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CHI 2008에 갔다가, HCI 모임에서 애자일 개발 방법론(agile development process)을 몇 명이나 언급하는 걸 보고 좀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이전에도 관련학회의 논문 내용 중에 잠깐씩 언급된 적은 있었지만, 아예 제목에서부터 'agile process'나 'extreme programming'을 언급하고 있는 경우가 무려 6건이나 된다. 그 6건 중에 정작 정식논문(paper)로 발표된 경우는 하나도 없고 죄다 case study, panel, workshop 등의 형태로 발표됐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별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막 떠오르는 이슈가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애자일 방법론 자체에 대해서는 위의 링크들과 동영상에 잘 설명되어 있지만, 그냥 간단히 무식용감하게 내지르자면 "회의/문서작업 좀 그만하자. 그냥 후딱 만들어 보고 문제 있으면 수정하는 게 차라리 빠르겠다"는 거다. (내지르고 나서 보니 참으로 과도한 축약이다 -_-; 어쨋든) 요즘은 UI라고 하면 대부분 software UI를 말하기 때문에, 이 '빨리빨리' 방법론이 UI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CHI 2008에서의 발표 내용은 대부분 아래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How do extreme programming and user-centered design fit together?

게다가 재미있는 것은, UI 부서가 늘상 주장하던 (안 그랬다면 문제있다 -_-a ) "프로토타이핑"과 "평가", 그리고 주장하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았던 "반복적 개선"이 이미 이 방법론에도 적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리가 잡히는 개발문서에 시간을 쓰기 보다 그게 잘 만들어졌는지를 검증하는 평가방법론 쪽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위 그림에서도 노란 영역은 원래의 애자일 프로세스(중간에 쌓여있는 부분이 test & iteration에 대한 부분)이고, 푸르딩딩하게 표시된 UI 부분은 단지 그 프로세스의 흐름에서 이를 막지 않고 '단지 거들뿐'으로 제시되고 있다. (출처: Probing Agile Usability Process, CHI 2008)

사실 학회에 다녀와서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원래 논리를 맞추는 직업인 UI 디자인에서는 이미 이 방법론대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해오고 있었고, 어차피 시간을 많이 주질 않으니 최대한 빨리 만드느라 별짓을 다 해왔고, 기회만 있다면 어떻게든 사람 앉혀놓고 평가해서 반복/개선하려고 노력했으니... 뭐 딱이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다.

단지 이게 '굳이' 쓸모가 있다면, 애자일 방법론의 시류에 편승해서 조직 내에서 UI 부서의 입지를 굳혀보자는 정도일까나.... ㅡ_ㅡ+ (번쩍)

아마 학회에서 이 발표를 쫓아다니면서 들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질문도 뭔가 애자일 자체에 대한 것보다 개발팀과의 언쟁이 좀 줄더냐. UI 담당자들이 각 애자일팀(scrum)으로 분산되어서 일하면 hit rate가 떨어지지 않느냐. 뭐 그런 내용이었다. 발표장에 흐르는 묘한 동료의식. ㅎㅎㅎ



그러더니, 지난 달에 Jacob Nielsen이 <Agile Development Projects and Usability>라는 제목의 컬럼을 올렸다. 뭐 비록 '좀 더 자세히 보려면 유료 보고서를 참조하시라'는 식으로 끝맺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장삿꾼 아저씨도 CHI 2008이나 다른 관련학회(아마도)의 흐름이 그냥 예사로 보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컬럼의 내용은 뭐 일반적인 애자일의 UI 실무 입장의 장점 외에도, 조심해야 할 점(애당초 개발자의 발상이기 때문에 설계를 들여다볼 짬이 없으니, 되도록 짧고 빠르게 개발과 병행할 수 있는 UCD 방법론을 선택해야 한다.. 정도?)을 나열하고 있다. 맨날 어차피 바뀔 기능 스펙만 보면서 열심히 개발하고 UI 한다거나, 결국 개발팀에서 개발완료를 해야 들여다보든 테스트하든 할 수 있는데 그래봐야 수정일정 따위 주어지지 않았고 바로 출시일이라든가, 그래서 한방에 제대로 된 사용성 평가 좀 하겠다면 예산과 일정 때문에 택도 없다든가... 이런 UI 실무의 현실이 애자일 방법론의 유행(?)과 더불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국 위 컬럼의 맺음말처럼 "기회가 좋으니 열심히 하자"는 거다. ^o^/



(드디어 다 썼다~!!! 도대체 몇주를 쓴거야... orz... 인터넷은 내년 초에나 들어온다고 하고... 점심시간은 짧을 뿐이고... 블로깅 야근은 우울할 뿐이고... 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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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on이라는 회사는 진공청소기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면 눈에 확 띄는 기업이다. 일단 그들의 제품의 기괴한 형상에 놀라게 되고, 또 독특한 기술 중심의 홍보로 다른 회사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Dyson Website on Technology

Dyson DC07
Dyson Technology
Dyson 사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적인 기술이 깔대기 모양의 통에 공기를 돌려서 먼지가방 없이 먼지와 공기를 분리하는 방식인데, 이 회사에서는 이 방식으로 먼지가방이 막히지 않으니 흡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덕택에 이 회사의 청소기들은 그 형태가 아무리 봐도 가정용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무채색과 선명한 노란색만으로 채색하는 게 특징이어서 그야말로 중공업 분위기랄까. 어느 정도는 부드러운 형태로 겉부분을 꾸밀 법 한데, 고집스럽게도 그 "특허받은 기술"을 드러내는 걸 전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진공 청소기를 살까 하다가, 영국에 왔으니 Dyson을 써볼까 하는 중이다. 웹사이트를 들여다보니 재미있는 페이지가 있다. 바로 TV 광고를 모아놓은 페이지인데, 회사 대표인 "발명가"가 나와서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 철학을 인터뷰 형식으로 말하는 게 TV 광고다. -_-a;;;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동영상 중 두 편은 정말 볼 가치가 있다. "Function over Form" 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중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프로토타입을 거쳐서 최종 제품 설계를 결정하는지, 기능을 잘 하는 제품이면 분명히 보기도 좋고, 보기가 좋지 않다면 분명 뭔가 설계가 잘못된 거라는 주장이 들어있고, "Failing, And Learning" 이라는 동영상에서는 최종 제품설계를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프로토타이핑과 시행착오를 거치는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실제로 제품을 기획하고 설계할 때도 이렇게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실제로는 시간에 쫓겨 그렇게 안 되는 게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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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 2005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Opening Plenary를 맡았던 CMU의 한 교수가, <A Technologist's Comments on Psychologists, Artists, Designers, and other Creatures Strange to Me>라는 제목으로 이런저런 재치 넘치는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다음 그림을 보여줬다.

Image from Rich Gold's Plenitude

당시에는 아직 출간 전이었던 Rich Gold의 <Plenitude>라는 책에 실린 이 그림은, 예술(art)과 디자인(design)과 과학(science)과 공학(engineering)을 우리가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세상을 두 종류로 구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던가. ;-) 저 위의 네 가지 직업을 둘로 나누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아래와 같이 나눌 것이다.

How to divide Art & Design, Science & Engineering

즉, 우리나라 식으로 하자면 예체능과 이공계로 나눈 셈이고,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위 그림에서 강연자가 표현한대로 "수학을 잘 하는 사람"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나뉘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 강연자의 표현대로는 - 세상이 예술과 디자인을, 과학과 공학을 같은 부류로 묶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술과 디자인 사이, 과학과 공학 사이에는 일종의 관점의 차이와 가치관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디자인을 처음 배울 때부터 "예술과 공학의 중간"이라고 하면서도 "그러면 디자인과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많은 토론 시간을 투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현상을 지적하면서, 강연자는 다음 그림과 같은 구분이 오히려 올바르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했다.

How to divide Art & Science, Design & Engineering

예술과 과학은, 비록 주관적/객관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변치않는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관점을 가진다. 반면에 디자인과 공학은 각각 예술과 과학의 실용분야로서 현실 속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공돌이 소릴 듣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것에 대해서 서로 이렇게 저렇게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구나 하면서 열심히 들었던 대목이다. 출장보고서에서도 가장 강조하면서 '우리가 취하고 있는 관점은 무엇인가?'라는 점을 한동안 열심히 떠들기도 했고. 특히 그가 강조한 각 분야 '전문가'에 대한 생각은 그런 사람들과 매일을 보내야 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더이상 공감갈 수 없는 내용이었다.

Randy Pausch's thought on professionals

다른 교육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자세로 서로를 포용하고 하나의 그룹으로 협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 강연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강연자가 미리 자리에 올려놓은 인쇄물에 잘 요약되어 있지 않나 싶다.

Randy Pausch's note on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

Don't be afraid to be silly
그 외에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면, 발표자료의 대부분을 차지한 본인과 동료 연구자, 학생들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진에서 몸소 보여주려고 한 듯 했던 "바보같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순간 당신의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될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교육받았던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에는 상식에 벗어나는 어리석은 행동일지 몰라도,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전문가의 벽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이 CHI 2005 강연자의 이름은 Randy Pausch - CMU의 ETC, 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 라는 멋진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하고, Walt Disney나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함께 협업하며 어떠한 새로운 각도의 연구가 가능한가를 몸소 보여줬던 분이다. 젊은 나이에 ETC를 세우고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분야를 확립한 사람이기에, 한편으로는 무척 부럽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던 사람이다. 강의를 들을기회는 딸랑 한번이었지만,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 있던 나로서는 배울 게 참 많았던 강의였다.

어제 이런저런 관련된 내용을 찾다가, 오래간만이 이 이름을 보고 반가와 하려다가 "~2008)" 이라는 표시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부랴부랴 찾아보니 바로 한 달쯤 전에, 췌장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 CMU에서의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마지막 몇달은 가족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선고받은, 누구보다도 즐겁게 연구하고자 했던 뛰어난 인재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랜디 포쉬 Randy Pausch 가 CMU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는 'The Last Lecture'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동영상과 강의자료 등이 돌아다니고 있다. Randy의 마지막 강의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른 분의 블로그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위의 강의 동영상은 1시간이 넘는 긴 분량이다. 몇 부분은 CHI 2005에서도 봤던 내용인데다가, 강연 전반에 걸쳐서 그때와 거의 비슷한 즐거운 논조로 시종일관 사람들을 웃기며 한편으로 고양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In memory of Randy Pausch
이런 사람이 40대에 수많은 가능성을 뒤로 한 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접하고는 아마도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그는 UI/HCI 분야의 선구자였으며, 누구보다도 공학 기술을 UI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이를 성취하는 데에 큰 열정을 보였으니 HTI 분야의 거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마지막 이미지는 발표내용 중 몇번이나 인용된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y let us prove how badly we want things." (해석하자면, 장벽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건 우리가 그걸 얼마나 원하는지를 증명해 보이라고 있는 것이다... 정도가 될까?) 라는 문장이다. 전체적인 발표내용에선 좀 벗어나지만, 뭔가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할 때, 틀에 벗어나 왠지 바보같아 보일지 모르는 행동을 해야 할 때, 머리는 이 길이 맞다는 걸 알지만 걱정과 의심이 앞설 때 한번쯤 되돌아 보고싶은 내용이다.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y let us prove how badly we want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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