-Del-ONLY PS/2 keyboard

그러더니, 예전에 한 모바일 기기의 홍보자료에 나온 한 문구를 보고 아주 기겁한 적이 있다. 물론 MS Windows OS를 사용한 기기였는데, Ctrl-Alt-Del 조합을 입력하기 위해서 아예 별도의 버튼을 할애한 것이다. 뜨헉... 하도 기가 막혀 홍보자료를 따로 보관해 두었을 정도니까. ㅡ_ㅡ;;;

Ctrl-Alt-Del button on a handheld device

이렇게 하나의 버튼으로 만들어 버리면, 애당초 "우연히라도 입력하기 어려운" 조합을 궁리해낸 사람은 얼마나 바보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하지만 사실 별도의 키보드가 없는 모바일 기기에서 이렇게라도 Ctrl-Alt-Del을 입력해야 MS Windows OS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타블렛 컴퓨터에서는 결국 이 버튼이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듯 보인다. (도대체 왜... tablet edition에서만이라도 이 명령을 빼지 않은 건지 원. -_-=3 )

Buttons of Tablet PC (HP TC4200): 19 is Ctrl-Alt-Del

(19번 버튼이 Ctrl-Alt-Del 버튼임)


Ctrl-Alt-Del 명령에 대한 독창적인 불편함 -_- 은 UI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인지라, 이 분야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었던 (요즘은 잘 모르겠다 -_-;; ) 얼리어답터에서도 여기에 대한 코멘트가 나온 적이 있다.

Ctrl-Al-Del-ONLY keyboard, on Optimus Mini

저 Optimus Mini 키보드가 얼마짜린데, 저걸 보는 순간 "Ctrl-Alt-Del을 쉽게 입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양손가락을 늘여 세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했던 필자의 아픈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알 수 있겠다. ㅎㅎㅎ



굳이 이 Ctrl-Alt-Del 명령에 대한 오래된 콜렉션들을 끄집어 내기로 한 것은, 지난 달 HP에서 발표된, Comfort 560 이라는 무선 키보드/마우스 제품을 보고 나서다.
HP Wireless keyboard Comfort 560 - with Ctrl-Alt-Del key
Close up of Ctrl-Alt-Del key on HP Comfort 560
이 제품은 분명 데스크탑 컴퓨터를 위해서 만들어졌고, 일반적인 크기의 이상적인 키보드를 제공하고 있어서 Ctrl-Alt-Del 조합을 원래의 설계 의도대로 입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그림에서와 같이 (아직 출시된 제품이 아니라서, 제대로 된 확대사진을 구할 수 없었다. 눈을 부라리고 보시길;) 한 구석에 별도로 큼지막한 Ctrl-Alt-Del 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사례들이야 어떤 것은 우스개로, 어떤 것은 어쩔 수 없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위 제품에서의 Ctrl-Alt-Del 키는 애당초 이 명령이 얼마나 사용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지를 아주 적절히 변론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이 Ctrl-Alt-Del 키 조합이 UI 역사상 길이 남을 최악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머리에 말했듯이 처음의 의도가 어떤 "기술적" 필요에 의해서 피할 수 없다고 여겨졌는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에게 용납될 수 없는 UI는 결국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쳐지기 마련이다. 만일 이 UI를 만든 것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만큼 오래 살아남아 욕을 먹지도 않았겠지만.

모쪼록 다음 Windows 버전에서는 Ctrl-Alt-Del 조합이 사라지기를 매번 기대해 왔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진짜 그 기대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Band named Ctrl-Alt-Defeat
10월 19일 추가. 그냥 이 그림 하나 덤으로 저장해 둔다. Ctrl-Alt-Defeat 라는 게 이 동네 밴드 이름인 듯 한데, 여하튼 이 글을 쓰고 나서 근처를 배회하다가 발견. 뭐 눈에는 뭐 만 보인다더니 그동안 이걸 왜 못 봤지...하며 찍어뒀다. 밴드 이름치고는 좀 특이하지만, 컴퓨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일까나... 뭐 어쨌든 두면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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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Nachtwey라는 포토 저널리스트가, 작년 TED Prize를 받으면서 아래와 같이 소원을 말했나보다. 이번에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사진이 찍은 지구촌의 (말하자면) 구석진 곳의 현실들을 전세계에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저는 세상이 알 필요가 있는 이야기를 찍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보도사진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이 디지털 시대의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퍼뜨려주길 바랍니다. - James Nachtwey의 TED 강연(아래) 중에서

* 주의: 아래 동영상에는 우리 눈에는 '끔찍한' 장면이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그들에게는 일상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로서도 먼 세상의 이야기에 황망할 뿐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이 운동을 맡아준 곳에서는 이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을 종용하고 있으니 우선 그거라도 해보기로 했다.

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
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
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Photo by James Nachtwey - Visit XDRT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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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Bad, Forever Bad

2008.09.17 11:49

UI ... 혹은 UX를 디자인한다는 게 참 그렇다. 잘 만들면 소위 말하는 "투명한 transparent UI"가 되어 버려서 한 일이 참 표가 안 나고, 잘못 만들어도 "사용자들이 멍청해서" 하고 넘어가게 되기도 하고, 또 한번 그렇게 넘어가면 다음부터는 "사용자들이 익숙해 해서" 또 그게 좋은 UI가 되어서 그냥저냥 사용하게 된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잘못된 UI를 재설계한다는 것은 마치 늪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특히 그 UI가 사내에서만 공유되어 익숙해졌을 경우에는 참 답답한 일을 겪는 경우도 많은 법이다. .. 그 이야기는 다음에 -_ㅜ; ) 어쨌든 그래서 UI라는 건 처음 설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신경도 많이 쓰이고, 이제까지 부지기수로 망쳐먹은 게 무척이나 죄송스럽고 그렇다. (먼산 '-')y~oO

... 아, 이 글은 반성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나에 대한 반성보다는 남을 비판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o(>ㅁ<)o ... 아아, 디자이너란 얼마나 쉽게 타락하는지.

Usability Hazard of Korean Bus Transit

이전에 군시렁댔던 버스카드 환승할인의 "사용성 함정"이, 전형적인 잘못된 UI 재설계의 늪에 빠지고 있다. 이번에 광역버스 환승할인이 추가되면서, 환승할인을 하면서 2번째 탑승한 차에서 내릴 때 카드를 찍지 않으면 (즉, 이제까지 늘 그랬듯이 광역버스에서 카드를 찍지 않고 내리면) 최고 1,700원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차리고 열심히 교통카드를 찍으면 환승할인이 적용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 인터넷을 뒤져보면 여기에 대한 불평불만과 항의의 글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그 방식 그대로 확대시행을 하는 것은 이해는 가지만 용납은 안 된달까. 특히나 이번에는 기본요금이 비싼 광역버스에 적용된 덕택에, 이 '함정'에 빠질 경우 손해보는 금액도 2~3배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못된 UI는 되도록 빨리 뜯어 고쳐야 한다. 처음 한두번에 바로 잡지 못하면 그 UI는 바로 "익숙한(=좋은?) UI"가 되어 버려서 영영 초심자들을 바보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오는 9월 20일, 그런 사례가 또 하나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1,700원을 날려먹은 분노한 대중 public 들이 나서서 이 잘못된 UI를 뜯어고칠 수 있도록 담당자의 옆구리를 찔러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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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3G 휴대폰은, 하나같이 영상통화 기능을 포함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서로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하고 싶은 상대방은 주소록에 저장된 100여명 중에서 한두사람 뿐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고, 따라서 무척이나 낭비스런 기능이라는 생각에 그 기술을 좀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특허화하려고 한 적까지도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애당초 카메라폰이 크게 유행하게 된 것도 영상통화용으로 - 예전 방식이니 지금보다도 화질이 안 좋았지만 - 넣은 카메라의 부가적인 용도였을 뿐인데, 상품기획 의도와 완전히 반대로 영상통화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폰카는 많은 사람이 유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잖아!

하지만... 뭐 그래도, Apple의 iPhone 3G에 전면 카메라가 없어서, 음성과 영상을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3G 대역폭을 충분히 쓰지 못한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다. 그건 분명히 영상통화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Apple 버전의 영상통화 UI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일 게다. 흠, 흠... ( '-')

어쨌든, 이런저런 geeky news를 전해주곤 하는 Gizmodo에서 iPhone 3G를 위한 영상통화 키트를 소개했다.

Video Conferencing Kit for iPhone 3G - by Gizmodo Fake News

처음보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용자를 위해서, 아래와 같이 사용법까지 설명해 주는 친절함을 발휘했다.

Video Conferencing Kit for iPhone 3G - by Gizmodo Fake News

... 물론 Gizmodo의 fake news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모처럼 꽤 재미있고 '정성이 깃든' 내용인 것 같아서 일단 스크랩. ㅎㅎㅎ



실제로, iPhone 3G은 카메라와 3G의 데이터 통신을 직접적으로는 전혀 엮지 않는 듯 보인다. 굳이 얼굴을 마주 보는 영상통화가 아니어도 영상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많이 널려있을텐데...

iPhone 3G에 공개되지 않은, 하지만 분명히 추가될 것 같은 기능들 (한글 키보드 입력의 예측기능이라든가, GPS+WiFi 정보를 이용해서 촬영한 사진에 위치 로그를 넣는다든가, Mobile ME에서 일부 기능은 무료로 제공한다거나, 멀티터치의 개념을 두 손가락까지의 화면 접촉에서 좀더 확장한다거나 하는 것) 중에서 기대되는 게 하나 더 늘었다.

아마 곧 -_-+ iPhone 3G를 써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어떤 물건으로 판명이 날지 두근두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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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블로그라고 하나 운영하다 보니, 쓰다가 포기한 글도 이제 열 꼭지 가까이 된다. 어떤 글은 쓰다보니 내가 재미가 없어서 관두고, 어떤 글은 필요한 자료가 결국은 구해지지 않아서 미루다가 잊혀져 버리고, ... 그런 글 중에서, 제일 아까운 글은 "버스카드 음모론"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지난 2004년 7월부터 도입되어 통상 '버스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 시스템은, 간단한 RFID 카드 접촉을 통해서 복잡한 과금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우리나라 교통 행정의 도전적인 시도이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최근에는 택시까지도 포괄하는 등 모든 교통수단을 엮는 하나의 지불방식과 환승할인(?), 그리고 새로운 담당업체와 신용카드 회사를 포함한 새로운 산업 구도의 창출 등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고. (뭐 구리구리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거야 이런 시도가 있어도 있고, 없어도 있는 거니까 패쓰 -_- )

2004년 7월 1일. 서울시 교통체제 개편 시작.

의미불명이지만, 명랑 교통문화라니 좋겠지 싶었다.


교통카드를 중심으로 한 대중교통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Voice UI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RFID 단말기에서 나오는 초기의 안내방송이 매우 잘못 만들어진 나레이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금방식을 설명하는 스티커의 안내문 역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았으며, 무엇보다 서로 논리적으로 상충되는 안내문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요컨대 UI적인 관점으로는 말 그대로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상태"였던 거다. 그러다가, 이 방송멘트와 스티커 안내문이 점점 바뀌는 게 재미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의미가 모호했던 것이 점차 나아졌고, 문장의 구조나 단어의 선택이 좀더 일관되기도 했다.

이렇듯 공공재의 UI 설계가 지속적으로, 일부는 조직에 의해서 (top-down), 일부는 사용자에 의해 (bottom-up) 개선되는 모습에서 소위 "Public UI" 라는 개념을 떠올렸고, 앞의 글들처럼 좀더 쉬운 주제부터 고민을 시작했던 것이다. Public UI 개념의 계기가 된 교통카드 시스템에 대해서는 2004년 9월부터 사진 등을 모으면서 교통카드 시스템을 만드는 T모사에 연락해 차내 멘트나 안내 스티커 등의 history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 참고로 담당자는 뭔가 논문이나 '좋은 공공 UI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하니 긍정적으로 말하더니, 역시나 "윗분에게 알아보겠다"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다. ㅡ_ㅡ;;;

어쨋든,

그 잊혀진 글 - 버스카드 음모론 - 에서 말하고자 했던 사례들을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현재 적용되어 있는 교통카드 시스템의 잦은 질문들은 여기에 설명되어 있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번 읽어보자!)


1. '환승할인'의 사용성 함정
하차 후 30분 이내에 다른 번호의 버스나 다른 호선의 지하철을 타면 "환승입니다" 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0원, 즉 무료로 탑승할 수 있으며, 내릴 때 카드를 대면 탑승한 거리만큼의 금액이 지불된다. 환승은 2회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지하철로의 환승(내렸다가 다시 타기)이나 같은 번호의 버스 간의 환승은 지원하지 않는데, 이는 시민들이 멀리 떨어진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잠깐 다른 볼 일을 보고 돌아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는 "본래의 취지"에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참 잘들 나셨다. -_-=3 UI를 하다보면 내가 생각한 시스템의 모델에 따라 사용자가 따라주지 않을 경우, 시스템에서 상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온갖 "그러면 안 됩니다" 메시지를 띄워 막는 경우도 봤지만, 이 '환승할인'의 제약은 아예 사용자를 무슨 빈대 보듯이 하고 있는 거다. 사용자를 시스템의 굴레 안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나쁜 UI의 전형일텐데, 이건 나쁜 UI가 아니라 못된 UI라고나 해야 할까. 우리나라 행정의 눈높이 라는 것이 참 참담한 수준이다. ㅡ_ㅜ;;;

게다가 애당초 이 환승할인이라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취한 방법도 참 가관이다. 앞의 노선에서 하차할 때에 버스카드를 찍고, 다시 탈 때에 또 버스카드를 찍으면 그 사이의 간격이 30분 (야간은 1시간) 내라면 할인되는 방식이다. 이 당연해 보이는 방식을 가장 나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모든 사람이 하차 시에 버스카드를 찍게 하고, 만일 찍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될 거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내렸는지를 모두 알 수 있으니 다시 환승할 때에 환승여부를 알기가 쉽겠지. 그리고 그게 지금 구현된 방식이다. ㅠ_ㅠ;;;

환승 손님은 내릴 때마다 꼭 찍어주세요. (주의: 찍지 않으면 본인 부담이 됩니다)

물론 이것은 환승 승객에게만 해당된다. 하지만 30분 내로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환승할인의 유혹을 느낄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매일같이 사용하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① '다음에는 환승 계획이 있으니까 찍어야지',
 ② '이번엔 환승할 일이 없으니까 찍지 않아도 되겠구나',
 ③ '지금 환승해서 탄 거니까 다음에 환승하지 않아도 찍어야 하는구나'


... 라는 세가지 선택을 항상 고민하는 것도 못할 일인지라, 결국 아래와 같은 커스텀 안내문들도 등장했다.

(환승할인을 받으시려면) 하차시에도 꼭 카드를 단말기에 접속해 주십시오.

(접촉시키지 않으면 불이익 당함)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찍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환승 할인을 받은 승객이 하차 시에 카드를 찍어 이동 거리를 확인하지 않으면, 얼마나 이용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최대치 - 즉, 해당 교통수단의 기본 요금 - 를 다음 교통카드를 찍을 때에 합해서 부과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환승해서 600원 마을버스를 타다가 내릴 때 카드를 찍지 않았다면 다음에 900원 버스를 탈 때에 1,500원이 찍히는 것이다. 카드를 찍지 않은 이유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어서라든가, 전화통화를 하던 중이라든가, 출퇴근 길의 인파에 떠밀려서 라든가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마 그 중에서 "종점까지 내내 퍼질러 앉아있는" 경우는 그야말로 하루에 손꼽힐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에는 환승하지 않은 경우라도 내릴 때에 카드를 찍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가 요금이 부가되는 방식으로 보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해져 있었다. 누구에게 단순하고 누구에게 이해하기 쉬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쨋든 결국 최종적인 "안내 스티커"는 다음과 같이 귀결되었다.

갈아타신 분이나 갈아타실 분은 내릴 때마다, 특히 마지막 내릴 때에도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꼭~ 찍어주세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버금가는 문구의 교통카드 사용 안내문


사용자(시민)를 그냥 바보로 보는 게 아니라 바보에 잠재적인 범죄자에 호구로 보지 않는 다음에야, 이런 식의 사용방식을 만들었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왜 그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도, 최소한 그 사람이 종점까지 이동했을 때의 거리만큼만 요금으로 책정한다거나, 환승요금의 평균치를 매긴다거나 하는 식의 제스쳐조차 취하지 않는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지하철-지하철 환승이나 같은 노선 버스 간의 환승을 막아야 할 정도로 그 "UI 설계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2. '다인승탑승'의 사용성 함정
이제 곧 지하철에서도 교통카드만 사용하고 일회용 승차권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변화의 IT 강국이다. 버스에서 교통카드 관련 차내방송을 할 때 한동안 빠지지 않던 것이, "1인 1카드"라는 표현이었다. 굳이 "1인 1카드"를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그것을 어겼을 경우의 페널티는 의외로 상당히 크다.

우선, 모두 아시다시피, 여러 명이 하나의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려면 기사에게 "미리 말을 해야" 한다. 미리 말을 하면 기사가 조작 패널에서 버튼을 2번(다인승+숫자) 눌러 다인승 모드를 만들고, 그 후에 카드를 찍으면 "다인승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며 여러 명에 대한 요금이 부과된다.

두 명의 사용자가 하나의 시스템을 공유하면서 사용해야 하는 이 사용 시나리오가, 얼마나 심각한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지는 사실 모두 '경험에 의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통카드가 적용된 이후 내가 가장 즐겨 앉는 자리는 기사 바로 뒷자리인데, 여기서 '다인승 탑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략 80%의 사용자가 시스템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 즉, 시스템이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아서 - 어떤 식으로든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을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존에 시스템을 사용하던대로 자연스레 교통카드를 '대면서' 말하는 경우다. 사실 기껏 한가지 사용법을 가르쳐 주더니 아주 가끔 있는 어떤 경우엔 다른 순서로 사용하라는 것은 mode error를 논하기 이전에 아주 사용자를 혹사시키는 UI이다. 다인승 탑승을 자주 하지 않는 사용자는 반이상... 아니 대부분 이렇게 사용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는 익히 잘 알겠지만, 아래와 같이 다양한 커스텀 경고문을 봐서도 충분히 와 닿을 것이다.

여러명 탑승에 대한 안내문

다인승 탑승 시의 예외적인 사용순서에 대한 경고문들

 
이런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실수"를 했을 때, 즉 다인승이라고 말하기 전에 카드를 찍었을 때, 여기에 대한 기사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이다.

① Power User
하나는 교육받은 사용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경우로, 대부분의 power user가 송사리적 생각을 못하고 novice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다. 즉, 화를 내는 거다. -_-;;; "아니 왜 미리 말하라고 되어 있는데 먼저 대요!!!" 라는 식인데, 승객에게 화풀이 하는 기사에게는 나도 화가 나지만, 솔직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쨋든 기사는 조작패널로 다인승 모드를 만들고 승객에게 "카드를 떼었다가 조금 있다가 다시 대세요"라는 지시를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럼 비로서 사용자가 말한 수 만큼의 숫자가 찍히고, "다인승입니다"라는 행복한 평화가 찾아온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관찰에 따르면, 이때 앞서 찍어버린 1명 분의 요금을 빼주는 기사님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즉 사용자는 "평소 사용하던 시스템을 평소 사용하던 방식대로 사용한 죄로" 1명 분의 요금을 더 내게 되는 것이다. 사용성 평가라는 것이 이젠 학교 교육용이나 회사 보고용으로나 쓰인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현장에 나와보면 이런 모습을 못 보지 않았을텐데... 아니, 어쩌면 보고도 "이걸 이해를 못 하나... 설명문 좀 더 붙이자" 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오만한 UI 디자이너들이 그러는 것처럼. (ㅇㅋ 유죄 인정 -_- )

② Abuser
다른 하나의 반응은 사실 더 심각하다. 승객이 카드를 찍으면서 "2명이요"라고 하면, 기사는 조작패널을 누른다. 이때 단말기에는 "-2-" 라는 표시가 나오면서 "삐" 소리가 나는데, 이때 승객과 기사는 제대로 요금이 찍혔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종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인승 모드'에 있는 단말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 다음에 탄 승객(십중팔구 혼자 타는)에게 다인승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교통카드 시스템이 적용된 최초의 몇개월 동안은 "다인승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2인분의 요금이 찍히는 경우는 다인승 처리가 된 경우이거나, 아니면 위에서 말한 "'환승할인'의 사용성 함정"에 빠진 경우이다. 환승할인은 분명 "시민의 권익을 위한"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참 욕하기도 어려운 시스템이고, 내가 실수를 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어제 저녁 고된 퇴근길에 하차할 때 내가 매일 하던 하차태크를 까먹었는지 아닌지를 기억할 사람은 또 어디 있으랴. 결국 한번 갸우뚱하고 마는 게 보통이었다.

그럼 이 문제가 현재 적용되어 있는 "다인승입니다" 안내 멘트로 해결이 되었을까? 물론 의도는 그랬겠으나, 이것 또한 잘못된 UI 설계의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GUI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넣고 있을 "Fatal Error" 팝업 메시지와 같이, 이미 오류는 저질러 졌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시스템으로선 사용자에게 "왜 시키는 대로 안 했니"라고 힐난하는 듯한...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_-=3

'다인승탑승'의 사용성 함정은 '환승할인'과 더해지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역시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다인승 탑승을 한 후에 동승자까지 모두 함께 환승할인을 받으려면, 다음 탑승 시에 기사에게 같은 방식으로 몇명인지를 "미리 말해야" 한다. -_-;; 귀찮으니 상상에 맡기고 통과. 하지만 다인승탑승 후 원래의 인원수가 아닌 인원(즉, 혼자나 일부 등) 혹은 신분(성인/학생... 이게 신분이었나 -_-;;; )으로 환승할 경우, 환승할인을 받을 수 없다.

다인승 탑승에 대한 당국의 안내문

요컨대 하지 말라는 거다. -_-;;;


최소한 1인분에 대해서라도 환승을 해줘야 당연한 거 아닌가? 기왕이면 원래의 인원보다 적으면 그만큼만 환승할인하고, 원래의 인원보다 많으면 추가된 인원만큼만 전체 요금을 매길 수도 있을텐데. 오직 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딱 한가지 조건만 다인승탑승과 환승할인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그 외의 경우에는 결국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를 만든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아놔. 글이 길어지고 있다. -_-a;;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3. '카드인식기'의 사용성 함정
(이건 그냥 간단히만 써보자. -_- ) RFID를 이용한 방식은 사실 매우 빨리 정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식이고, 실제로 효과도 뛰어나다. 예전에 현금으로 요금을 받던 시절, 버스에 탈 때마다 한명 한명의 거스름돈을 줘야 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이 RFID 카드 인식기를 이용하게 된 것이 사용자들의 승차 시간을 얼마나 크게 단축시켰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승차 시간"만큼은 말이지. ㅡ_ㅡ;;;

반대로, 예전처럼 버스에서 그냥 내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씩 카드를 찍고 내려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효율적인 방식이래도 없어도 되는 곳에 박아 넣으면 이렇게까지 불편해 질 수 있구나..라는 감탄마저 하게 된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차내의 안내 스티커 문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적혀"있거나 "붙어"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미리 찍어주세요... 라는 안내문구

한편, 아래의 안내문구도 많이 보던 내용일 거다.

미리 접촉하시면 부정승차...라는 안내문구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ㅡ_ㅡ;;; 사실 이 문제는 '환승할인'의 그림자 같은 거다. "환승했을 때에는 이동한 거리만큼" 지불하는 방식이므로, 역시 이동 거리를 줄임으로써 단돈 100원이라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대중이 모르고 넘어갈리가 없으니까.

결국 "환승할인"을 설계자의 의도대로 적용하자면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찍게 해야 하지만, 모든 승객이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찍으면 하차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테니 미리 나와서 찍으라고도 하고 싶고. 결국은 "2~3분 먼저" 나오라든가 하는 내용이 차내 방송으로 나오던 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UI 디자이너보다 대중의 특성에 대해서는 더 잘 아는 교통 전문가가 만들었을텐데, 이런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ㅡ_ㅡ;;;

RFID 방식의 교통카드를 옷 안에 넣고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인식된다든가, 여러 장을 함께 찍으면 중복 결제될 수도 있다거나("1인 1카드라고 했잖아!"..라는 걸까), 그러면서도 금속성 재질의 물건(장신구, 핸드백 고리, 알루미늄 케이스, USB 메모리, 담배 은박지, 사탕 포장지 등)에 의해 차폐되어 인식이 안 될 수도 있다거나 하는 문제는 원래 그 방식 자체가 그러니 넘어가는 걸로. 실행 초기에 단말기 자체가 인식이 안 돼서 아예 무료운행하는 날도 많았던 (현금손님만 유료로 할 수도 없으니) 것도 지난 일이니까 논외로 하자. 비록 예의 홈페이지에 찾을 수 있는 아래 문구가 복장을 터지게 하더라도. (이 정도로 현실을 무시한 시스템이 또 있을까?)

여러장 사용하면 중복결제될 수 있다.

요컨대 "1인 1카드" 이상도 이하도 안된다는 거다.


... 그래도 모처럼 사진이 있으니 한가지만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이영수증 발행비용이 연 2억원

기왕 찍은 사진은 아까와서 올렸지만,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귀찮으니까 투덜거림은 링크로 대체. -_-;;;
한겨례 신문 2007년 1월 26일자 <버스가 기가 막혀>

[○] 4월 3일 추가된 내용





갑자기 맺음말. ㅡ_ㅡ

교통카드 시스템은 이런 어마어마한 사용성 함정들을 포함한채로, 내가 보기엔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 운영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곳답게,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까지 걸어놓고 'UI 설계 상의 실책'을 모두 '사용자 실수'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실수는 환불해 주지 않습니다.

요컨대 내 책임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사실 이 '왠만큼 엉터리로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이는' -_- 단말기의 고장이라는 것도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내친 김에 더 찾아보니, 실제로 환불신청을 하는 과정도 매우 일관된 UI 설계 정책 - 즉, 되도록 불편하게 하고, 실수하면 네탓이요 - 을 따르고 있는 듯 하다. ㅡ_ㅡ;;;;

교통카드 사용법을 알리는 다양한 안내문들

한국에선 버스 타는 법을 익히려면 이 정도의 문구들은 모두 마스터해야 한다.


... 이런 판이니 뭐 글을 쓸 마음이 날 리가 있나. 욕할 꺼리 밖에 없는 UI에 대해서 글을 적는다는 건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처지에서 참 맥빠지는 일이다. 그것도 모처럼 (비록 작지만) 신기술인 RFID 방식을 널리 적용한 좋은 HTI 사례가, 뭔가 Public UI 관점에서 발전할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 이렇게까지 나쁘다 못해 '못된' UI로 변해 버리는 걸 보면서 참 맥이 많이 빠지기도 했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라도 후다닥 적어 올리게 된 이유는, 바로 어제 이 '다인승탑승' 때문에 생긴 사건에 대한 가슴 아픈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나쁜 UI가 결국 사람을 다치게 했다.

... A씨는 아들의 요금까지 포함해 “두 명이요”라고 말한 뒤 카드로 버스 요금을 찍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A씨의 카드에서는 요금이 빠져나가지 않고 A씨 뒤에 따라 들어오던 한 술 취한 승객의 카드에 두 명분인 1,800원이 찍혔다. 이 승객은 버스기사 이씨에게 2인 요금이 나온 것을 따져 물었지만 이씨는 앞서 탄 A씨에게 물어보라며 넘겼던 것. ...
ㅡ 노컷뉴스 <버스기사 폭행한 20대 복싱선수>에서 발췌 (2008.3.3.)

이 기사에서는 교통카드 시스템의 UI 설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정말 기분 착잡해지는 내용이었다. UI니 UX니 디자인이니 백번 말하고 이슈화 시켜봐야 결국 말 그대로 issue에 그칠 뿐, 이런 사건이 터져도 결국 '복싱선수가 폭행했다'는 것만 강조될 뿐이라니... (뭐 반대로, "복싱선수가 폭행을 저지른 사건을 보고도 UI만 보는 인간이라니"... 할 수도 있으려나 =_=a;; ) 어쨋든 공공재의 UI는 이 사례처럼, 눈에 안 띄게 사람을 해칠 수도 있으니 더욱 신경써야 할테지만, 사실 그 반대인 경우가 너무 많다. 그 결과는... 그저 '나쁜 UI'가 아닌, '못된 UI'... 심지어 '사악한 UI'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카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서울시의 홈페이지는 "서울특별시 대중교통 정책안내 페이지"이다. 지난 몇년간 미련이 남아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이 홈페이지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점점 저 제목에 들어있는 단어 2개가 마음에 걸린다.

대중... 나도 Public UI 라는 말을 쓰곤 하지만, 이 홈페이지를 만든 사람들(디자이너나 개발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_-+ )의 머릿속에 대중이란 뭔가 자신들과는 다른, 모종의 무지몽매한 호구를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정책... 그런 대중이 매일같이 이용하는 버스와 지하철에 대한 설명 홈페이지에, 굳이 정치적 결정(책략)이라는 걸 넣은 것은 어떤 자신감 혹은 틀에 박혀버린 사고방식이었을까.



... 여기까지.

원래는 Public UI의 대표적인 사례로 준비했던 자료지만, 모든 UI 디자이너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실패사례의 총합으로 정리하면서, 작년 11월부터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던 이 오랜 숙제는 씁쓸한대로 이렇게 마무리 해야겠다.

[○] 6월 23일 추가 - 경기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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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이 글은 2005년 사내에서 게재했던 컬럼을 옮긴 것입니다. 아직 공개여부를 확인받지 못했으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분께서는 저자의 서면동의 없이 이 글의 참조나 인용이나 등등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편에서 대중 인터페이스는 인간 대중의 UI 개선 활동이라고 일단 정의했으나, 사실 이때의 UI 개선은 단순히 사용편의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훨씬 다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는 대중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 혹은 가질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 가치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집단이기주의로 이해될 수도 있으며, 평소 개개인으로 관찰될 경우에는 이성과 상식의 베일에 가려진 인간의 본성이 대중 속 익명의 개체를 통해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집단이기주의의 경우 해당 대중이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를 단체로서 규정하고, 단체 안에서의 의견을 규합하여, 이를 단체의 공식적인 의견으로서 대내외로 표출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이는 대부분 장기적인 사회현상으로 다뤄질 수 있고, 다양한 규모의 문화/준문화 권에서의 관점의 차이를 다루는 문화적 UI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 묘하게도, 대중 인터페이스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이 문화적 UI라는 연구 주제에 대하여, 필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자.  =_=a;;

하지만 대중 속에 묻힌 개체의 익명성에 기인한 행동은 이보다 훨씬 단기적으로, 아니 주로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익명적 행위’는 행위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으리라 생각되는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반사회적이거나 파괴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때의 익명성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 즉 그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주변의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 행동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동참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하여 그 행동의 결과를 행위자로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고 있을 때에 성립되는 것이다. 길거리 광고판의 모델 얼굴에 씹던 껌을 붙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 행위를 제지할 마음이 없었을 테고, 그 행위를 한 사람 역시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뭔가 개인적인 일로 화가 나서 공중전화 부쓰를 발로 찬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의 제지를 받기는커녕 함께 발길질을 해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익명적 행위는 그러한 행위가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듯 하지만, 조금만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너무나 명확하게, 피해자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행위인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행위에서 피해자는 광고판을 관리하고 청소해야 하는 사람이나 공중전화 부쓰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일 수 있고, 혹은 그 광고 모델을 좋아하기에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상한 다른 행인이나 공중전화를 사용하려다가 깨어진 유리 조각에 손을 벤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이러한 가능성과 사례를 제시하면서 익명적 행위를 비난하고, 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피해자가 인간이 아닐 때는 어떨까?


2. 인간들, 로봇을 만나다.

지난 수년간, 대중 소비자에게 최초로 상용화되는 로봇은 청소 로봇임이 명확해졌다. 미국 iRobot社의 진공청소기 로봇인 Roomba가 2002년 발매 이후 미국에서만 100만대 이상 팔려나가면서, 청소 로봇은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가정용 로봇으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꿈 같은 로봇 세상에 대한 많은 가정과 우려가 무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은 어느 순간 로봇은 우리 가정에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간을 공격하기에는 로봇이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인간은 로봇을 집안에 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 여기에 대한 궁금증에서, 2004년 3월 삼성종합기술원 HCI Lab. (현재의 Interaction Lab.)에서는 당시로선 가장 고도의 지능을 갖춘 청소 로봇들을 사무실에 설치하여 청소를 하게 하고, 이에 대한 연구원들의 반응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IT 분야에서 다년간 종사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일부 연구팀은 가정용 로봇을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상당히 편향된 대상이었지만, 사실은 ‘우리도 외국 연구소처럼 로봇 풀어놓고 일해보자’는 욕구가 컸기에 그런 문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P

이 로봇 방목 퍼포먼스(?)에 사용한 청소 로봇은 Karcher社의 RoboCleaner RC3000으로, 당시 시중에 나와 있던 청소 로봇 중에는 유일하게 적외선 항법장치를 이용한 자동 충전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다른 모델의 청소 로봇들은 자동 충전을 지원하지 않거나 그 방식이 원시적이어서, 비교적 넓은 연구실 환경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다.

Karcher RC3000



가동 후 첫 며칠 – Exploratory

RC3000 in action
로봇이 연구실 한편에 설치되어 가동을 시작하자, 곧 연구원들은 모터 소리를 내며 책상 사이를 누비는 이 귀여운 물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보인 행동은 그 기능성에 대한 것으로, 특히 장애물에 부딪혔을 경우의 반응(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에 관심을 갖고 발로 진행방향을 가로막는 행동을 보였다. 사실 로봇은 진행 중의 충격을 분석하여 주변 지형을 파악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로봇의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개미의 진행방향을 방해하는 장난과 같은 행동을 한 후에야, 사람들은 로봇의 본래 기능 – 즉 청소기로서의 성능에 관심을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작은 쓰레기를 그 진행방향에 놓아두고 제대로 빨아들이는가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소 로봇이 충전기 base station을 떠나 필자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연이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예상(혹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기는 했으나, 그 유형은 전혀 뜻밖이었다. 복잡한 랩의 배치를 고려할 때 충전기를 찾지 못해 어딘가에서 방전된 채로 발견되리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고, 가장 큰 문제는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장애물임이 드러났다. 이 시도의 대상이 된 장소는 아래 도면과 같이 80여명의 연구원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곳으로,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일반 가정집처럼 장난감과 신문과 같은 장애물이 바닥에 널려있지 않으므로 로봇이 활동하기에는 오히려 좋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소 로봇 구동을 시작한 당일, 로봇의 ‘실종사건’은 1시간에 한번 꼴로 발생했다. 필자는 연구실 어딘가에서 잠적해 버린 청소 로봇을 찾아 허리를 굽힌 채 연구실 구석구석을 몇 번이나 뒤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연구실 곳곳에 설치된 배선용 ‘쫄대’를 넘지 못해 얹혀진 채 멈춰있는 로봇을 자주 발견하게 됐다. 사람에게는 그냥 바닥과 마찬가지로 밟고 다니는 설비가, 로봇에게는 넘지 못하는 장벽이 된 것이다. 배선용 쫄대는 연구실 곳곳에 수십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번번히 로봇을 ‘구조’하기 위해서 출동할 순 없었기 때문에, 가급적 로봇 스스로가, 혹은 주변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청소 로봇은 기계적으로 완성된 형태였기 때문에, 로봇에 지렛대나 스프링과 같은 부가적인 장치를 달아 스스로 쫄대를 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실패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Kick Me If I’m Stuck.” 이라는 표시가 부착되었다. 이로서 로봇이 쫄대 위에 얹히게 되었을 때 주변에 앉아있던 연구원이 발로 밀어주어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청소 로봇이 사무실 환경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는데, 그것은 연구실 정문에 설치된 자동문이었다. 민감한 움직임 감지 센서에 의해 구동되는 이 자동문은 청소 로봇이 문을 향해 접근하면 절묘한 타이밍으로 문을 열어 주었고, 따라서 로봇이 스스로(?) 연구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봇의 ‘실종사건’에 비해 ‘가출사건’은 로봇이 스스로 새로운 기능을 한다는 면에서 뭔가 기특해 보이는 면이 있었고, 가동 3일째부터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밖으로 나가는 로봇을 연구실 안으로 되밀어 주기 시작했다.

가동 일주일째 – Curiosity
첫 가동 후 일주일 동안은, 청소 로봇에 대한 연구원들의 기대가 조정되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경우 로봇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만족되지 못하고 실망을 주었으나, 몇몇 기능의 경우엔 오히려 기대 이상의 성능에 크게 기뻐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반응은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나 그렇지 않은 연구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났는데, 청소 로봇의 구조와 기능적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연구원들조차도 그러한 기능들과 환경의 조합에 의해 로봇이 어떠한 문제를 우연히 해결하게 되면 감탄을 마지 않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봇의 행동 패턴에 대한 갈채와 야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고 있었다. 입구가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가 몇번의 시도 끝에 성공적으로 빠져 오는 모습을 본 연구원은 로봇의 단순한 기능(벽에 부딪히면 튕기는 방향으로 돌아 진행한다)의 미학에 대해서 칭찬했고, 결국 빠져 오지 못하고 배터리가 방전되어 멈춰있는 모습을 본 연구원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을 비난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해 로봇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은 특히 그 소음에 대한 반응에서 두드러졌는데, 복도 쪽에 앉아서 로봇의 소음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그 소음이 시끄럽다고 느꼈고, 복도 쪽에서 멀리 앉아 있기에 가끔 로봇이 왔다가는 정도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괜찮은 정도의 소음으로 인식했다. (참고로 사용된 청소 로봇의 소음은 약 54db로, 사람이 대화할 때의 목소리 크기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대신 청소 로봇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자리의 사용자들은 청소 로봇이 가까이 왔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있었다. 결국, 로봇에 대한 각 사용자의 조정된 기대치는 서로 달랐지만, 실제로 로봇을 접하면서 원래의 상상하던 것에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기대 조정 기간을 거치자, 연구원들은 청소 로봇에 대한 각자 나름대로의 모델을 가지고 로봇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행동을 했던 연구원 S씨는 항상 청소하러 다니는 로봇의 튼튼함에 대한 믿음과 기특함에 대한 나름의 표현으로 (본인의 주장) 로봇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동문 바깥으로 나가려는 로봇을 다시 들여놓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던 것 같지만, 이후엔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걷어차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S씨 외에도, 로봇과의 생활이 장기화되자 그 소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불평하는 연구원들이 점차 늘어서 필자에게 ‘실험’의 목적과 기한을 묻는 연구원들이 매일같이 있었다.

가동 보름째 – Sympathy
가동을 시작한지 보름이 넘도록 로봇에 대한 연구원들의 반응이 안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필자는 다음 연구실 도면의 (A) 위치에 있던 로봇을 (C)로 옮기고 새로 한 대의 로봇을 (B) 위치에 추가 설치하여 모두 2개의 청소로봇이 연구실을 돌아다니도록 했다. 이로써 연구원들이 로봇과 만나 상호작용할 가능성도 2배로 늘고, 따라서 로봇에 대한 호감이든 반감이든 보다 빨리 그 반응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연구실 도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가동 3주째를 맞은 3월 23일, 연구원 누군가가 그림과 같은 종이컵과 쪽지를 로봇에 부착했다. 쪽지의 내용은 “저는 24시간 청소만 하는 불쌍한 로봇입니다. 여러분의 조금한 정성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되어 있었으며, 요컨대 청소 로봇이 익명의 사용자에 의해서, ‘앵벌이 로봇’으로 기능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쪽지를 붙인 누군가는 일부러 ‘조금한’과 같은 잘못된 한글을 사용하여 앵벌이 소년의 안내문을 적절히 패러디하고 있었다!)  이 종이컵은 사실 로봇의 충전기 진입을 어렵게 했기에, 필자는 종이컵 윗부분을 잘라내어 로봇이 앵벌이 기능과 청소 기능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필자가 넣어둔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시작한 로봇의 앵벌이는 이후 일주일만에 480원으로 늘어났고, 이후엔 점차 ‘수금’되는 액수가 줄어 약 3주 후에는 아무도 동전통에 돈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1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이기에 때로는 동전통이 무거워 충전기에 올라가는 것을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마도 세계 최초로 스스로의 노동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얻는 ‘앵벌이 로봇’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주로 ‘얼마나 버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 많기는 했지만. -_-a;;

3월 28일, 마침내 소음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이 접수되었다. 한 연구원이 포스트잇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적어 로봇에 부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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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얘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청소…), 역시 ‘소리’ 문제가 해결되야 할 거 같구요. &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라 사실 상당히 신경이 쓰입니다. 좀더 익숙해지면 괜찮을지 :) 옆에 오면 깜짝깜짝 놀라요.”

이전부터 로봇에는 “저에 대한 의견을 포스트잇으로 붙여 주세요~ :)” 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 의견이 게시된 것은 이 경우가 처음이었다.

가동 한 달째 – Empathy
애당초 HRI (Human-Robot Interaction)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한 퍼포먼스인 이상, 이 일이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명확한 반응이 나오는 시점에서 그만두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따라서 앞의 쪽지를 접수하고 종료를 계획하던 중,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 연구원이 자신의 자리 옆의 복도를 가로지르는 쫄대에 종이 빗면을 부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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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복사용지로 만든 이 빗면 덕택에 로봇은 쫄대에 걸리지 않았고, 연구원은 덜덜 소리를 내며 쫄대에 걸려 있는 로봇의 엉덩이를 차주기 위해 일어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연구원이 로봇이 쫄대에 걸려있을 때의 소음이 시끄러워서 그랬는지, 그렇게 얹혀 있는 로봇이 불쌍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로봇에게 불편한 환경을 사용자가 스스로 개선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의 현상이었고, 또 빗면을 설치함으로써 몇몇 개인 사용자에게만 미치던 불편함을 줄이면 전체적으로 부정적 반응이 줄어들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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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3월 31일부터 가동한지 만 한 달이 되는 4월 1일까지, 얇은 플라스틱 판(제본용 반투명 표지)을 휘어서 만든 튼튼한 빗면이 연구실 길목에 있는 대부분의 쫄대에 설치되었고, 이 과정에서 청소 로봇이 앵벌이로 벌어들인 돈이 일부 사용되었다. 앵벌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익명의 연구원에 대한 경의로, 모금함에는 “모금액 480원은 장애로봇을 위한 빗면 설치비용으로 사용됩니다. 감사~” 라는 메시지가 부착되었다. 물론 실제로 연구실 내 수십 곳에 설치된 배선용 쫄대 모두에 빗면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30여 개의 빗면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장당 180원짜리 플라스틱 판이 15장 이상 사용되었다. (총 2,700원) 여기에 업무시간이 끝난 후 쫄대를 찾아 다니며 하나씩 빗면을 설치한 필자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계산은 맞지 않았으나, 이런 메시지와 환경의 변화가 또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 interaction으로 여겨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비록 제대로 횟수를 적어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빗면을 설치하기 전에는 로봇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아 쫄대에 얹혀 있는 로봇들을 찾아 ‘구조’한 것이 하루에 3~4회이고, 이외에도 연구원들이 도와준 횟수도 상당했으나, 빗면 설치 후에는 ‘구조’ 횟수가 반 이하로 준 것은 물론 쫄대에 걸려 있는 것보다 배터리 방전으로 구석에 멈춰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빗면을 설치함으로써 로봇이 연구원을 귀찮게 하는 일은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이 실험(?)은 언제 끝나느냐’고 묻는 연구원도 많이 줄었다.

가동 한 달 반째 – 설문조사
의외의 해결안을 통해 로봇과 연구원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훨씬 자연스러워 졌으며, 연구원들이 방전된 로봇을 충전기에 가져다 놓는 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필자의 로봇 ‘구조’ 활동은 3~4일에 1번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로봇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고 귀찮게 하지도 않게 되자,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이제 로봇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 퍼포먼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필자는 이 시점이 청소 로봇에 대한 안정된 관점이 생긴 시기라고 판단하고, 퍼포먼스를 종료하기에 앞서 4월 20일경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청소 로봇에 대한 관점을 조사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로봇이 활동했던 연구실에 근무하던 70여명의 연구원 중에서 설문에 응한 사람은 44명으로, 원래 여성이 적은 연구소였기 때문인지 여성 응답자는 8명뿐이었다.

별 생각 없이 ‘로봇이 돌아다니는 연구실’이란 걸 한번 경험해 보자고 진행된 로봇 방목 퍼포먼스답게, 설문조사 결과에서 별로 특이할 만한 분석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2달 가까이 청소 로봇을 지켜 본 연구원들에게 막연히 “100점 만점에 몇 점?” 이라는 질문을 던지자 평균 67점이 나왔으며, 이는 일반 가전제품을 생각하면 낮을 수 있지만 로봇의 특수성(과도한 기대치와 그에 따른 실망감)을 고려할 때 기대 이상의 수치라 하겠다. 또한 로봇의 지능수준이 만족스러운가를 묻는 질문(매우 불만족스러우면 -2점, 매우 만족스러우면 +2점)에서도, 평균 -0.4점을 기록해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은 수치를 보였다.

청소 로봇이 로봇인가? 가전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래도 뚜렷하게 가전이라는 의견이 많아 79.1%를 기록했는데, 이는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원(78.6%)이나 그렇지 않은 연구원(79.3%)이나 비슷한 수치이므로 장기간 로봇을 접한 사람에게 ‘로봇’이라는 단어가 갖는 환상은 더 이상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실이라는 거친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로봇이 살아남는 데에는 많은 연구원이 도움을 주었음이 밝혀졌는데, 44명의 응답자 중에서 30명 이상이 “장애물을 넘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뒤에서 밀어줬다”거나(31명) “구석에서 헤매고 있어서 탈출을 도와줬다”라고(32명) 응답했으며, 어떤 식으로든 도와준 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소수(2명)에 불과했다.

이 설문에는 이후 청소 로봇을 계속해서 연구실 내에 운용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얄궂게도 정확히 50:50의 찬반수가 나왔다. 찬성한 22명의 가장 큰 이유(10명)는 “HCI Lab에서 로봇 연구를 한다는 홍보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바닥이 깨끗해져서 환경 개선 효과가 있다”는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에 반대한 22명의 가장 큰 이유(13명)는 “소음이 시끄러워서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것으로, 비록 동등한 수치가 나왔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결론은 명확했다.

가동 두 달 – 종료
연구실에 청소 로봇을 가동하여 다수 연구원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기 시작한지 2달여 만에, 연구실 구석에 설치된 충전기와 청소 로봇은 단계적으로 철수되었다. 2대의 충전기에서 수거된 쓰레기(먼지)는 약 350g으로, 2달 동안 시끄럽게 돌아다닌 것치고는 청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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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Robots are aliens
영화 <Men In Black>은 지구에 숨어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감독하는 비밀기관을 묘사했다. 이 기관의 고참 요원인 K는 “인간은 이성적이기 때문에, 외계인이 지구에 있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왜 굳이 사람들을 속이느냐.”는 신출내기 J 요원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A person is smart. People are dumb, panicky, and dangerous animals.

처음 로봇들을 연구실이라는 험한 환경과 수십 명의 연구원이라는 대중 앞에 풀어 놓았을 때에, 필자는 뒤의 문장에 관심이 있었다. 과연 인간 대중의 ‘집단이기주의’와 ‘익명적 행위’는 어떤 식으로 이 로봇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자신의 일을 방해할 뿐 실질적으론 별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때때로 신경 써주지 않으면 복도를 가로막고 있을 뿐인 이 ‘물건’들에 대한 거부감은 과연 이 로봇들에게 쏟아질 것인가? 혹은 배후의 조정자인 필자에게 쏟아질 것인가? … 아무래도 디스토피아 distopia적인 SF영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이런 상상들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물론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기술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도 높은 연구원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는 했으나, 2달여 동안의 ‘로봇 방목 퍼포먼스’에서 부각된 것은 오히려 위 대사의 앞쪽 대사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 생경한 존재(로봇)에 대해서 무작정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 상대(로봇)의 행동과 움직임을 관찰하고, 어느 정도 조작을 가하면서 그 반응을 보기도 하는 등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지적 생물체를 만난 것과 같은 행동패턴을 보였다. 또한 개인은 그들(로봇)과 조우했던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나름대로 대응방식을 갖게 되었고, 이를 자신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반영시켰다. 그러다가 이 반복적이고 따분한 존재(로봇)에 대한 관심을 점차 사그라졌고, 분명히 변함없이 묵묵하게 자신(로봇)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 이 글을 읽은 심리학자 중 누군가가 인간 관계의 발달 모델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_-+  하지만 어쩌면 로봇은 인간에게 있어서 <Men In Black>의 외계인 같은 존재는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UI 연구자들은, 인간 개개인의 이성에 호소해서 로봇을 그들의 생활 속에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대중으로서의 인간의 또 다른 측면이 그 관계를 그르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이 글을 게시판에 올림으로써, 도대체 몇 명이나 이 개별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 20050419 냥 =8-)

※ 참고: 설문조사에 사용된 문항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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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n1ey

이 글은 2005년 사내에서 게재했던 컬럼을 옮긴 것입니다.

가위: 버내큘러 인터페이스
대중 인터페이스 public interface란 무엇일까? 저는 그 근원을 산업 디자인에서 말하는 버내큘러 디자인 vernacular design 행위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상 제품들, 이를테면 가위 같은 것들은 어느 순간 오늘날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이자, 사용자였던)의 손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최적의 형태로 수렴된 결과입니다. 중세시대에 사용된 가위의 모양에서 지금의 모양이 변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조금씩 결합되어 아무개가 디자인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진 형태를 갖게 된 것입니다.

대중 인터페이스의 특징은, 역시 누군가가 “이 물건은 이러저러하게 쓰는 이렇게 생긴 물건이니 그렇게 사용할지어다!”라고 제시한 것이 아닌, 어떤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그걸 사용해 가면서 대중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 조금씩 바꿔서 스스로의 문화 속에 녹여왔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욕심이 좀 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 테마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첫번째 주제는 인간의 문자, 그 자체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 다음부터는 존댓말이 사라졌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1. 문자통신의 진화

인류는 유사이래로 – 말 그대로 – 원거리의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음성과 몸짓을 대신하여 문자를 사용해 왔다. 문자의 유래를 봐도 처음에는 가축의 수를 센다든가 물물교환을 위한 의사소통을 한다거나 신묘한 현상에 대한 경외를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그것이 점차 독립적으로도 완성된 의미와 구조를 갖게 되어 그 맥락을 벗어나도 뜻을 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기록’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정보가 제한(시각적인 것으로)되어 왔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역사 상 가장 효율적인 정보 기록 및 전달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잠깐... 필자의 변명]

이 문자통신 textual communication 은 주로 역사와 같이 기록의 목적을 위주로 쓰였고(사실 이 경우엔 ‘통신’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된 경우는 표지판, 간판, 안내문(poster) 등, 대부분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일방적인 ‘알림’의 용도가 많았다. 그런 문자통신이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마도 ‘편지’라는 개념이 발명된 이후일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그 문자가 적힌 물건(대나무든, 양피지든, 종이든)을 들고 직접 상대방에게 가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불쌍한 졸병이, 때로는 우연히 심부름값을 벌게 된 여행자가, 때로는 충직한 하인이 그 일을 맡았다. 그러다가 우편 시스템이 생기면서 문자통신을 전문적으로 전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고, 이는 전신망이 세상에 제법 퍼진 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 편지는, 그야말로 수백년에 걸쳐서 일세를 풍미했던 상호 문자통신 방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편지는 문자통신가 가진 한계를 - 아주 조금이지만 –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쌍방향 대화는 온갖 미사여구와 구조화된 문장으로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으며, 상대방과 의견조절을 해야 할 때에도 다양한 수준의 대안에 대해서 나열함으로써 원컨대 다음 편지왕래에서는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었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점잖지만 치졸한 저주를 퍼부음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더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감정 중에서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것으로 만인이 쉽게 인정해주는) 것, 즉 ‘사랑’만큼은 이게 잘 안 되었던 것이다. 물론 베르테르쯤 되는 문장가라면 세상 온갖 아름다운 것을 갖다 붙이고 과장하고 (때로는) 폄하함으로써 로티(롯데라고 쓰니 좀 웃긴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겠지만, 보통의 선남선녀들에게는 이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주 하고 있다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진한 키스나 강한 포옹이라도 해주련만,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를 아무리 적어넣는들 그 마음이 전해질 리가 없다. 그래서 향수도 뿌려보고, 머리카락도 잘라 넣어보고, 낯뜨겁지만 입술연지도 찍어 보내보고 그랬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건 왠지 너무 노골적이고, 적어도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때로는 외설스럽기까지 하다. 마음을 전하면서 뭔가 애틋한 마음을 훼손하지 않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그때, 누군가가 위대한 발명을 했다. 즉 편지 말미에 “X”, “O”라고 적음으로써 각각 ‘키스’와 ‘포옹’을 뜻하도록 한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기는 하지만, 건전하게 가자. 건전하게…) 아마도 최초의 ‘문자를 통한 비문자적 감정 표현’이 될 이 표시는 곧 문장력 떨어지는 대다수 연인들의 편지에 유행처럼 번져서 “x”, “X”, “XXXXX”, “XX OOOOO” 등 나름대로 다양한 변용을 보이게 된다.

이후 전신이 전화로 발전하고, 또 이 전화라는 게 특별한 기술(전신은 어려웠던 게다… 쯔돈쯔돈… -_-a; )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인정되면서 편지는 첫번째 시련을 맞게 된다. 요컨대 실시간을 용건을 전달할 수 있는 전화를 두고 굳이 펜대를 놀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편지는 이 위기를 ‘문자’라는 자신의 특장점으로 의외로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사용자들은, 이 대중들은 전화와 편지가 서로에 대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음성 대화는 자신의 기분이나 주변의 상황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한편 어떤 문제에 대해서 편지를 쓰게 되면 곰곰이 생각해서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어 말실수(‘글실수’라는 말은 없다)로 인한 문제를 막을 수 있다. 결국 전화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실시간성)이 있지만, 어떤 경우엔 여전히 편지가 보다 나은 매체였던 거다. 그런 이유로 문자통신은 이 새로운 기술 – 전화 – 와 함께 한동안 잘 지냈고, “XXX(쪽쪽쪽)”과 “OOO(꼭꼭꼭)”도 명맥을 유지했다.

편지에 결정타를 먹인 기술은 컴퓨터 네트워크였다. 내가 만든 문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이 읽어볼 수 있게 되자, 이건 편지와 전화의 장점만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특히 과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던 이 네트워크(ARPANet)를 세상에 공개하자마자, 이 새로운 기술에 열광한 젊은 컴퓨터 공학자과 그 친구들은 곧 이 기술을 제멋대로 뜯어 고치면서 새롭고 (가끔은) 편리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메시지 전송 sndmsg, 이메일 e-mail, 텔넷 telnet, 파일전송 ftp, 고퍼 gopher 등과 같이 학술적인 토론과 정보 교환을 위한 용도였던 것이, 이 네트워크가 인터넷 internet 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되자 좀더 대중적인 용도, 즉 하루 온종일 이야기를 한다거나(IRC; Internet Relay Chatting) 여러 명이 온라인 상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MUD; Multi-User Dimension) 방법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기술 발전 속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발전한 인터넷은, 곧 인류 문명에서 근근히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편지와 전화 사이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곧 편지와 전화의 장점을 모아 놓은 이 새로운 실시간 문자통신 기술에도 단점은 있었다.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을 다시 기억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컴퓨터 공학자들은 이에 또다시 접속자들이 앞 사람이 올린 글들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BBS; Bulletin Board System)이었고, 이 BBS를 통해서 비로서 많은 유익한 토론이 오해 없이 차근차근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 그렇다, 오해 없이. BBS 이전의 네트워크를 통한 실시간 문자통신에서는 짧은 몇 개의 문장만을 주고 받음으로써 의사소통을 하곤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막 떠오른 문장을 때로는 부주의하게 상대방에게 보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고, 특히 농담 삼아 던진 이야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흐려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상대방이 발끈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상대방이 눈앞에서 장난스런 눈을 반짝이면서 미소를 띄고 이야기하면 아무렇지 않게 웃고 넘길 이야기가, 근엄한 검은 화면에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되었을 때에는 쉽게 용서되지 않는 도발로 여겨지곤 했던 것이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한 BBS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제안이 하나 등장했다.

19-Sep-82 11:44    Scott E  Fahlman             :-)
From: Scott E  Fahlman <Fahlman at Cmu-20c>
 
I propose that the following character sequence for joke markers:
 
:-)
 
Read it sideways.  Actually, it is probably more economical to mark things that are NOT jokes, given current trends.  For this, use
 
:-(

Smiley: Archetype of Emoticon?
짜잔~ 이모티콘 emoticon이 발명된 것이다. 물론 이 때(1982년)는 아이콘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기에 이모티콘(emotion + icon)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1970년대에 유행했던 웃는 얼굴 마크(노란 바탕의 둥근 모양을 가진)를 뜻하는 ‘스마일리 smiley’라고 불렸다. (어쩌면, 당시 이 노란 웃는 얼굴 마크가 평화의 상징으로 쓰였기에 인터넷 토론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표시라는 뜻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마일리를 제안했던 스캇은 노벨 평화상을 받아 마땅하다. 이후 이 스마일리를 기본으로 수백가지 다양한 ‘표정’의 스마일리 들이 인터넷을 통해 생성되고 공유되면서 ‘방금 얘긴 농담이니까 화내지 마세요~’라는 원래의 용도보다 훨씬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언어를 주고 받음으로써 전달되지 않았던 다른 종류의 정보들을 전달하게 되었다. 스마일리로 인해서 인터넷 상에서는 오해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으며, 비록 그 스마일리가 격심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그 귀여움 덕택에 듣기 민망한 욕설과 저주보다는 감정을 덜 격하게 했을 테니 분명 인류 평화에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원래의 :-) 라는 이모티콘은,  ;-P  :-X  8-D  *<:^D  등 다양한 변화를 거치게 되고, 특히 동양의 사용자들이 코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동양, 특히 일본의 만화에서는 코를 그리지 않거나 희미하게 표현함으로써 귀여움을 표현하는 일종의 시각 문화가 받아들여져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  :>  X(  등의 표현을 포함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한동안 스마일리는 서양에서는 :-) 변형을, 동양에서는 :) 변형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즉 웹(Web; WWW; World Wide Web) 개념이 등장하고 브라우저를 통해 세계의 문자 정보를 그림과 함께(!!!)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그리고 매킨토시 Macintosh™를 비롯하여 윈도우즈 Windows™라는 GUI OS를 기반으로 한 PC가 널리 팔리고 마우스로 클릭하기만 하면 된다는 간편함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중들 – 기존의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공유되어 있는 문화나 인터넷 본연의 목적성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 을 아우르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용자들은 이 스마일리를 자신들에게 익숙한 GUI 요소인 아이콘 icon에 빗대어 ‘이모티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또한 전혀 새로운 다른 형식의 이모티콘을 창작해내기 시작했다. 그 중 괄목할만한 것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어떤 형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를 사용하는 현상이었다. 이를테면 유명한 영화인 스타트랙 StarTrek 의 우주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O-=T_,--- 를 사용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아스키 아트 ASCII art 라고 불렸던, 이전의 문자를 이용한 그림 표현 방식과 융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본고에서 다루는 대중 인터페이스와는 주제가 다르므로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 사실 여기서 더 주제가 벗어나면 귀찮아 질 듯 하다.  =8-d  )

보다 명백한 진화는 동양에서 발견되었다. 서양에서는 여전히 위의 전통적인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해, 복잡미묘한 감정 표현이 필요했던 동양의 대중들은 얼굴 표정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로 형식의 얼굴, 즉 ^_^ 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새로운 형식은  T_T  *^0^*  x_x 등 다양한 표정으로 발전하더니, 일본 만화 특유의 풍부한 감정표현 형식언어 들을 원용하여  >_<  =_=  6^v^; 등이나 심지어  \^o^/  {{{@_@}}}  \(-.-\)=333 등과 같이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 상태를 전달하게 되었다.

특히, 알파벳만으로 되어 있는 미국 표준인 아스키 코드 ASCII code에서 벗어나 자국의 문자를 이모티콘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이모티콘은 또 한번 역동적인 진화를 거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문자들은 비교적 그 형상이 단순해서, 다른 형상으로 차용하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한글의 경우에는 자모의 형상을 이용하여  ㅠ_ㅠ  -_ㅜ  o(ㅡ_ㅓ  [ㅎ_ㅎ]  ^오^  -ㅂ-  -ㅛ-  등과 같이 변용되었으며, 심지어  (/으ㅁ으)/ㅠ ㅕ ㅛ 와 같은(호통을 치며 밥상을 들어 엎고 있다;;) 표현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글은 그 제자(製字) 특성상 몇가지 자모의 기본 형을 조합 및 변형한 문자가 많아 대부분 문자의 이모티콘 활용도가 많은 반면, 글자모양이 훨씬 다양한 일본의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해당 맥락에 맞는 특정 문자가 중점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을 보이며, 동시에 다양한 특수문자를 함께 사용하여 높은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문자를 적용한 사례로는 ヾ(≧▽≦)ノ"   ゚・(つД`)・゚・   (-“-メ)  
┐(´ー`)┌  등이 있다. 최근에는 외국어 입력이 비교적 쉬워졌으므로, 가까운 중국의 한자는 물론 생소한 서구의 문자들마저도 포함하여  凸(-ω-メ)z 등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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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모티콘은 또 휴대폰 문자메시지(SMS; Short Message Service)라는, 새로운 기술의 유입으로 인해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처음에는 주어진 전송량(80bytes) 안에 용건을 입력하기 위해 고심하던 사용자들은, 가로 16자(한글 8자)로 고정된 형식을 갖는 이 공간을 다양한 문자 그림으로 채우게 된다. 이 문자 그림들에는 기존 이모티콘의 형식을 따르는 것도 있었지만, 점차 (특히 휴대폰의 화면이 8줄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서) 화면을 가득 메우는 명백한 ‘그림’으로 바뀌게 된다.

이 글을 적고 있는 2005년 초 현재, 개인 대 개인 간의 실시간 문자통신은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문자통신을 위한 기술은 점점 더 큰 폭으로 진화할 것이고, 이모티콘도 이에 맞춰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최적의 형태로 적응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여기까지 문자통신의 역사에 있어서, 그 매체의 단점을 보완하여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진화의 역사를 대략 서술해 보았다. 문자 통신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문자를 대표적인 통신 매체로 사용하게 되면서 감정과 같은 비문자 정보를 함께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대중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보조적인 인터페이스가 이모티콘이었다. “XXX OO”에서 시작해서 “ :-) ”이나 “ (^o^)a; ”, 그리고 “ (つ`曰`)つ ”에 이르기까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이모티콘은 최근의 통신 기술인 휴대폰 문자메시지에서도 문자통신 자체를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결국 문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편지에서 전신, 인터넷 등으로 이어지는 수십년간의 기술적 발전의 이면에서, 대중은 그 근본적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하고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문자 입력을 조합하여 만드는 이모티콘의 생명력은, 무엇보다도 그 시대 대중 사용자들이 공감대를 이루는 개념을 누군가의 재치있는 발상으로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쉽게 이를 변형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어느 정도(글꼴에 따라 다르지만)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럽다는 장점에 있다.

최근 그래픽 중심의 웹이 다른 모든 매체를 대신하게 되면서 풍부한 그래픽이 이모티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의 인스턴트 메신저 instant messenger나 몇몇 웹 게시판들에서 문자 이모티콘을 그림으로 된 아이콘으로 자동 변환해 주거나 별도로 삽입할 수 있게 되고 휴대폰이 문자메시지를 대신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 메시지를 지원하게 되면서, 오히려 문자 이모티콘이 가졌던 높은 자유도와 실시간성, 그리고 무한대의 변형가능성이 많이 퇴색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문자통신이 존재하는 한 그 맥락 하에서 언어적 내용 이외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이모티콘의 진화는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얼굴표정의 그림 이모티콘이 적용되고 있는 최근에도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감정 – 좌절 – 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인  _| ̄|○ 이 쉽게 입력할 수 있는  OTL 로 널리 재생산되어 사용되는 것이 그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앞으로 대중 인터페이스 public interface를 논의함에 있어서,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생적인 UI 개선 행위, 혹은 그 결과물을 대중 인터페이스라고 일단 정의하기로 하자. 어째 글의 앞뒤가 바뀐 것 같기는 하지만. -_-;;;

@ 20050330 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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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5년 사내에서 게재했던 컬럼을 옮긴 것입니다.

0. 시작하는 글

소위 '사용자'를 염두에 두고 UI를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평균사용자의 오류'에 대해서 말하곤 합니다. 과연 '통계적으로 평균적인' 특정 사용자에 맞춰 UI를 설계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혹은 적어도 맞는 일일까? 만일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고 한다면, '나머지' 사용자에 대한 배려, 아니 고려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 뭐 이런 고민들을 하죠. 이 모든 것들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마치 단군 할아버지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을 실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하나가 아닌 여럿일 경우는 어떨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가 다뤄야 하는 상황은 거의 항상 이렇습니다만...) 여러 사용자'들'은 이런저런 측면이 뒤범벅되어 결국은 평균사용자로 수렴될까요? 그렇다면, 앞의 논의를 고려해 볼 때 UI 개발자/디자이너의 일은 훨씬 수월해 질 겁니다.
 
하지만, 여러 사용자들 - 이들을 "대중 public"이라고 하겠습니다 - 을 상대하는 상황은 사실 이보다 훨씬 더 나쁩니다. 대중은 스스로 개개인의 성향을 완충하여 중립적인 형태로 수렴하기 보다, 오히려 개개인이 독립되어 있을 때에는 보여주지 않던 극단적인 모양을 돌출시켜 그 구성원들 하나 하나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행태를 보이는 성향이 있거든요. 집단행동이라든가 대중무의식 등의 현상은 이와 같은 일이 다른 분야(다양한 규모의 정치, 사회, 경제 등)에서 벌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 대중의 이 괴퍅하고 동적인 '사용자'로서의 특징은, 최근 인터넷을 구심점으로 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이 일상화되면서 점차 다른 양태를 띄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급속도로 개인화가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활발하고 진솔한 -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진솔한 -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본 테마연구에서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이 등장하는 대중적인 UI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합니다. 대중으로서의 user를 상대해야 하니까, user interface라는 말보다는 public interface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네요. 그리고 ... 어쩌면, 人間이라는 말이 '사람 사이'라는 뜻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public interface를 이야기함으로써 조금 더 弘益人間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함 보죠. ㅋ 
 
@ 20050323 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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