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UI 디자이너라는 걸 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것은, 혼자서 만드는 사람의 창조 본능과 싸우고 있는 듯이 느껴질 때다. 상품기획이나 마케팅의 입장에서는 뭔가 기능을 잔뜩 넣어야 많이 팔린다고 (혹은, 팔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개발하는 입장에선 일단 들어간 기술로 가능한 기능은 모두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 하고, 심지어 시각적인 측면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왠지 자아실현이 목표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 있다. 다들 뭔가 하자는 게 많아서 싸우는 와중에, 그것도 거기 없는 사람(사용자)를 대변해서, 그 쓸데없는 기능 좀 그만 넣고 단순하게 만들자는 말을 꺼내기란 참 곤란한 일이다.
KISS... Keep It Simple, Stupid. 이 말이 원래 UI 디자인이나 사용성 공학 쪽에서 나온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서 심심찮게 인용되는 경구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이폰이 좋은 UI.. 혹은 UX의 사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다소 무리해서 단순화시킨 기능구조 덕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난데없이 이 경구가 떠오른 것은,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인 TESCO에서 휴대폰 판매를 시작하면서 내보낸 일련의 TV 광고를 보면서다.
테스코가 휴대폰 판매를 시작한 건 2003년부터라고 하지만, O2와 손잡고 따로 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게 2007년. 그리고 마침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한 2009년은 애플에서 iPhone이 그 감성적인 Touch UI로 한창 인기를 끌고, 새로 나온 Palm Pre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하고 있던 시기다.
휴대폰은 더없이 개인적인 기기이기 때문에 이런 감성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UI를 뛰어넘는 UX의 경지"라면서 너도나도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도입하기 시작했고(이런 광고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1999년 TTL 광고 캠페인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될 듯), 이미 일찌감치 그런 관점을 받아들였던 광고계에서는 이런 광고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모두가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정말 고민 많이 하고 돈 많이 들여서 찍은 광고들이다. 돈을 긁어모은다는 휴대폰 통신사업체간의 경쟁이니만큼 한달에도 몇건씩 명작이랄 수 있는 광고가 튀어나왔다. 사실 위의 동영상들은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광고다.
이런 피바다(red ocean)에 뛰어들려니 테스코도 고민이 꽤 많았는지, 맨 처음으로 TV에 방영한 광고는 다음과 같다.
요컨대, 통신업계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요금제에 큰 혜택을 줘서 손님을 끌겠다는 거다. 솔직담백.
테스코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 정도 되려나. 생필품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유통마진을 최소화하고, 광고마다 최저가를 내세우고, 따로 적립카드를 만들어서 적립된 포인트를 현금처럼 쓸 수 있게 하는 체인이다. 소매시장에서 최종 소비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대하는 업체답게, 테스코는 최종 소비자가 원하지만 기존의 휴대폰 판매업자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게 뭔지를 나름의 시각으로 열심히 고심한 모양이다.
몇개월 후, 테스코 모바일의 시리즈 광고가 시작됐다.
4~5개월 간격으로 방영된 이 세 편의 광고(세번째 광고는 TV에 방영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에서 하는 말은 똑같다. 앞의 동영상들에서와 같이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그 브랜드만의 "사용자 경험(UX)"을 유도하려는 노력들이 까놓고 말해서 헛소리(nonsense)라는 거다. 광고를 보는 순간에야 화려한 영상과 유려한 말발에 멋지다고 혹할런지 몰라도, 실제로 구매를 해야 하는 순간에 필요한 건 그런 감성적인 만족이 아니라 실질적인 가격 대비 효율이다... 아마 그런 소리를 하고 싶은 것 같다.
...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사용자가 필요한 기능과 자세와 동선을 연구해서 정말 사용하기 편리한 냉장고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게 실제로 냉장고를 파는 데에 도움이 될까? 유니버설 디자인을 내세워 일반인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로 이용하려고 할까?
사실 UI 디자인계의 이런 고민을 해결(라고 쓰고 '회피'라고 읽는다)하려는 게 소위 UX라는 접근이었고, 사용자에게 물리적인 효율성 이상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 감성적인 디자인(emotional design)이라든가 스토리텔링을 통한 브랜드의 전체 경험 제공(자주 이야기 되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의 가치가 어쩌구 저쩌구)이라든가 하는 거 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떻게든 재정립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도, 또 이렇게 뼈아픈 지적이 들어오는 거다.
물론 어떻게 생각해보면, KISS를 부르짖고 있는 위의 TESCO Mobile의 광고들도 결국은 또 한 가지 방식의 스토리텔링이고, 나름의 방식으로 감성적인 소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좋은 UI"나 "좋은 UX"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세상을 구하리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건 사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랄까.
거참. 마치 아주 오래된 악몽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UI도 UX도 결국은 부가가치... 뭔가 핵심가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 자체를 버려야 하려나. ㅡ_ㅡa;;;
KISS... Keep It Simple, Stupid. 이 말이 원래 UI 디자인이나 사용성 공학 쪽에서 나온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서 심심찮게 인용되는 경구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이폰이 좋은 UI.. 혹은 UX의 사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다소 무리해서 단순화시킨 기능구조 덕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난데없이 이 경구가 떠오른 것은,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인 TESCO에서 휴대폰 판매를 시작하면서 내보낸 일련의 TV 광고를 보면서다.
테스코가 휴대폰 판매를 시작한 건 2003년부터라고 하지만, O2와 손잡고 따로 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게 2007년. 그리고 마침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한 2009년은 애플에서 iPhone이 그 감성적인 Touch UI로 한창 인기를 끌고, 새로 나온 Palm Pre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하고 있던 시기다.
휴대폰은 더없이 개인적인 기기이기 때문에 이런 감성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UI를 뛰어넘는 UX의 경지"라면서 너도나도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도입하기 시작했고(이런 광고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1999년 TTL 광고 캠페인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될 듯), 이미 일찌감치 그런 관점을 받아들였던 광고계에서는 이런 광고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모두가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정말 고민 많이 하고 돈 많이 들여서 찍은 광고들이다. 돈을 긁어모은다는 휴대폰 통신사업체간의 경쟁이니만큼 한달에도 몇건씩 명작이랄 수 있는 광고가 튀어나왔다. 사실 위의 동영상들은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광고다.
이런 피바다(red ocean)에 뛰어들려니 테스코도 고민이 꽤 많았는지, 맨 처음으로 TV에 방영한 광고는 다음과 같다.
요컨대, 통신업계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요금제에 큰 혜택을 줘서 손님을 끌겠다는 거다. 솔직담백.
테스코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 정도 되려나. 생필품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유통마진을 최소화하고, 광고마다 최저가를 내세우고, 따로 적립카드를 만들어서 적립된 포인트를 현금처럼 쓸 수 있게 하는 체인이다. 소매시장에서 최종 소비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대하는 업체답게, 테스코는 최종 소비자가 원하지만 기존의 휴대폰 판매업자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게 뭔지를 나름의 시각으로 열심히 고심한 모양이다.
몇개월 후, 테스코 모바일의 시리즈 광고가 시작됐다.
4~5개월 간격으로 방영된 이 세 편의 광고(세번째 광고는 TV에 방영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에서 하는 말은 똑같다. 앞의 동영상들에서와 같이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그 브랜드만의 "사용자 경험(UX)"을 유도하려는 노력들이 까놓고 말해서 헛소리(nonsense)라는 거다. 광고를 보는 순간에야 화려한 영상과 유려한 말발에 멋지다고 혹할런지 몰라도, 실제로 구매를 해야 하는 순간에 필요한 건 그런 감성적인 만족이 아니라 실질적인 가격 대비 효율이다... 아마 그런 소리를 하고 싶은 것 같다.
...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사용자가 필요한 기능과 자세와 동선을 연구해서 정말 사용하기 편리한 냉장고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게 실제로 냉장고를 파는 데에 도움이 될까? 유니버설 디자인을 내세워 일반인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로 이용하려고 할까?
사실 UI 디자인계의 이런 고민을 해결(라고 쓰고 '회피'라고 읽는다)하려는 게 소위 UX라는 접근이었고, 사용자에게 물리적인 효율성 이상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 감성적인 디자인(emotional design)이라든가 스토리텔링을 통한 브랜드의 전체 경험 제공(자주 이야기 되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의 가치가 어쩌구 저쩌구)이라든가 하는 거 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떻게든 재정립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도, 또 이렇게 뼈아픈 지적이 들어오는 거다.
물론 어떻게 생각해보면, KISS를 부르짖고 있는 위의 TESCO Mobile의 광고들도 결국은 또 한 가지 방식의 스토리텔링이고, 나름의 방식으로 감성적인 소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좋은 UI"나 "좋은 UX"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세상을 구하리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건 사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랄까.
거참. 마치 아주 오래된 악몽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UI도 UX도 결국은 부가가치... 뭔가 핵심가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 자체를 버려야 하려나. ㅡ_ㅡa;;;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