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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 eXperience

Forget Tasks: UX Lessons from Tourism

by Stan1ey 2010. 5. 27.
A Tourist Attraction at Edinburgh
전통적인 UI 분야로부터 UX를 독립시키고자 하는 노력
이 많다는 것은 이전에도 몇번이나 말한 바와 같다. 최근에는 심지어 기존에 UI 디자인 단계의 일부로서 사용자 리서치와 설계 작업이라고 하던 모든 것들을 UX로 잘라내고, "UI는 그 결과물에 대한 개발실무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간도 나타났다. 어찌나 절박해 보이는지. -_-

이 블로그에서도 몇번 언급했듯이, 개인적으로는 UX 분야를 정의할 때 기껏 수십년에 걸쳐 일궈놓은 UI 분야에서 일부를 (사실은 그 핵심이라고 할만한 부분을 거의 전부) 잘라내어 정의하려고 할 게 아니라, UI의 범주와는 별개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게임 회사에 있다보니 들고있는 망치에 맞는 못대가리만 보이는지라, 이제 HCI에서는 벌써 몇년 전에 한번 스치듯 지나간 주제인 funology라든가 Fun UI라든가 하는 주제에 한눈을 팔고 있는 중이다. (사실은 가전회사에 있던 시절에도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긴 했다. ㅋ )


그러던 중에 얼마 전에 "Playful User Experience"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걸 보게 됐다. 사실 비슷한 제목의 글은 잊을만하면 올라오는지라 조금은 시큰둥하게 읽고 있는데, 재미있는 관점을 접하게 됐다. 이 글에서는 사용편의성 중심의 기존 UI 디자인 방법론을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노력으로 비유하면서, UX 디자인에 대해서는 그보다 "Taking the Scenic Route from A to B", 즉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면서 '경치가 좋은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그동안 과업(task)을 중심으로 정보구조(IA)를 설계하고 효율적인 사용성을 구현하려는 관점과 노력이 오히려 UI 분야의 한계가 될 수 있으며,
Task-Oriented Design

UX 설계에 있어서는 그 과업을 이루는 과정(경험)에 초점을 맞추자는 거다.
Experience-Oriented Design

한편 당연해 보이고, 게다가 수십년전부터 있었던 interface vs. interaction 구분과 그닥 다르지 않은 이 "scenic route"라는 비유를 보고, 문득 또 하나의 "경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상품 기획"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여행상품 기획은 그냥 어느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만 고민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상품의 제목은 "영국일주 9일"이라는 식으로 목적하는 행위(task)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지 몰라도, 사실 그 기획/설계/디자인의 내용은 "해리포터의 자취를 따라서"라는 식으로 그 여행이 주는 특별함(attraction)에 있는 것이다.

Attraction-Centered Tour Design

그럼 이 "여행상품 기획"이라는 경험 디자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짬짬이 해본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도통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다음에 우연히 그쪽 업계의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일단은 -_-;; 여행상품을 유형별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여행은 이동을 전제로 한다. 그 이동을 좋은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거대한 산업의 종사자들은 어떤 식의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아래는 한국과 영국의 여행사 웹사이트를 몇개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여행상품에서 내세우고 있는 기획내용을 유형별로 나누어 구분한 것이다. 어떤 여행도 하나의 유형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하루이틀 짬짬이 돌아다닌 바로는 아래의 유형 외에 여행상품의 기획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뭐 빠진 게 있다면 차차 채워넣기로 하고 -_-a 일단 나열하자.


(1) 탐험 Exploration
Exploration as a Playful Experience
자유여행이라든가 배낭여행, 하이킹과 같은 유형의 여행상품들은 여행자들에게 대략의 이동경로를 이야기해 주지만, 그동안에 어떤 attraction을 선택해서 즐길지는 각 여행자의 그때그때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우연히 들어간 어떤 골목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광경을 만날 수도 있고, 버스를 타고 갈 것을 지하철을 타는 바람에 아무 것도 못 보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수도 있다. 하나하나의 attraction은 계획 단계에선 보든 안 보든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이런 여행 방식의 진실한 매력은 매순간의 선택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를 결정한다는 그 자체일 것이다.

(2) 깃발관광 Sight-seeing
Sight-seeing as a Playful Experience
그냥 관광 sightseeing 이라고 해도 될 듯 하지만, 어쨋든 이 방식은 일련의 attraction들을 미리 정해진 가장 효율좋은 경로를 따라 하나씩 방문하는 것이다. 가이드를 동반한 관광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며, 각 attraction 사이를 이동하는 방식은 앞서 '탐험'과 같이 여유있는 게 아니라 가장 시간효율적인 방법 -- 이를테면 한 장소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구경한 후에는 단체로 버스에 타고 한꺼번에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든가 -- 을 취하게 된다.

(3) 사파리 Safari
Safari as a Playful Experience
야생동물들 사이를 적당히 누비면서 창밖으로 '구경'하는 이 방식은 attraction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횡단한다고 보면 되겠다. 세세한 이동 경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경로를 지날 때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경험은 바로 코 앞에서 손에 닿을 듯이 느끼는 게 좋고, 어떤 경험은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게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경험을 직접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앞의 '깃발관광 sight-seeing' 방식이 낫지만, 사파리(이건 우리 말이 없나...) 여행 방식은 해당하는 직접경험이 현실적으로는 어렵거나 하나하나 멈춰설 시간이 없을 때에 유용한 듯 하다.

(4) 유람선 Cruise
Cruise as a Playful Experience
이 방식은 꽤 특이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동 자체를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것도 경로 상의 attraction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종종 지루하고 느린 이동경로를 택하는 대신 이동 중에 즐길 수 있는 인위적인 attraction들을 여행자와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제공한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에서 실내수영장이나 인공 서핑장, 혹은 헬스클럽이나 VR 자동차 경주장 등은 참 생경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분명히 인기좋은 여행의 형태이다.

(5) 현실도피 Unreality
Unreality as a Playful Experience
많은 여행들이 이동의 경험보다 '목적지'에 중점을 두고 기획된다. 하지만 이런 여행들도 결국은 그 목적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attraction들을 홍보하고 있다. 그 나라/도시에서 어떤 것을 볼 수 있는지, 어떤 이벤트(축제 등)가 벌어지는 시기인지 등이 그 여행의 가치를 결정한다. 클럽메드와 같이 특정 관광단지에 온갖 attraction을 꾸며놓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경우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여러 섬이나 도시의 관광구역, 심지어 오지탐험이라든가 워킹 홀리데이 working holiday 같은 경우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경험의 핵심은 번잡한 현실과 일상을 벗어나 평소에 할 수 없는 체험(혹은 무료함)을 하는 데에 있다.



... 그래서 뭐. ㅡ_ㅡ;;;;

사실은, 이 "여행 기획"과 "UX 설계" 사이의 연관에 대해서 딱히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단지 기존의 UI 설계가 사용자의 잠재적인 과업(task)을 분석해서 그 과업들 간의 효율적인 이동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혹시 UX 디자인에 있어서 재미있는 경험(enjoyable/playful experience)을 설계해 내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되는 서비스/제품에 있어서 사용자가 재미있어 할 만한 "관광명소(attraction)"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고, 그 attraction들을 염두에 두고 이동경로 -- 혹은 사용방법(UI) -- 를 설계한다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이게 또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해내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줄 것 같고.

예컨대 사용자가 [다음]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다음 페이지를 빨리 띄우는 것보다, 그걸 어떻게 멋지게 띄우는지를 생각한다든가, 일련의 변수를 입력해야 할 때 하나의 설정 창에서 다닥다닥 붙은 UI widget을 한꺼번에 조작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맥락을 공유하는 몇개의 UI scene으로 나누어 각각의 장면이 의미를 갖게 한다든가, 어떤 서비스(음악감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험(Cover flow)이 과업이나 효율성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그걸 적당히 UI에 추가함으로써 전체 경험의 enjoyability를 높일 수 있다든가...

뭐 그런 느낌이다. 대충 나열하자면. (아, 이 빈약한 논리. 특히 맨날 Apple iPhone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좋은 UX 디자인이라고 하는 건 정말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만둬야 하는데 말이지.)



일전에 경험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언급하면서 UX 분야의 정립에 부족한 것으로 '구심점'을 언급한 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구심점의 부재가 갑자기 해결되었다는 건 아니다)이 그 구심점을 지향하기 위한 방법론일 것이다. 뭘 지향해야 할지가 정해졌다고 해도 그걸 성취하는 방법이 그저 "영감을 가진 사람이 골똘히 생각한다"는 파인만(Feynman)의 문제해결 방식이 되어서는, 회사에서 디자이너 조직이 객관적으로 수행할 업무가 아니라 소수의 천재인 '감독(director)'이 담당하는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행위가 되어 버린다.

물론 뭐 그렇게 가는 게 아주 틀린 방향은 아니다. 애당초 UI 디자인 분야 자체가 그렇다는 주장도 있었고, 심지어 일부 회사에서는 조직적으로 그런 '천재 감독'의 역할을 부여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위대한 예술행위(?)를 분석하고 대안적인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상업적인 성공의 확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없는 건 아닐테니까, 뭐 어떠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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