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전혀 다른 문화권에 와서 살다보니, 여러가지 눈에 밟히는 자잘한 UI 상의 차이점들이 보인다. 워낙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들이라 지금에나 불편함을 느끼지 곧 익숙해지겠다 싶어서, 익숙해지기 전에 몇가지 정리해 두려고 한다.
1. TV 리모컨
해외 시장을 위한 TV 리모컨 UI를 해본 적 없어서 이런 사실을 몰랐는데, 이만큼이나 다른 멘탈모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니 리모컨 UI 디자인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까다로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전구 소켓
룸메이트 화장실의 전구가 나가서 새 걸로 바꿔 끼우려고 하는 걸 돕다보니, 전구 소켓의 모양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다. 다른 조명들을 뜯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나사 방식의 전구도 있지만, 화장실과 복도에는 저 (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맞춰끼우는 방식의 전구와 소켓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별히 무슨 차이점이 있거나 한 걸까? 처음 보는 형식의 전구 소켓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한 나라에서 두가지 방식으로 전구를 조립한다는 것도 신기해서 한번 찍어두었다.
3. 전원 플러그 스위치
집안에 있는 대부분의 On/Off 스위치가 비슷하게 생겼으니 아마도 무슨 잘 정리된 표준 같은 게 아닌가 싶은데, 유독 벽에 붙어 전원 플러그의 전원을 끄고 켜는 스위치는 "ON" 표시가 포함되어 있다. 좀 희한하다 싶은 것은 "ON" 표시가 사실은 "OFF"쪽에 인쇄되어 있어서, On 되어 있는 상태에서 "ON"이라는 표시가 보이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그 쪽을 눌러 스위치를 "OFF"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더라는 거다.
집안에 있는 모든 -_- 스위치를 보니 모두 아랫쪽을 누르면 ON으로 고정되어 있으므로 사실 사용자로선 그냥 무의식 중에 이해하고 쓸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정작 위 사진의 두 스위치 중에 어느 쪽이 "ON" 상태냐고 물어보면 조금은 당황하지 않을까.
4. 라디에이터 다이얼
침실에 달린 라디에이터를 보고 꽤나 당황했다. 도대체 "○"는 뭐고 "●"는 뭐고 "▥"는 뭐냐! 고민하던 끝에, 화장실 라디에이터에 달린 다이얼을 보고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속이 빈 동그라미는 난방을 끄고, 채워진 동그라미는 켜고, 난방의 세기는 |→||→|||→|||| 순서대로 커지는 건데, 침실의 라디에이터는 무슨 이유에선지 강약조절하는 부분이 '대충' 표현되어 ●~"||||"으로만 되어 있고, 화장실의 것은 각 단계가 모두 표시되어 있다. 이건... 아무리 화장실 방식(?)에 익숙한 사용자래도 픽토그램을 무시하고 그냥 상식대로 -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점점 커진다든가 - 써보고 나서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5. 보일러 전원과 온도조절장치
이 집의 전체 온수와 난방은 중앙집중식을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유독 화장실에 붙어있는 샤워부쓰에는 별도의 전기 보일러가 붙어있다. 그런데 첫날 도착해보니 온수가 나오지 않고, 보일러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거다. 다음 날 시설관리자한테 물어보니, 왼쪽 사진과 같이 천정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켜야 보일러에 전원이 들어가고, 온수를 쓸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저 "스위치"는 화장실 천정에, 그것도 샤워부쓰의 반대편에 붙어있었는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들 알아내서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는 왜 전원스위치가 본체에서 떨어져 벽에 붙어있는 경우가 이리 많은 거냐고! -_-=3 )
기껏 전원이 들어온 보일러에 붙어있는 두 개의 다이얼도 참 난감한 UI인 것이, 큰 다이얼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려서 물을 켜는 장치로 점점 돌릴수록 물 온도가 온수→냉수로 바뀌게 되어 있는 것이고, (물의 양을 조절하는 장치는 없었다 -_- ) 작은 다이얼은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물 온도를 냉수→온수로 바꾸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다이얼에 대한 조작 멘탈모델(시계방향으로 돌릴 수록 증가)을 물이 나오도록 켜는 조작개념이나 물 온도를 높이는 조작개념에 맞춰봐도, 온통 반대로 되어 있는 훌륭한 UI 오류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보일러만큼은 아무리 오래 써도 익숙해지지 않을 듯. ㅡ_ㅡa;;;
6. 변기 물내림 버튼
이 집만 그런 줄 알았더니, 회사 화장실도 왠만한 공중 화장실도 사진과 같은 이중 버튼을 사용하고 있었다. 작은 버튼을 누르면 '소변용'으로 물이 조금만 내려가서 물을 절약할 수 있고, 큰 버튼을 (혹은 두 버튼을 함께?) 누르면 ... 뭐 물이 많이 쏟아진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경우'에 따라 물내림의 양을 조절하는 레버나 버튼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영국에서는 이게 일종의 표준으로 자리잡아 버린 듯 하다.
... 적고 나서 보니 역시 참, 자잘하다. ㅡ_ㅡa;; 나중에 읽어보면 스스로도 "뭘 이런 걸 가지고 주절거렸다냐..."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게 이 글의 목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냥 언젠가는 손과 눈이 익숙해져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게 될 것 같아서, 5일 정도 겪어본 일상의 UI를 지금의 때묻지 않은(?) 눈으로 스크랩해 두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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