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 위주의 UI를 하다가 Voice UI를 접하게 되면,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게 바로 persona라는 개념이다. VUI의 다른 측면들은 대부분 음성대화에 대한 분석과 조합에 대한 것이고, 입출력 기술의 제약조건과 그에 따르는 생소한 설계 지침이나 tip들은 아무래도 시각적인 것이 없어서 거리감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이 persona라는 것은 그 구축 방법에서부터 어떤 사람의 모습을 상정하기 때문에 뭔가 사진이라도 하나 띄워놓을 수 있고, 기존의 UI 디자인에서도 Persona 구축을 통한 사용자 상(像)의 공감대 형성이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인기가 있기 때문에 언뜻 "아, 이건 아는 거야!" 라고 접근할 수 있는 거다. (상품기획이나 UI.. 혹은 다른 종류의 디자인을 위한 Persona 방법론은 Alan Cooper에 의해 주창되었지만, 그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The Persona Lifecycle>이라는 책에 더 잘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UI 디자인에서 말하는 persona가 잠재적인 사용자의 대표상을 뜻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로, VUI 디자인에서의 persona는 시스템의 '목소리'를 내는 시스템의 대표상을 뜻한다. VUI 식으로 말해서 persona 디자인은, 설계자가 서비스에 부여하고 싶은 사회적인 이미지 - 종종 선입견을 포함한 - 혹은 사용자들의 사용 맥락에 적합한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이루어진다. 동시에 사용자가 해당 서비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 즉 mental model과의 차이를 되도록 줄이거나, 적절한 소개를 거쳐 보다 시스템 설계의 의도에 맞는 것으로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설계 요소의 하나이다. (VUI 디자인에서의 Persona에 대해서는 VUI에 대한 최초의 균형 잡힌 책인 <Voice User Interface Design>을 참조할 것)
Example of VUI Persona: by Michael Cohen (SpeechTEK, 2004)
재미있는 것은, 위 문단에서 "persona"라는 단어를 그냥 "UI"라고 바꾸면, 기존의 UI 디자인의 개념과 여러가지 측면이 중첩된다는 거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 일단 기존 UI와 VUI에서 단어의 정의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고 나면 - VUI의 persona가 접근하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Persona 구축이 VUI에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것은 VUI에 대한 모호한 컨셉을 잡는 것에 불과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실질적인 설계 작업은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있는 것은 유념해 둘 만하다.
참고로... UI, 아니, HTI 업계에 처음으로 "persona"라는 단어를 소개한 것도 사실은 공감대 형성도구로서의 방법론으로서가 아니라, conver-sational agent 의 실험적 사례로서였다. 얼마전에 불평을 늘어놓았던 Microsoft Agent의 기원이 된 "Persona Project"가 그 주인공인데, 그건 뭐 담에 또 기가 뻗치면 한번 정리해봐야 겠다. 어쨌든 이제까지 UI/HTI에 세 번에 걸쳐 불어왔던 persona 개념은 그때 그때 다르긴 했지만, 그 각각의 개념들이 UI 디자인에 미친 영향은 이래저래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오케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또냐!!!)
휴대폰에 들어간 음성 기능은 주로 음성인식에 대한 것이어서, 사용자에게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찾아도 눌릴지 안 눌릴지 모르는 버튼의 대용품' 정도로 다가왔다. VUI라든가 기계와의 대화라든가 하는 거창한 비전이 아닌 단순한(?) 음성입력 기능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네비게이션은 구태의연한 버튼과 터치스크린 입력을 사용했지만, 음성합성(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용자에게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좀더 VUI의 모습에 가까운 모습으로 각인되어 왔다. 내 말을 알아듣는 기계보다, 뭔가 자신의 말을 하는 기계가 더 기특하고 인간다워 보이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네비게이션은 여기에 여러가지 목소리(남성/여성/아기/... 그리고 몇 명의 인기 연예인들)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VUI의 'persona'를 다양하게 반영시켰다. 대부분의 너무 개성이 강한 목소리에 쉽게 질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 변화무쌍한 수다쟁이를 좋아하고 있다.
앞에서 VUI 디자인에 있어서 persona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과는 반대의 이야기다. 물론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는 말처럼 결국 많은 사용자들이 기본 음성을 사용하는 걸 보면, 그 기본 음성의 persona 만큼은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정말 persona를 잘 구축하는 게 VUI에 있어서 중요할까? 아니면 그냥 여러가지 persona (=목소리)를 제공해서 선택하게 하는 게 좋은 방향일까?
유럽의 신생 업체에서, 기존 네비게이션에 자신의 (혹은 친구/가족/연인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넣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별도의 회사에서 이런 서비스를 한다는 사업 모델에 대해선 다소 의구심이 들지만, 뭐 어쨋든 흥미로운 시도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자신의 목소리를 웹에서 녹음해서 누군가의 네비게이션으로 선물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런 친구나 가족의 목소리가 연예인의 목소리보다 더 듣기가 좋거나... 최소한 쉽게 질리지는 않을런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본 네비게이션에도 2~3가지 목소리가 제공되고 있었지만 연예인 목소리 같은 건 없었는데, (헐리웃 스타의 몸값을 생각해보면 뭐 ㅡ_ㅡ;; ) 또 이런 식의 customization 방법을 제공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싶다.
VUI 블로그에서는 이 서비스를 소개하면서, "Forget about Persona!"라고까지 하고 있다. 한편 일리있는 일갈이기는 하지만, 처음 말했듯이 persona가 GUI의 시각적 컨셉과 같은 위치에 있다면, 이 말은 곧 UI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상위의 개념적인 방향을 잡는 것은 오히려 사용자에게 맡기고, 사용자가 원하는 그 컨셉이 제대로 움직이도록 체계를 잡는 것만 남는다는 소리가 된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오랫동안 슬금슬금 바뀌고 있는 디자이너의 역할과 더불어서, 이런 서비스가 개시되었다는 것, 그리고 VUI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그 방향타를 놓는 거에 거부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VUI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서비스 모든 분야에 걸친 일반적 의미의 UI 전체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주절주절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