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UX... and HTI... and the touch screen.
뭐 이런 길고 긴 제목을 붙이고 싶었으나. ㅡ_ㅡ;;
어쨋든, UI 업계에 전해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전설이래봐야 지난 2000년에 있었던 일이고, 비밀스럽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것도 아니라 그냥 대놓고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지만. 그 전설의 요지는 "이라크 전쟁이 잘못 디자인된 UI 때문에 일어난 건 아닐까?" 라는 거다.
때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있었던 일이다. (구글링 해보니 요 사건을 다룬 많은 웹사이트가 있다. 정치나 통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관심있는 만큼 찾아보시기를... 난 그냥 주워들은 내용만 정리하련다) 몇 주일동안 주(州)별로 나뉘어 진행되는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George Bush와 Al Gore는 아슬아슬한 표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많은 표가 걸린 Florida 주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매번 투표를 하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누구 찍었냐?" 물어봐서 실제로 개표가 끝나기 전에 예상결과를 보도하곤 한다. 이 '출구조사'는 전수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100% 맞는 건 아니지만, 각 방송사들은 나름 적절한 수준의 표본조사를 하기 때문에 크게 틀리는 적은 없다. 투표의 큰 향방을 결정하리라 생각했던 Florida주의 투표일, 모든 방송사는 출구조사를 통해 Al Gore의 낙승을 보도했다. 그런데 개표 결과가 나와보니 George Bush가 근소한 차이로 이긴 것이다.
이 이상한 사건의 원인은 표를 바꿔치기 했다든가 모종의 조작이 있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잘못된 UI에 있었다.
미국의 선거는 투표용지를 특정한 기구에 끼워넣고, 찍고 싶은 후보자의 옆에 구멍을 뚫어 제출하면 나중에 기계로 이 구멍뚫린 위치를 확인해서 투표수를 산출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끼워넣을 투표용지는 지역마다 다른 디자인을 쓰는데, Palm Beach라는 지역에서 사용한 투표용지가 문제였다.
이 투표용지를 기계에 꼽아넣고 보면 이런 시각이 된다. 이렇게 양쪽으로 나뉘는 형태 때문이 이 형태의 투표방식을 "butterfly ballot"이라고 한다고 한다. 만일 내가 왼쪽의 두번째 후보자, Al Gore를 찍고 싶다고 생각하고, 어느 구멍을 뚫을지를 생각해 보자. 빨리. -_-+
Al Gore를 찍고자 하는 사람은 4% 확률로, 2번째 구멍을 뚫게 되어 있다. 실제로 Al Gore를 찍기 위해서 뚫어야 하는 구멍은 3번째이고, 2번째 구멍을 뚫은 사람은 Pat Buchanan에게 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오른쪽 그림과 같다. ... 이건 UI 쟁이가 늘 그렇듯 겁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수치의 겸손함에서 볼 수 있듯이 이건 실제로 잘못 설계된 UI에 의한 오류이고, 그 대상이 하필이면 한 나라의 내노라하는 통계학자들이 대거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대통령 선거였다는 것이다.
그 통계학자들 덕택에, 이 특별한 UI 오류 사례는 다양한 통계적 분석이 가해졌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래의 그래프들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그래프에서 각 점의 위치는, 지역별로 전체 투표자 중에서 Buchanan에 기표한 사람의 비율의 수를 나타낸다. 투표자 수에 따라 가로 축으로 펼쳐져 있는 점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정도로 Buchanan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 한가지 예외가 있다면, 바로 그래프 맨 위에 찍여있는 Palm Beach County이다. 특별히 연고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지역에서는 '몰표'라고 해도 좋을 지지율이 나온 것이다.
출구조사 - 언론에서 투표결과를 미리 예측하기 위해서 하는 - 결과와 실제 득표수를 보여주는 위 그래프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대부분의 지역(점)에서는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득표수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Palm Beach에서만큼은 예측보다 훨씬 많은 득표가 Buchanan에게 쏟아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Al Gore의 지지자들은 재개표를 요구했으며, 심지어 "원래 Al Gore를 찍고자 했으나 Buchanan을 찍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용자들과 "Buchanan에 잘못 구멍을 뚫고 다시 Al Gore에도 구멍을 뚫어 무효표가 되어버린" 사용자들은 재투표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줄이어 있는 구멍 중에서 몇번째에 구멍을 뚫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테고, 사용자(투표자)는 그 순간 자신이 자신의 의도에 맞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테고, 이미 그렇게 구멍을 뚫린 투표용지는 법적으로 유효하기에 재개표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주민 수가 많았던 Florida 주의 결과는 George Bush의 승리가 되었고, 그로 인해 2000년 미국 대선의 흐름이 결정적으로 기울어져 Bush가 대통령이 되고,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며칠 전까지 4000명의 미군과 그 몇배에 이르는 이라크 사람들을 죽게 하고, 아직도 지구 한구석에서 수상쩍인 의도를 가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미국 정치에 대한 나의 무지로 인해 왜곡된) 전설의 요지이다.
한가지 실망스러운(?) 것은, Florida 주에서 Al Gore가 이겼더라도 전체 득표수로는 Bush가 아슬아슬하게 이겼을 것이므로 사실 UI가 역사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벌어진 한바탕의 촌극은 그냥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식으로 끝나 버렸다. Buchanan에 표기된 수천장의 Al Gore 표는 무기명 투표와 순간의 착각과 망각 속에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잘못 설계된 종이 한쪽이 얼마만한 낭비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사례가 되었고, 그 무대의 대단함으로 인해 다양한 분석과 온갖 음모론의 소재가 되었다. 아래의 파일은 당시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투표→방송→개표→소송→재개표)을 잘 정리한 파일이다. (예전에 저장해 둔 파일인데, 본래의 웹페이지는 물론이고, 여기에 포함된 많은 링크가 지금은 대부분 연결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Wikipedia나 Google을 참고하시길...)
하지만... 이야기는 또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이 구닥다리 'UI 괴담'을 다시 끄집어 낸 이유는, 최근 눈에 들어온 기사 때문이다. 지난 2주동안 이 글을 쓰다말다 하고 있으니까 좀 지겨워져서, 그냥 여기서부터는 요점만 간단히 말하도록 하자. 다음에 기가 뻗치면 더 보완하고. (경험상, 그런 적은 한번도 없지만 -_-;;; )
2000년의 그 왠지 찜찜한 대통령 선출 이후에, ACM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컴퓨터 산업에서는 대선에 터치스크린을 도입하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터치스크린은 전국에서 동일한 UI를 통해 선거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보여줄(feedback) 수도 있고, 투표와 동시에 개표로 연결될 수도 있으므로 여러가지로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킹에 대한 문제 제기와 다른 많은 문제들(전원, DB, 통신, 기타등등)이 몇년에 걸쳐 제기되었고, 또한 보완되었다. ACM 소식지에서 electronic voting machine이라는 소리가 안 나온지가 1~2년 되었으니, 최소한 5년이 넘도록 그런 논쟁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몇번의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기사에서는 그 제목처럼, 여전히 터치스크린 방식의 투표에 대한 보안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종이에 표시를 하거나 구멍을 뚫는 방식이 비록 구시대적이고 다소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가장 안정적이고 믿을만한 방법이라는 데에 있어서는 컴퓨터 전문가들도 두 손을 든 셈이다.
8년전 잠깐이나마 UI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사건(얼마나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시작된 첨단기술의 상용화 노력이 이제와서 무위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UI 혹은 HTI의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곤 한다.
... 그냥 그렇단 얘기다. 이젠 그냥 끝내고 싶은 마음에 애당초 무슨 생각으로 시작했는지조차 모르겠다. 무엇보다 터치스크린의 micro-usability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음으로 미뤄야될 듯... ㅡ_ㅡ
P.S. 앞에서 말했듯이, 정치나 통계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보정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난 그냥 당시에 이해한 만큼만 정리했을 뿐이다. (그래도 통계는 열심히 공부할 가치가 있는 분야이다)
P.S. 한참 논쟁이 시끄러울 무렵, Amazon.com의 UI designer들이 "그럼 웹사이트를 이렇게 만들어볼까나?" 라는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당시 웹사이트에 올라온 페이지는 아래 그림과 같다.
P.S. 통계학자들은 이 사건이 통계와 실제 세상과의 연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고, 아래와 같은 소개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P.S. 여기까지.
당시에 스크랩해 두었던 다른 자료들은 이미 너무 오래됐거나, 앞에서 링크한 Wikipedia 페이지에 더욱 잘 설명되어 있다. 적어도 6년 전에 끝내야 했던 숙제다. 그동안 강의에서 몇번 인용한 외에는 그냥 썩혀둔 것을 때늦은 기사를 핑계로 다시 끄집어 낸 게 미안할 따름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