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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warming Detail of Good User Interface

by Stan1ey 2008. 7. 27.

"좋은 UI 디자인을 하려면, 어디서든 좋으니까 창구 업무를 맡아 보세요."

내가 종종 하는 얘기다. 특히 후배들이 "방학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요?" 라고 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더니, 결국은 아무도 물어보러 오지 않게 됐다. ... 그건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좋은 '인터페이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창구'라는 '시스템'과 '방문자' 간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게 들린 걸까?



만화 - 주로 일본의 - 에서나 등장하는 이상적인 점원이 있다. 성실하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은 기본. 손님을 관찰하지 않는 듯 하면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나서서 설명해야 할 때와 손님이 가만히 둘러보고 싶을 때를 알고 있다. 상품에 대한 지식이 해박할 뿐 아니라, 점포의 내력과 브랜드의 의미에 대해서도 마치 주인인 듯이 애정을 가지고,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짤막하게 설명해 주곤 하는... 오늘 딱 그런 분을 만났다.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 강남본점

강남역 7번출구쪽 뒷골목을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체인사업본부'들이 눈에 많이 띄이는데, 솔직히 간판을 보고는 그런 곳 중의 하나인 줄 알았다. 근데 한켠에 뭔가 디자인샵 같은 느낌도 나고 해서 들어가보니 이거 꽤 재미있다. 상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반은 '프랭클린 플래너'를 위해 할애하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이 속속 눈에 띄었던 거다.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 강남본점

알고보니 이 점포, '프랭클린 플래너'를 총판하고 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라는 소매업 체인의 본점이란다. 옆에 붙어있는 카페에서는 맛있는 (내가 Lavazza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와 다양한 종류의 차를 팔고 있었고, 몇가지 크기의 세미나실 같은 공간을 대여해 주는 듯 했다.

이 가게에서 팔고 있는 물건 중에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 생소한 브랜드인 <에코파티 메아리>의 'Recycled Sofa Leather' 시리즈였다. 말 그대로 폐기된 가죽소파의 쓸만한 부분을 모아서 제품을 만든 거다. ㅡ0ㅡ;;

Recycled Sofa Leather Pencil Case - by Mearry.com

이 <메아리> 브랜드는 명지대 교수님이 주축이 되어 만드셨다는 브랜드라고 하며, <성공가게>에서는 소파가죽 재사용 제품군(?) 외에도 버려지는 현수막으로 만든 편안한 느낌의 가방도 팔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별걸 다 재사용했다 싶은데, 나름 디자인이 편안하니 좋다.

무엇보다 점원이 점포와 진열상품에 대해서 이만큼 깊이로 설명해주는 곳은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참 재미있는 브랜드를 둘이나 발견했구나...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가죽필통을 골라 계산을 하고 종이봉투(비닐봉지가 아니다!)를 받아들고 나왔다.



그 점원 분에게서 '좋은 UI 디자이너'의 모습을 본 것은, 사실 한참 나중에 종이봉투를 열면서 였다. 아무 생각 없이 봉해진 스카치 테이프를 뜯다가, 테이프의 한끝이 살짝 접혀있는 걸 발견한 거다.

Adhesive Tape with Good UI

이렇게 테이프 한쪽을 접어서 붙이면 나중에 떼어낼 때 손톱을 세워 뜯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 지식을 이용하는 것은 주로 자신이 사용할 테이프를 보관할 때 나중을 위해서 살짝 접어놓을 때 뿐이지, 다른 사람이 뜯을 포장을 위해서 저렇게 마음과 수고를 쓴다는 것은 참 흔치 않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UI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도, 그 분이 제공해준 십여분의 경험은 여러가지로 배울 게 많은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가 오늘 고수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좀 친절한 점원을 만난 것 가지고 꽤나 오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오늘은 왠지 감상적인 하루여서 그랬나보다고 변명하고 싶다. 감상마저 UI 운운하는 건 참 웃기는 짬뽕이지만. ㅡ_ㅡa;;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 Leaflet on paper bag

어쨌든 재미있는 컨셉의 가게와 브랜드를 만난 덕택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UI 디자이너보다도 훌륭한 UX를 제공하고 있는 분을 만난 덕택에, 난 여전히 내 개똥철학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좋은 UI 디자인을 하려면, 창구 업무를 맡아 보세요." 라고 말이다.



P.S. 참고로 난 창구 업무를 해본 적이 없다. ㅋㅋ 그래서 내 UI가 늘 22% 부족한 걸까. ^^;;; 단지 군대에서 한동안 위병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위병 업무 중에서 마네킹 마냥 서있다가 경례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군부대라는 '시스템'과 다양한 방문자나 인근주민이라는 '사용자' 사이의 창구... 즉 '인터페이스' 역할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뿐이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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