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on에서 'e-paper를 이용한 휴대용 전자책 기기'가 발표되었다. 이전에도 유사한 명칭을 갖는 제품들이 몇 출시되었으나 이번의 Kindle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소위 얼리어답터(이제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난 모르겠다 -_-;; )들끼리만 돌려보는 신기한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iRex사의 iLiad의 경우에는 본격적인 전자책의 효시라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시도를 했지만, 아깝게 대단히 빛을 보지 못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출시를 앞두고 있는 Kindle은 무엇보다 Amazon이라는 책 세상의 중심포탈에서 제공되기 때문에, 뭐라 할 수 없는 신뢰감이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게다가 휴대폰 방식의 무선네트워크를 무료로 제공하므로 언제 어디서나 Amazon 사이트에 접속해서 원하는 eBook을 구매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신간의 베스트셀러가 단돈 $9.99 라니 가격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단, 무선네트워크는 EVDO 방식을 제공하므로 통신사업자가 Amazon과의 계약에 의해 이를 지원하는 곳에서만 동작하며, 당연히? 사용은 Amazon과 Wikipedia 등 일부 사이트에 제한된다. 물론 사용자 입장에선 WiFi HotSpot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니 감지덕지~)
실제로 Amazon에서 준비한 웹사이트를 보면, 이네들이 꽤 오랫동안 상당한 공을 들여 준비했구나... 이제 다른 전자책 장비 업체들은 지하시장이 도와주지 않는 한 다 죽었구나... 싶다. 특히 이 링크의 동영상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동영상을 쉽게 공유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저작권으로 밥 먹고 살아온 Amazon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팔던 책 중에 viral marketing 에 대한 책은 없었나? )
뭐 어쨋든, 아무래도 Amazon이 Apple의 iTunes를 부럽게 쳐다보며 느낀 게 많았던 모양이다. ㅎㅎ
하지만, 이런 기기를 구석구석 뜯어보면서 그 '쿨한' 기능(버튼을 제법 잘 적용한, 게다가 양손잡이 모두를 고려한 페이지 넘김 버튼이라든가, 글자크기 조절기능이라든가... 다들 칭찬받아 마땅한 기능이겠지만)에 취해있는 것보다, UI 측면에서... 혹은 HTI designer 측면에서 이 물건을 보면, 이게 또 제법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화면에는, 잘 알려진대로, e-paper를 썼다. e-paper는 말이 흑/백이지 그 원리상 검은색도 흰색도 희뿌옇게 나온다. 하지만 일부 연구에 의하면 흑/백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보다 약간 회색이 섞인 경우에 보다 가독성이 높고, 눈도 덜 피로하다고 하니 contrast 논쟁은 일단 접어두자.
하지만 e-paper(eInk)는 그 '물리적인' 특성상 페이지 전환의 속도가 느리고, 전환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 PC나 TV에서 보던 상식으로는 - 마치 고장난 화면처럼 역상이 나타난다. 희뿌연 화면이래도 완전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그 안에 굴러다니는 공들을 한번 된통 흔들어줘야 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 정도의 반응속도로는 문서를 '스크롤' 한다든가, 커서를 재빠르게 움직인다든가 하는 동작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거다. 이는 e-paper가 실제로는 종이처럼 말거나 심지어 접을 수는 없다는 것(뭐 조만간 좀 '휠'수 있을지 모르고, 상당한 미래에는 코도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과 함께, UI 설계에 있어 숨겨진 공공연한 거짓말 같은 거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위 Amazon 웹사이트의 동영상들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질만한 조작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장면을 캡춰해보면 아래와 같다.
저거 무슨 짓을 한거야~!!! 하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스리고 찬찬히 훑어보면, 오른쪽에 있는 'Cursor bar'와 그 아래의 'Select wheel'로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했음을 볼 수 있다. 솔직히 jog shuttle을 이전에 봤으니 wheel이야 그렇다고 쳐도, e-paper의 느린 refresh 속도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사용자의 입력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저 오른쪽의 cursor bar라는 놈은 참 기발하다.
동영상을 몇번 보면서 판단한 바로는, 저 cursor bar는 pixel 크기가 무지 커다랗게 만들어진 2 x 36(?) 짜리... 화면...으로, 두 줄이 모두 보이는 경우와 안쪽의 한줄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두 줄이 모두 보이는 경우는 Select Wheel을 눌러 해당 줄의 기능/메뉴/항목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이고, 한줄만 보이는 경우는 여러 개를 선택하는 경우에 preview 느낌으로 보여주거나, 몇가지 경우에 '선택' 버튼으로 자동 이동할 때에 보여주는 eye catch용 transition 효과로 사용되는 듯 하다.
그 외에 cursor가 검은 경우외에 흰색인 경우도 보이는데, 그 두가지가 그냥 preference의 차이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_-a;;
이런 거 있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이트들을 뒤져보니, 이 cursor bar가 polarized PNLCD (pneumatic LCD) 를 사용했다고 한다. ... 시방 먼 소리냐 -_- 싶어서 인터넷도 좀 뒤져보고, Wikipedia도 찾아봤지만 이런 LCD에 대한 설명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정체불명의 LCD의 소속을 찾아낸 건 LCD의 '역사'를 다룬 어느 대학생의 보고서에서였다. (따라서 근거 불충분... 하지만 일단 우겨넣어보자. 이 PNLCD에 대해서 진짜 정보를 아시는 분은 모쪼록 딴지와 부가설명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인터넷에서 진짜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pneumatic LCD는, 모두 측정기기에나 쓰이는 흑백의, 단순한 화면들이다. 요컨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초창기의 흑백 LCD라는 거다. 보통은 7-segment 숫자표시로나 쓰이는 원시적인 LCD 화면을, 그것도 요즘은 명함도 내밀기 두려운 초 저해상도(2x36)로 만들어 붙일 생각을 한거다.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인 e-paper와, 최초의 상용화된 LCD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pneumatic LCD가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해 보인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UI 기술에는, 사실 "다 안 팔리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의 단점(반응시간)을 오래되고 저렴한 기술을 이용해서 해결한 것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짝짝짝.
물론 이게 무슨 모범답안은 아니고, 100% 완벽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위에 링크된 사이트에 걸려있는 직찍 사진을 보면, Cursor bar가 상당히.. 조악스런 품질로 보인다. "설마 목업?"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 어쩌면 빠른 반응속도와 상관없이, 사용자들에게 옥의 티로 꼽힐 수도 있겠다. ㅡ_ㅡa;;
또한 Cursor bar의 LCD는 e-paper와 달리 전원을 끄면 화면이 꺼지기 때문에, Select wheel을 조작하지 않거나 전원을 끄면 cursor도 사라진다. 정작 주화면은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사용자는 전원이 꺼져있는지 켜져있는지를 cursor의 유무로 알아봐야 할 듯. (어쩌면 LED 하나쯤 있을지도 모르고) 이것도 일종의 mode error니까, 사용성 측면에서 굳이 딴지를 걸자면 언급될 수 있겠다.
끝으로 이번 Kindle 공개와 관련해서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 하나.
위 캡춰 이미지에서와 같이, Kindle은 다른 e-paper 적용기기들과 같이 "밝은 태양빛 아래에서 잘 보입니다!"라는 걸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제품들이 대부분 태양광 아래에서 거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큰 장점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데서는 전혀 -_- 안 보인다는 거~ 그래서 Amazon 사이트의 한 구석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눈에 띈다.
e-paper는 빛이 충분히 투과하지 못하고, 빛을 투과시키기 위해서 단가가 올라가는 건 차치하고라도 화면이 흐려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반사식으로 화면 앞쪽에 광원을 두려면 광원은 물론 빛을 산란시킬 부품을 넣으려면 제품이 두꺼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 물론 충분히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아직은 좀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 이 업종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어 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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