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1년 정도 끼고 있다가 그냥 포기하고 쓴 만큼만 올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결론은 당분간 못 낼 듯. 학점 안 나올 걸 알면서 그냥 보고서 제출한 게 뭐 처음도 아니고 말이지. -_-a

게임에서의 UI 라는 걸 고민하기 시작한 이래로, 재미와 사용성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늘 머릿속 일정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애당초 Funology에 대한 관심이야 그 말이 처음 귀에 들어왔던 2002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추상적으로 ‘재미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재미를 위한 – 최소한 재미를 해치지 않는 – UI를 만들어야 한다니까 그것 참 난감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원래 개인적으로 디자인이나 UI라는 것이 원래 잉여의 산물, 즉 필요한 물건을 쓸모있게 만들고 힘이 좀 남으니 좀 예쁘게 혹은 쓰기 쉽게 만들자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잉여의 산물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은 분명 UI 디자인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믿는다. (이 이야기를 학위 논문에 썼다가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_-;; 딱이 논리적인 근거는 없지만, 난 그냥 그렇게 ‘믿는다’. ^_^a )

게임에서의 UI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GUI나 심지어 그냥 분위기에 맞는 그래픽 작업 정도로 이야기하는가 하면, 게임 중에도 인벤토리나 설정 같이 뭔가를 관리해야 하는 UI에 대한 것은 있으니 필요하다고 격려(하지만 실패하셨다능)해주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UI가 필요없다는 쪽이다. 특히 어느 정도 토론이 진행되면 고착되는 결론인, “UI는 쉬운 걸 추구하는 데 게임은 난이도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은 늘 막다른 골목이다. UI는 여기서도 주역을 하지 못하고 기획자나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가 신경쓰지 않는 구석지고 세세한 틈바구니들을 어떻게든 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걸까? 게다가 그러고 나서도 “그렇게 하면 많이 팔리더냐”는 소릴 들어야 하고?

… 글쎄다. 어디 함 보자. 우선은 그 맨날 부딪히는 '재미'라는 놈을 좀 들여다보려고 한다. 정체는 모호한 놈이 맨날 정면충돌해 오다보니 이건 뭐 어떨 땐 귀신하고 씨름하는 것 같고 어떨 땐 벽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I. What makes Fun
 II. Fun Factors in Game
III. How UI can be Fun


(1) 재미, 그리고 사용성
재미에 대한 연구는 의외로 많지 않다. 아니, 사실 검색해 보면 논문은 제법 많이 찾을 수 있지만 그 일반적인 중요도에 비해서는 그 수가 많지 않고, 무엇보다도 저명한 학자가 만든 지배적인 이론을 좀 참고해서 UI에 적용하고 싶어도 도대체 찾을 수가 없는 거다. 그나마 칙센미하이 교수의 ‘Flow’ 이론이 그 단편을 잘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이 분은 뒤로 갈수록 이론과 사례가 점점 추상적이 되면서 결국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계신 듯 하므로 실무까지 끌어다 붙이려면 힘들겠다. 그 외에도 소위 ‘긍정심리학’이라는 쪽이 “거 맨날 어디 고장나고 다치고 아픈 사례만 이야기하지 말고 좋은 쪽도 좀 봅시다”라며 어느 정도 세력을 이루고 있지만 역시 방계라는 오명을 벗을 정도로 체계와 구체성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Funology: From Usability to Enjoyment>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어 그야말로 한줄기 서광을 비춰줄 것 같았던 2003년도의 책도 결국 이런저런 연구 논문과 사례들을 딱이 치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구성으로 짜집기 해놓은 것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가장 최근(그래봐야 2004년)의 사례로 무려 <Interactions>지에서 “More Funology”라는 제하에 다룬 일련의 특집기사는 좋은 모델은 하나도 제시되지 않고 기존 사례의 나열과 방향성 없는 방향 제시로 오히려 한계만 드러내서 UI와 재미 사이의 간격을 오히려 더욱 벌려놓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백날 뜬구름만 잡았구먼. ㅡ_ㅡa;;; (요새 좀 까칠하다. ㅎ )


(2) 재미, 그리고 몰입
어떤 게 재미있나? 개인적으로는 광고를 보는 게 재미있고, 영화를 보는 게 재미있고, 웹서핑을 하거나, 만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뭐 그런 게 재미있다. (몸매 유지의 비결이 다 나온셈 -_- )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좀 멍한 상태가 되어서, 완전히 거기에 빠져든 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곤 한다.

재미라는 말을 할 때 늘상 나오는 게 ‘몰입 immersion’이라는 개념이다. 앞의 칙센미하이 교수도 결국 몰입의 좀 동적인 개념으로 Flow라는 말을 했고, 어떤 책에서는 심지어 flow를 몰입으로 번역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몰입이라는 거, 칙 교수님은 인생의 가치에 대한 성찰로까지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지만, 나는 맨 처음 교수님이 말했던 소소한 몰입에 대해서 고민해 보련다. 이를테면, 혼자서 공을 벽에 던지고 튕겨나오면 다시 받는 행위는 전혀 재미있을 이론적 근거가 없다. (무슨 <Big Bang Theory> 찍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_-; ) 그저 적당한 힘과 각도로 던지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그 과정에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팔 동작, 공의 움직임, 공이 튕기는 경쾌한 소리, 리듬감, 손에 닿는 공의 감촉, …

몰입이라는 게 이렇게 오감을 통한 (냄새 빠졌다고 뭐라기 없기) 자극에만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소설 책을 읽을 때의 몰입은 그런 감각적인 경험이 전혀 관여되지 않았지만 – 뭐 경우에 따라서 연상에 의한 간접 경험을 있을지도 – 단지 그 이야기의 흐름에 푹 빠져서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도원경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의 몰입은 몇가지 감각의 반복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세상사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그 내용이 자신의 기대가 맞거나 틀리는 것을 즐기는 과정일 뿐이다. 소설 책이 아닌 경우에도 몰입을 할 수 있지만, 그 기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론서나 교재가 하나의 소설처럼 앞뒤를 맞춰주면서 그 ‘이야기’를 전개할 때에 비로소 몰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몰입이라는 거, 이렇게 외적 경험에 대한 몰입(physical immersion, from sensual experience)과 내적 경험에 대한 몰입(mental immersion, from intellectual experience)으로 나눠보면 어떨까? 이 섣부른 양분화에 대해서 쉽게 오류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세상 만사 둘로 나뉘기 때문이고, 물심양면으로 구분한 이상 반론하기도 쉽지 않을거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넘어가자.


(3) 재미, 그리고 비디오 게임
게임에서의 재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꼽는 책은,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The Theory of Fun)>이다. 그다지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책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게임을 성공시킨 바 있는 이 사람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패턴학습의 본능의 충족에 따른 재미’다. 예를 들면 총알이 날라오는 경로와 속도를 보고 비행기를 움직여야 하는 게임 플레이의 ‘패턴’, 혹은 아래에서 덤비는 악어를 피해 웅덩이를 뛰어넘어야 하는 게임 플레이의 ‘패턴’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입출력 패턴 – 가장 단순한 예로 화면 상의 움직임을 보면서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이나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것 – 을 마스터하면 (결국, 학습에 성공하면)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여기에서 ‘패턴’이라는 것이 뭔가 심오한 논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감각적인 입출력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제품 UI에서 말하는 '조작감' 혹은 '반응속도', 그리고 게임에서 말하는 '타격감' 같은 것에 좀더 연관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Game Patterns from Raph Koster's <Theory of Fun>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주로 앞서 말한 식 대로라면 외적 경험에 대한 몰입에 가깝다. 즉 게임 디자이너 혹은 프로그래머가 설정해 놓은 조작방식을 이용해서 그 가상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발견하고 거기에 숙달되는 것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재미이론>에서 주장한 이 패턴 학습에 대한 내용은 한편 사람 김을 좀 빼놓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생존본능이나 학습을 위한 대뇌의 기제에 의한 것이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이론은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과 엮이면서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사람을 때리고 돈을 빼았고 자동차를 훔치고 다른 차를 들이받으며 쓰레기(바나나 껍질 같은)를 차창 밖으로 버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패턴을 플레이할 뿐이다”는 제법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연결이 된다.

Game Patterns from Raph Koster's <Theory of Fun>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예전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난 솔직히 게이머가 게임 속의 폭력적인 이야기를 ‘단지 장애물의 에너지 수치를 줄이기 위한 버튼 입력일 뿐’이라고 여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프 코스터가 지적했듯이 게임 플레이의 패턴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데(MMOG라는 예외도 언급되고 있지만) 비해서 동일한 게임 플레이 패턴을 적용했지만 어떤 게임은 성공하고 어떤 게임을 실패하는 이유는 뭐냔 말이다.

이에 대해서 떠오르는 논리 중에, Brenda Laurel의 "Narrative Construction as Play"라는 논문을 빼놓을 수 없다. 내러티브 이론을 컴퓨터 매체 설계에 적용하려고 애쓴 사람답게, 재미와 놀이라는 것이 단지 'funny'한 것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즐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pleasure'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플레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입출력 패턴과 그 패턴의 학습이 게임의 골격이라면, 게임에서 제공하는 이야기는 게임의 겉모습 같은 것이다. 피부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라든가 팔다리의 움직임, 눈코입이나 머리카락의 모습은 단지 그 안의 골격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이상을 말한다. 앞서 말한 다른 반쪽인 내적 경험에 의한 몰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소설에서 이런 몰입을 느꼈던 것과 같이, 게이머는 게임 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소한 게임 플레이를 시작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주거나(“그러니까 네가 지구를 구해라!”), 게임 상의 규칙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 주거나(“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맞춰 터뜨리지 않으면 도시가 파괴된다!”), 게임은 중간 혹은 끝까지 마쳤을 때 만족감을 더해주기도 한다(“당신이 세상을 구한 영웅이오! 공주를 주겠소!”).

Mission Narrative for Donkey Kong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입출력 패턴이 비슷한 수많은 게임들의 성패가 갈리는 것을 ‘이야기 story/narrative’라는 걸로 단순화하는 건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고 해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하지만 말을 ‘이야기하기 storytelling’로 바꾸면 어떨까. 이야기하기라는 건 단지 그 내용 뿐만 아니라 그걸 전달하기 위한 방법들, 즉 게임에서라면 화면에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내용을 비롯한 모든 인지되는 것들을 포함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storytelling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가? 이 주제는 왠지 문학과 예술의 관념적인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이 질문을 다음의 그림으로 답변하려고 한 사람이 있다.
Topological Model of Fun - by Hyunbi Lee

바로 이현비의 <재미의 경계>라는 책에 나오는 위상수학적 모형인데, 재미란 그 수나 크기/깊이에 상관없이 일련의 복선과 그게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현비는 어떤 이야기에서의 재미를 "축적된 긴장의 해소를 이해함에 따르는 감정적 흥분"이라고 정의하면서 '재미'와 '웃음'의 요소를 분석하고자 했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주장들이지만, 복선와 반전이라는 자칫 당연해 보이는 서사구조에 대해서 이만큼의 의미와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상과 같이 이것저것 나열한 건 사실 앞에서 내적/외적 경험으로 양분해 버린 몰입에 게임 상의 재미를 끼워맞추기 위한 시도일 뿐이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그럼 실제로 이러한 ‘재미’들은, 게임 안에서는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극단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위치가 모호해서 가설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이제까지 쓴 글도 고쳐야 하고 무엇보다 골치가 아프니까.

( -3-) y~oO


다음 편은 주말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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