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은 적어보고 싶었던 회사의 이야기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꽤 많은 블로그에 등장하는 이 <Innocent Drinks>라는 영국의 음료수 회사는, 장난스러운 웹사이트 구석구석에서 보이듯이 고객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월급쟁이로 회사에 잘 다니다가 제대로 만든 스무디를 만들어서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대대적인 설문을 해보고나서 이 회사를 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설립배경은 웹사이트 한켠에 잘 설명되어 있다.
신선한 자연 재료로만 만든 좋은 음료수를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사실상 모든 업체가 나불대고 있는 약속을 실제로 더할 수 없이 투명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언급할 만하지만, UX 관점에서 재미있는 점은 따로 있다. 저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친숙한 분위기가 제품 포장과 설명문구의 구석구석에까지 똑같이 적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매번 슈퍼마켓에서 포장만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어 하다가, 엊그제 기차여행에서 한 병을 사마시면서 포장 구석구석을 찾아 보았다.
언뜻 보면 일반 음료수병과 똑같은 내용이 눈에 띄지 않는 글꼴로 적혀있지만, 구석구석 숨어있는 이 회사의 구애를 찾아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왼쪽 사진에서부터 하나씩 재미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We promise that anything innocent will always taste good and do you good. We promise that we'll never use concentrates, preservatives, stabilisers, or any weird stuff in our drinks. And we promise to return our library books.
PLEASE KEEP ME COLD
This is a fresh product and must be kept refrigerated 0-5℃before and after opening. Once opened consume within 2 days. For use-by date see cap. Shake it up baby.
ENJOY BY(D)
30 JAN (04:17)
저 아무렇지도 않게 써있는 엉뚱한 문장이라니. ㅋㅋ -_-a;; 다른 부분에서는 점잖게 할 말만 하는 것 같다가 군데군데 이렇게 장난질을 쳐놨다.
웹사이트를 보나 제품포장의 설명을 보나, 이 회사는 정말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이 판을 치기 전, 동네에서 음료수를 만들어 팔던 장사와 동네 사람들 간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노센트 제품들이 제공하는 이 경험은, 몇년 전에는 거의 모든 PC마다 깔려있던 WinAmp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 무료로 쓸 수 있는 대표적인 MP3 재생 소프트웨어였던 이 프로그램을 쓰다보면, 종종 재치있는 오류 메시지를 접하게 되곤 했다. 프로그래머가 도대체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였는데, 인터넷에는 의외로 여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가까스로 찾아낸 화면은 딱 하나.
그리고 문구만 남아있는 오류메시지도 하나 찾았다.
Oouch! What Should i do? Well, good luck!
ㅋㅎㅎ 이 메시지는 둘 다 종종 봤던 내용인데, 정말 아직도 이 프로그래머와는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 어차피 모든 사용자가 짜증내거나, 대체로 무덤덤하게 넘어갈만한 특별할 거 없는 오류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WinAmp은 단지 도구 이상으로, 그걸 만든 사람과 사용자 사이에 뭔가 개인적인 연관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하나는 과일쥬스, 하나는 소프트웨어... 전혀 다른 제품들이 주는 이런 느낌을 보면서, 제품... 혹은 브랜드... 혹은 어떤 사용자 경험에 대한 충성도나 선호도는 어쩌면 제품이 주는 기능이나 서비스가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가에 대한 것보다, 그것이 사용자와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가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