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블로그라고 하나 운영하다 보니, 쓰다가 포기한 글도 이제 열 꼭지 가까이 된다. 어떤 글은 쓰다보니 내가 재미가 없어서 관두고, 어떤 글은 필요한 자료가 결국은 구해지지 않아서 미루다가 잊혀져 버리고, ... 그런 글 중에서, 제일 아까운 글은 "버스카드 음모론"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지난 2004년 7월부터 도입되어 통상 '버스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 시스템은, 간단한 RFID 카드 접촉을 통해서 복잡한 과금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우리나라 교통 행정의 도전적인 시도이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최근에는 택시까지도 포괄하는 등 모든 교통수단을 엮는 하나의 지불방식과 환승할인(?), 그리고 새로운 담당업체와 신용카드 회사를 포함한 새로운 산업 구도의 창출 등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고. (뭐 구리구리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거야 이런 시도가 있어도 있고, 없어도 있는 거니까 패쓰 -_- )

2004년 7월 1일. 서울시 교통체제 개편 시작.

의미불명이지만, 명랑 교통문화라니 좋겠지 싶었다.


교통카드를 중심으로 한 대중교통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Voice UI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RFID 단말기에서 나오는 초기의 안내방송이 매우 잘못 만들어진 나레이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금방식을 설명하는 스티커의 안내문 역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았으며, 무엇보다 서로 논리적으로 상충되는 안내문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요컨대 UI적인 관점으로는 말 그대로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상태"였던 거다. 그러다가, 이 방송멘트와 스티커 안내문이 점점 바뀌는 게 재미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의미가 모호했던 것이 점차 나아졌고, 문장의 구조나 단어의 선택이 좀더 일관되기도 했다.

이렇듯 공공재의 UI 설계가 지속적으로, 일부는 조직에 의해서 (top-down), 일부는 사용자에 의해 (bottom-up) 개선되는 모습에서 소위 "Public UI" 라는 개념을 떠올렸고, 앞의 글들처럼 좀더 쉬운 주제부터 고민을 시작했던 것이다. Public UI 개념의 계기가 된 교통카드 시스템에 대해서는 2004년 9월부터 사진 등을 모으면서 교통카드 시스템을 만드는 T모사에 연락해 차내 멘트나 안내 스티커 등의 history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 참고로 담당자는 뭔가 논문이나 '좋은 공공 UI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하니 긍정적으로 말하더니, 역시나 "윗분에게 알아보겠다"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다. ㅡ_ㅡ;;;

어쨋든,

그 잊혀진 글 - 버스카드 음모론 - 에서 말하고자 했던 사례들을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현재 적용되어 있는 교통카드 시스템의 잦은 질문들은 여기에 설명되어 있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번 읽어보자!)


1. '환승할인'의 사용성 함정
하차 후 30분 이내에 다른 번호의 버스나 다른 호선의 지하철을 타면 "환승입니다" 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0원, 즉 무료로 탑승할 수 있으며, 내릴 때 카드를 대면 탑승한 거리만큼의 금액이 지불된다. 환승은 2회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지하철로의 환승(내렸다가 다시 타기)이나 같은 번호의 버스 간의 환승은 지원하지 않는데, 이는 시민들이 멀리 떨어진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잠깐 다른 볼 일을 보고 돌아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는 "본래의 취지"에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참 잘들 나셨다. -_-=3 UI를 하다보면 내가 생각한 시스템의 모델에 따라 사용자가 따라주지 않을 경우, 시스템에서 상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온갖 "그러면 안 됩니다" 메시지를 띄워 막는 경우도 봤지만, 이 '환승할인'의 제약은 아예 사용자를 무슨 빈대 보듯이 하고 있는 거다. 사용자를 시스템의 굴레 안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나쁜 UI의 전형일텐데, 이건 나쁜 UI가 아니라 못된 UI라고나 해야 할까. 우리나라 행정의 눈높이 라는 것이 참 참담한 수준이다. ㅡ_ㅜ;;;

게다가 애당초 이 환승할인이라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취한 방법도 참 가관이다. 앞의 노선에서 하차할 때에 버스카드를 찍고, 다시 탈 때에 또 버스카드를 찍으면 그 사이의 간격이 30분 (야간은 1시간) 내라면 할인되는 방식이다. 이 당연해 보이는 방식을 가장 나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모든 사람이 하차 시에 버스카드를 찍게 하고, 만일 찍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될 거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내렸는지를 모두 알 수 있으니 다시 환승할 때에 환승여부를 알기가 쉽겠지. 그리고 그게 지금 구현된 방식이다. ㅠ_ㅠ;;;

환승 손님은 내릴 때마다 꼭 찍어주세요. (주의: 찍지 않으면 본인 부담이 됩니다)

물론 이것은 환승 승객에게만 해당된다. 하지만 30분 내로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환승할인의 유혹을 느낄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매일같이 사용하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① '다음에는 환승 계획이 있으니까 찍어야지',
 ② '이번엔 환승할 일이 없으니까 찍지 않아도 되겠구나',
 ③ '지금 환승해서 탄 거니까 다음에 환승하지 않아도 찍어야 하는구나'


... 라는 세가지 선택을 항상 고민하는 것도 못할 일인지라, 결국 아래와 같은 커스텀 안내문들도 등장했다.

(환승할인을 받으시려면) 하차시에도 꼭 카드를 단말기에 접속해 주십시오.

(접촉시키지 않으면 불이익 당함)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찍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환승 할인을 받은 승객이 하차 시에 카드를 찍어 이동 거리를 확인하지 않으면, 얼마나 이용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최대치 - 즉, 해당 교통수단의 기본 요금 - 를 다음 교통카드를 찍을 때에 합해서 부과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환승해서 600원 마을버스를 타다가 내릴 때 카드를 찍지 않았다면 다음에 900원 버스를 탈 때에 1,500원이 찍히는 것이다. 카드를 찍지 않은 이유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어서라든가, 전화통화를 하던 중이라든가, 출퇴근 길의 인파에 떠밀려서 라든가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마 그 중에서 "종점까지 내내 퍼질러 앉아있는" 경우는 그야말로 하루에 손꼽힐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에는 환승하지 않은 경우라도 내릴 때에 카드를 찍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가 요금이 부가되는 방식으로 보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해져 있었다. 누구에게 단순하고 누구에게 이해하기 쉬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쨋든 결국 최종적인 "안내 스티커"는 다음과 같이 귀결되었다.

갈아타신 분이나 갈아타실 분은 내릴 때마다, 특히 마지막 내릴 때에도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꼭~ 찍어주세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버금가는 문구의 교통카드 사용 안내문


사용자(시민)를 그냥 바보로 보는 게 아니라 바보에 잠재적인 범죄자에 호구로 보지 않는 다음에야, 이런 식의 사용방식을 만들었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왜 그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도, 최소한 그 사람이 종점까지 이동했을 때의 거리만큼만 요금으로 책정한다거나, 환승요금의 평균치를 매긴다거나 하는 식의 제스쳐조차 취하지 않는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지하철-지하철 환승이나 같은 노선 버스 간의 환승을 막아야 할 정도로 그 "UI 설계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2. '다인승탑승'의 사용성 함정
이제 곧 지하철에서도 교통카드만 사용하고 일회용 승차권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변화의 IT 강국이다. 버스에서 교통카드 관련 차내방송을 할 때 한동안 빠지지 않던 것이, "1인 1카드"라는 표현이었다. 굳이 "1인 1카드"를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그것을 어겼을 경우의 페널티는 의외로 상당히 크다.

우선, 모두 아시다시피, 여러 명이 하나의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려면 기사에게 "미리 말을 해야" 한다. 미리 말을 하면 기사가 조작 패널에서 버튼을 2번(다인승+숫자) 눌러 다인승 모드를 만들고, 그 후에 카드를 찍으면 "다인승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며 여러 명에 대한 요금이 부과된다.

두 명의 사용자가 하나의 시스템을 공유하면서 사용해야 하는 이 사용 시나리오가, 얼마나 심각한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지는 사실 모두 '경험에 의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통카드가 적용된 이후 내가 가장 즐겨 앉는 자리는 기사 바로 뒷자리인데, 여기서 '다인승 탑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략 80%의 사용자가 시스템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 즉, 시스템이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아서 - 어떤 식으로든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을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존에 시스템을 사용하던대로 자연스레 교통카드를 '대면서' 말하는 경우다. 사실 기껏 한가지 사용법을 가르쳐 주더니 아주 가끔 있는 어떤 경우엔 다른 순서로 사용하라는 것은 mode error를 논하기 이전에 아주 사용자를 혹사시키는 UI이다. 다인승 탑승을 자주 하지 않는 사용자는 반이상... 아니 대부분 이렇게 사용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는 익히 잘 알겠지만, 아래와 같이 다양한 커스텀 경고문을 봐서도 충분히 와 닿을 것이다.

여러명 탑승에 대한 안내문

다인승 탑승 시의 예외적인 사용순서에 대한 경고문들

 
이런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실수"를 했을 때, 즉 다인승이라고 말하기 전에 카드를 찍었을 때, 여기에 대한 기사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이다.

① Power User
하나는 교육받은 사용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경우로, 대부분의 power user가 송사리적 생각을 못하고 novice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다. 즉, 화를 내는 거다. -_-;;; "아니 왜 미리 말하라고 되어 있는데 먼저 대요!!!" 라는 식인데, 승객에게 화풀이 하는 기사에게는 나도 화가 나지만, 솔직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쨋든 기사는 조작패널로 다인승 모드를 만들고 승객에게 "카드를 떼었다가 조금 있다가 다시 대세요"라는 지시를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럼 비로서 사용자가 말한 수 만큼의 숫자가 찍히고, "다인승입니다"라는 행복한 평화가 찾아온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관찰에 따르면, 이때 앞서 찍어버린 1명 분의 요금을 빼주는 기사님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즉 사용자는 "평소 사용하던 시스템을 평소 사용하던 방식대로 사용한 죄로" 1명 분의 요금을 더 내게 되는 것이다. 사용성 평가라는 것이 이젠 학교 교육용이나 회사 보고용으로나 쓰인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현장에 나와보면 이런 모습을 못 보지 않았을텐데... 아니, 어쩌면 보고도 "이걸 이해를 못 하나... 설명문 좀 더 붙이자" 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오만한 UI 디자이너들이 그러는 것처럼. (ㅇㅋ 유죄 인정 -_- )

② Abuser
다른 하나의 반응은 사실 더 심각하다. 승객이 카드를 찍으면서 "2명이요"라고 하면, 기사는 조작패널을 누른다. 이때 단말기에는 "-2-" 라는 표시가 나오면서 "삐" 소리가 나는데, 이때 승객과 기사는 제대로 요금이 찍혔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종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인승 모드'에 있는 단말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 다음에 탄 승객(십중팔구 혼자 타는)에게 다인승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교통카드 시스템이 적용된 최초의 몇개월 동안은 "다인승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2인분의 요금이 찍히는 경우는 다인승 처리가 된 경우이거나, 아니면 위에서 말한 "'환승할인'의 사용성 함정"에 빠진 경우이다. 환승할인은 분명 "시민의 권익을 위한"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참 욕하기도 어려운 시스템이고, 내가 실수를 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어제 저녁 고된 퇴근길에 하차할 때 내가 매일 하던 하차태크를 까먹었는지 아닌지를 기억할 사람은 또 어디 있으랴. 결국 한번 갸우뚱하고 마는 게 보통이었다.

그럼 이 문제가 현재 적용되어 있는 "다인승입니다" 안내 멘트로 해결이 되었을까? 물론 의도는 그랬겠으나, 이것 또한 잘못된 UI 설계의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GUI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넣고 있을 "Fatal Error" 팝업 메시지와 같이, 이미 오류는 저질러 졌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시스템으로선 사용자에게 "왜 시키는 대로 안 했니"라고 힐난하는 듯한...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_-=3

'다인승탑승'의 사용성 함정은 '환승할인'과 더해지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역시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다인승 탑승을 한 후에 동승자까지 모두 함께 환승할인을 받으려면, 다음 탑승 시에 기사에게 같은 방식으로 몇명인지를 "미리 말해야" 한다. -_-;; 귀찮으니 상상에 맡기고 통과. 하지만 다인승탑승 후 원래의 인원수가 아닌 인원(즉, 혼자나 일부 등) 혹은 신분(성인/학생... 이게 신분이었나 -_-;;; )으로 환승할 경우, 환승할인을 받을 수 없다.

다인승 탑승에 대한 당국의 안내문

요컨대 하지 말라는 거다. -_-;;;


최소한 1인분에 대해서라도 환승을 해줘야 당연한 거 아닌가? 기왕이면 원래의 인원보다 적으면 그만큼만 환승할인하고, 원래의 인원보다 많으면 추가된 인원만큼만 전체 요금을 매길 수도 있을텐데. 오직 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딱 한가지 조건만 다인승탑승과 환승할인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그 외의 경우에는 결국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를 만든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아놔. 글이 길어지고 있다. -_-a;;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3. '카드인식기'의 사용성 함정
(이건 그냥 간단히만 써보자. -_- ) RFID를 이용한 방식은 사실 매우 빨리 정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식이고, 실제로 효과도 뛰어나다. 예전에 현금으로 요금을 받던 시절, 버스에 탈 때마다 한명 한명의 거스름돈을 줘야 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이 RFID 카드 인식기를 이용하게 된 것이 사용자들의 승차 시간을 얼마나 크게 단축시켰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승차 시간"만큼은 말이지. ㅡ_ㅡ;;;

반대로, 예전처럼 버스에서 그냥 내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씩 카드를 찍고 내려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효율적인 방식이래도 없어도 되는 곳에 박아 넣으면 이렇게까지 불편해 질 수 있구나..라는 감탄마저 하게 된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차내의 안내 스티커 문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적혀"있거나 "붙어"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미리 찍어주세요... 라는 안내문구

한편, 아래의 안내문구도 많이 보던 내용일 거다.

미리 접촉하시면 부정승차...라는 안내문구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ㅡ_ㅡ;;; 사실 이 문제는 '환승할인'의 그림자 같은 거다. "환승했을 때에는 이동한 거리만큼" 지불하는 방식이므로, 역시 이동 거리를 줄임으로써 단돈 100원이라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대중이 모르고 넘어갈리가 없으니까.

결국 "환승할인"을 설계자의 의도대로 적용하자면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찍게 해야 하지만, 모든 승객이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찍으면 하차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테니 미리 나와서 찍으라고도 하고 싶고. 결국은 "2~3분 먼저" 나오라든가 하는 내용이 차내 방송으로 나오던 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UI 디자이너보다 대중의 특성에 대해서는 더 잘 아는 교통 전문가가 만들었을텐데, 이런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ㅡ_ㅡ;;;

RFID 방식의 교통카드를 옷 안에 넣고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인식된다든가, 여러 장을 함께 찍으면 중복 결제될 수도 있다거나("1인 1카드라고 했잖아!"..라는 걸까), 그러면서도 금속성 재질의 물건(장신구, 핸드백 고리, 알루미늄 케이스, USB 메모리, 담배 은박지, 사탕 포장지 등)에 의해 차폐되어 인식이 안 될 수도 있다거나 하는 문제는 원래 그 방식 자체가 그러니 넘어가는 걸로. 실행 초기에 단말기 자체가 인식이 안 돼서 아예 무료운행하는 날도 많았던 (현금손님만 유료로 할 수도 없으니) 것도 지난 일이니까 논외로 하자. 비록 예의 홈페이지에 찾을 수 있는 아래 문구가 복장을 터지게 하더라도. (이 정도로 현실을 무시한 시스템이 또 있을까?)

여러장 사용하면 중복결제될 수 있다.

요컨대 "1인 1카드" 이상도 이하도 안된다는 거다.


... 그래도 모처럼 사진이 있으니 한가지만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이영수증 발행비용이 연 2억원

기왕 찍은 사진은 아까와서 올렸지만,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귀찮으니까 투덜거림은 링크로 대체. -_-;;;
한겨례 신문 2007년 1월 26일자 <버스가 기가 막혀>

[○] 4월 3일 추가된 내용





갑자기 맺음말. ㅡ_ㅡ

교통카드 시스템은 이런 어마어마한 사용성 함정들을 포함한채로, 내가 보기엔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 운영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곳답게,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까지 걸어놓고 'UI 설계 상의 실책'을 모두 '사용자 실수'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실수는 환불해 주지 않습니다.

요컨대 내 책임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사실 이 '왠만큼 엉터리로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이는' -_- 단말기의 고장이라는 것도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내친 김에 더 찾아보니, 실제로 환불신청을 하는 과정도 매우 일관된 UI 설계 정책 - 즉, 되도록 불편하게 하고, 실수하면 네탓이요 - 을 따르고 있는 듯 하다. ㅡ_ㅡ;;;;

교통카드 사용법을 알리는 다양한 안내문들

한국에선 버스 타는 법을 익히려면 이 정도의 문구들은 모두 마스터해야 한다.


... 이런 판이니 뭐 글을 쓸 마음이 날 리가 있나. 욕할 꺼리 밖에 없는 UI에 대해서 글을 적는다는 건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처지에서 참 맥빠지는 일이다. 그것도 모처럼 (비록 작지만) 신기술인 RFID 방식을 널리 적용한 좋은 HTI 사례가, 뭔가 Public UI 관점에서 발전할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 이렇게까지 나쁘다 못해 '못된' UI로 변해 버리는 걸 보면서 참 맥이 많이 빠지기도 했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라도 후다닥 적어 올리게 된 이유는, 바로 어제 이 '다인승탑승' 때문에 생긴 사건에 대한 가슴 아픈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나쁜 UI가 결국 사람을 다치게 했다.

... A씨는 아들의 요금까지 포함해 “두 명이요”라고 말한 뒤 카드로 버스 요금을 찍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A씨의 카드에서는 요금이 빠져나가지 않고 A씨 뒤에 따라 들어오던 한 술 취한 승객의 카드에 두 명분인 1,800원이 찍혔다. 이 승객은 버스기사 이씨에게 2인 요금이 나온 것을 따져 물었지만 이씨는 앞서 탄 A씨에게 물어보라며 넘겼던 것. ...
ㅡ 노컷뉴스 <버스기사 폭행한 20대 복싱선수>에서 발췌 (2008.3.3.)

이 기사에서는 교통카드 시스템의 UI 설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정말 기분 착잡해지는 내용이었다. UI니 UX니 디자인이니 백번 말하고 이슈화 시켜봐야 결국 말 그대로 issue에 그칠 뿐, 이런 사건이 터져도 결국 '복싱선수가 폭행했다'는 것만 강조될 뿐이라니... (뭐 반대로, "복싱선수가 폭행을 저지른 사건을 보고도 UI만 보는 인간이라니"... 할 수도 있으려나 =_=a;; ) 어쨋든 공공재의 UI는 이 사례처럼, 눈에 안 띄게 사람을 해칠 수도 있으니 더욱 신경써야 할테지만, 사실 그 반대인 경우가 너무 많다. 그 결과는... 그저 '나쁜 UI'가 아닌, '못된 UI'... 심지어 '사악한 UI'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카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서울시의 홈페이지는 "서울특별시 대중교통 정책안내 페이지"이다. 지난 몇년간 미련이 남아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이 홈페이지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점점 저 제목에 들어있는 단어 2개가 마음에 걸린다.

대중... 나도 Public UI 라는 말을 쓰곤 하지만, 이 홈페이지를 만든 사람들(디자이너나 개발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_-+ )의 머릿속에 대중이란 뭔가 자신들과는 다른, 모종의 무지몽매한 호구를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정책... 그런 대중이 매일같이 이용하는 버스와 지하철에 대한 설명 홈페이지에, 굳이 정치적 결정(책략)이라는 걸 넣은 것은 어떤 자신감 혹은 틀에 박혀버린 사고방식이었을까.



... 여기까지.

원래는 Public UI의 대표적인 사례로 준비했던 자료지만, 모든 UI 디자이너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실패사례의 총합으로 정리하면서, 작년 11월부터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던 이 오랜 숙제는 씁쓸한대로 이렇게 마무리 해야겠다.

[○] 6월 23일 추가 - 경기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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