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성이 사회적인 이슈와 어떻게 잘 맞물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글을 쓴 이후에, 게임의 사회적인 순기능에 대한 BBC의 관련 기사 하나가 회사에 돌고 있길래 스크랩해 놓으려고 한다.


이 기사에서는 "게임이 무조건 반사회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사회적, 도덕적 순기능을 갖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사례로 앞의 글에서 소개했던 <3rd World Farmer>와 유사한 취지를 가진 다른 2개의 게임들 - <Darfur is Dying>과 <Food Force> - 을 소개하고 있다. ... 솔직히 이건 좀 오바다 싶지만, (사실은 WoW 같은 게임에서 배우는 사회성이 도움이 된다는 게 연구의 요지가 아니었을런지?) 그래도 뭐 재미있는 기사라서. -_-a

<Darfur is Dying>은 수단 Sudan 의 Darfur 지방 난민의 고충을 게임화한 것으로, 사막 가운데의 우물에서 시민군(난민을 강제로 군인으로 징용해가며, 끌려간 가족은 다시는 볼 수 없다)의 지프차 추격을 비해 마을로 물을 떠온다든가, 다양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자연적 제약으로 고생하고 있는 난민캠프의 모두를 도와줘야 한다든가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Darfur is Dying - SplashDarfur is Dying - Family Members DyingDarfur is Dying - Family Members Dying
Darfur is Dying - Town MissionDarfur is Dying - Town StatusDarfur is Dying - Town Status

이전의 <3rd World Farmer>처럼 끝까지 해보려고 했지만, 게임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자 했는지 미션들이 너무 어렵거나 난해하다. 결국 이 게임에 대해서 얼마나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간 관계상 요 정도로만 요약하고 끝내기로.

이 게임은 스포츠 브랜드인 Reebok 과 음반/방송사업을 하는 MTV의 자회사 mtvU, 그리고 다른 몇 그룹에서 주최한 "Darfur Digital Activist Contest"의 출품작이다. 게임이 실린 웹페이지에서 링크를 따라가 보면 다른 게임들도 출품된 것 같은데, 온라인 게임들도 아니고 게다가 출품조건에는 게임을 완성할 필요가 없다고 되어 있는 듯 [BETA]라고 표시되어 있길래 그냥 포기. -_-;;


한편, <Food Force> (링크는 mission #1만 있음)의 경우에는 UN의 World Food Programme에서 제공하는 게임으로 가상의 지역에서 난민 그룹들에게 헬기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이 주요 미션이다. 혹시나 해서 뒤져보니 아래의 멋진 '인트로' 영상 외에도 많은 관련 동영상이 YouTube에 등록되어 있었다.


Food Force - SplashFood Force - Air Surveillance for Food DropFood Force - Air Surveillance for Food Drop

미션 내내 화면에 나타나는 난민들이 처한 여러 상황에 대한 음성설명이 포함되어 있고, 가짜지만 3D 게임 흉내도 내는 등 제법 전문적으로 잘 만든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이 게임 전체를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하는 food-force.com 웹사이트는 이 글을 쓰는 지난 며칠 내내 연결이 되질 않는다.



사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처음의 불순한 의도 - 이런 게임들 얼마나 온라인에 떠 있겠어... 스크린샷이나 좀 모아둬볼까나 - 외에 놀란 게 있다면, Reebok이나 MTV, 심지어 UN에서 "게임을 통한 메시지 전파"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팝송/가요)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콘서트를 열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 게임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은, 역시 게임이 음악/영화와 함께 주력 엔터테인먼트 매체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측면에서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 결국은 Darfur 난민의 비참함이나 전지구적인 식량부족사태에 대해서는 정보 이상의 감흥을 받지 못한 한심한 작태인 거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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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게임이 레이다에 걸렸다. (사실은 몇 주 전에 화제가 된 게임인데, 그때 갈무리해 두었던 내용이 페이지를 넘기는 바람에 까먹었다 -_-;; ) 웹 브라우저 용으로 Director와 Flash Plugin이 등장한 이후로 많은 웹 게임들이 등장했고, 그러다보니 몇가지 독특한 게임이 네트즌 개인에 의해서 만들어져 공개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이번에 눈에 띈 <3rd World Farmer>라는 게임도 정말 독특한 목적을 가진 게임이다.

Splash Screen for 3rd World Farmer Game

"Endure the hardships of 3rd World Farming..." 이라는 저 문구가 이 게임의 목적이자 취지라고 볼 수 있다. 즉 제 3세계의 농부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게임을 통해서 경험해 보라는 건데, 이 게임을 직접 해보면 이게 무슨 소린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게임은 최소의 자본을 가지고 씨를 사거나 가축을 길러 수입을 올려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타이쿤 류 게임과 같다.

Play Screen for 3rd World Farmer Game

단지 다른 점은 (마치 제 3세계에서 겪을 수 있는 것처럼)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수시로 가뭄과 흉작이 닥치고, 가축을 기르다보면 조류독감에 돼지콜레라에 소나 코끼리까지 무슨 전염병으로 픽픽 쓰러진다. 돈 좀 모았나 싶으면 내전으로 건물이 불타고 심지어 국립은행이 도산해서 저축을 몽땅 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도대체 삶이 발전할 수가 없고, 그야말로 한 해 한 해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지경인 거다. 실제로 돈을 못 벌어서 약을 사지 못하면, 식구들이 하나 둘 죽어 나가는 걸 봐야 한다. ㅜ_ㅠ' 그 와중에 애들은 학교를 보내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손주도 봐야 한다. =_=a;;;

시작 화면의 설명에 영어 외에 덴마크어로 된 것도 들어있는 걸 보면 덴마크 사람이 만든 것 같은데, 꽤나 기특한 생각을 해냈다. 꼭 시도한 것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 게임을 하면서 최소한 '정말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은 하게 됐으니까.



맨날 게임의 중독성과 해악에 대해서 고민할 게 아니라, 그 중독성 있는 재미를 어떻게 교육적으로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뭐 그게 십여년전 "멀티미디어"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있었던 소위 "에듀테인먼트 edutainment" 혹은 "인포테인먼트 infotainment"일 것이다. 하지만 유행을 따랐던 많은 사례들의 문제는 그게 결국 게임과 교육/정보의 단순조합이었다는 것이다. 게임 한판 하고나면 강의 한판, 게임 한판 하고나면 강의 한판...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재미도 없게 마련이다. 이 <3rd World Farmer>는 게임 플레이 자체와 교육/정보를 하나로 합쳤기 때문에 어쩌면 게임의 중독성을 (듣기 좋은 말로 해서) 긍정적으로 풀어나간 사례가 되지 않을까.



... 단지 역시 개인이 만든 게임의 규모와 완성도의 한계라고 해야 할지 몰라도, 이 게임을 몇번 플레이하다보면 결국은 운이 좋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두번 운 좋은 해가 있으면 한두번 운 나쁜 해가 있고, 그러다보면 돈이 일단 모이기 시작하고, 이걸 잘 굴리면 결국 부자가 될 수 있는 거다.

Successful Ending of 3rd World FarmerSuccessful Ending of 3rd World FarmerSuccessful Ending of 3rd World Farmer

결국 인생 한방이지 뭐...라는, 게임 제작자의 의견에 동감하는 건지 반대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결말 되겠다. 먼산~ (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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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TV에서 종종 나오는, 좀 우스운 자동차 광고가 있다.



바로 영국 자동차 회사인 Vauxhall에서 판매하는 Corsa라는 이름의 자동차인데, 그냥 봉제인형을 이용했구나...하고 그냥 "C'mon!" 이라는 대목만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면서 보던 광고다.

그런데, 얼마전 시내의 쇼핑몰에 갔다가,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파는 (대표상품은 각종 축하 카드였던 듯) 가게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

C'MON Dolls - As Seen on TV, in Vauxhall Ads.

얼래? 흠... 아마 이 인형들이 원래 있던 캐릭터인가 보네... 하고 (속으로 '디자인 취향 참...' 하면서) 지나치려다가, 저 "As Seen on TV"라는 문구가 좀 맘에 걸렸다. 그래서 바로 또 웹서핑 삼매경. ... 요새 좀 심심한 듯.



역시나 인터넷의 누군가가 위키피디아에 잘 정리해 놓은 저 C'MON! 에 대한 이야기관련 홍보자료를 중심으로 간략하게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C'Mons는 원래 독일의 디자이너 artist(링크주의: 노골적인 성적 표현)가 MTV 광고 캠페인을 위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형 락 밴드로, 밴드를 설명하는 '가상의' 웹페이지인 C'MON!pedia에 그 배경과 멤버에 대한 설명 - 결국 설정자료 - 을 볼 수 있다. MTV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이 밴드에 대한 온갖 자료가 들어있는데, 열혈 팬들의 인터뷰, 숨겨진 과거와 인기를 얻게 된 배경은 물론 난잡한 -_- 사생활에 대한 폭로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밴드는 모두 4곡을 음반으로 취입한 듯 한데, "C'mon", "C'mon C'mon", "C'mon C'mon C'mon", 그리고 "C'mon 4"다. ㅡ_ㅡa;;; 그리고 이 곡들은 모두 단순한 가사 - "C'mon!" - 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캐릭터들이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2006년 영국의 Vauxhall 사에서 신차 "Corsa"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C'mons 밴드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Vauxhall 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C'mons의 공식 웹사이트도 있으며, 이후 다른 유럽에서도 Corsa를 홍보할 때에는 같은 캐릭터를 사용하는 듯 하다.

C'monPediaC'mon WebsiteC'mon Website

그리고, 내가 봤듯이, 이렇게 캐릭터 상품으로 나와서 팔리고 있는 거다. 자동차 광고를 하라고 내보냈더니 오히려 스스로를 팔고 있는 형국이랄까. ㅡ_ㅡa;;



문화적인 차이가 가장 극명한 것이 대중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위에 링크한 웹사이트들의 내용들은 소위 '스타'들을 둘러싼 대중매체와 팬들의 반응을 제대로 비꼬고 있어서, 이런 식의 마케팅 전략이 먹힌다는 것이 황당할 지경이다. 술마시고 길거리에서 스파게티를 토한 모습이라든가, 스트립 클럽에서 옷 벗고 춤 추는 사진이라든가 하는 것은 스타들에게는 큰 흉이고, 특히 이미지를 중시하는 광고 모델에게는 절대로 없어야 하는 결점일 거다. 실제로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아파트 광고에서 '계약에 따라' 퇴출 당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선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형편이니까. 그런데 사실 C'mons의 다섯 개 캐릭터들은, 하나하나가 그런 사고뭉치들로 그려지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인형"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팬이 생기고 광고에 데뷰한다는 현상은 참 흥미롭다. 대중문화 시스템에 대해서 보는 시각이 뭔가 다르다고나 할까.

예전의 글에서 배우는 캐릭터性만을 제공하는 존재로 남고, 실제 연기나 노래는 모두 컴퓨터(CG, TTS)가 하게 될 것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사례를 보니 사실 그렇게 되면 인간 캐릭터의 단점 - 사생활이 난잡하다던가, 뭔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다던가 - 을 죄없는 가상 캐릭터가 뒤집어써야 하는 거 아닌가도 싶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그 '인간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 수 있다면, 차라리 상업적인 관점에서는 기왕 가상 캐릭터를 쓰는 거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실제의 캐릭터를 쓰느니 100% 가상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훨씬 낫겠다 싶다.

그렇다고 그 캐릭터들에게 100% 프로그램된 행동만을 넣어두는 것도 상품성(?)이 떨어질테고, 결국은 <마크로스 플러스>에 등장했던 100% 가상캐릭터 '샤론 애플'이나 <S1m0ne>에서의 여주인공이 미래 엔터테인먼트의 정답이자 어쩔 수 없는 결말인 건가... 조금 실망인데.

Sharon Apple from Macross PlusSharon Apple from Macross PlusSharon Apple from Macross Plus
Simone from S1m0ne - PosterSimone from S1m0neSimone from S1m0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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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 2005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Opening Plenary를 맡았던 CMU의 한 교수가, <A Technologist's Comments on Psychologists, Artists, Designers, and other Creatures Strange to Me>라는 제목으로 이런저런 재치 넘치는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다음 그림을 보여줬다.

Image from Rich Gold's Plenitude

당시에는 아직 출간 전이었던 Rich Gold의 <Plenitude>라는 책에 실린 이 그림은, 예술(art)과 디자인(design)과 과학(science)과 공학(engineering)을 우리가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세상을 두 종류로 구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던가. ;-) 저 위의 네 가지 직업을 둘로 나누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아래와 같이 나눌 것이다.

How to divide Art & Design, Science & Engineering

즉, 우리나라 식으로 하자면 예체능과 이공계로 나눈 셈이고,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위 그림에서 강연자가 표현한대로 "수학을 잘 하는 사람"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나뉘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 강연자의 표현대로는 - 세상이 예술과 디자인을, 과학과 공학을 같은 부류로 묶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술과 디자인 사이, 과학과 공학 사이에는 일종의 관점의 차이와 가치관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디자인을 처음 배울 때부터 "예술과 공학의 중간"이라고 하면서도 "그러면 디자인과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많은 토론 시간을 투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현상을 지적하면서, 강연자는 다음 그림과 같은 구분이 오히려 올바르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했다.

How to divide Art & Science, Design & Engineering

예술과 과학은, 비록 주관적/객관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변치않는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관점을 가진다. 반면에 디자인과 공학은 각각 예술과 과학의 실용분야로서 현실 속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공돌이 소릴 듣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것에 대해서 서로 이렇게 저렇게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구나 하면서 열심히 들었던 대목이다. 출장보고서에서도 가장 강조하면서 '우리가 취하고 있는 관점은 무엇인가?'라는 점을 한동안 열심히 떠들기도 했고. 특히 그가 강조한 각 분야 '전문가'에 대한 생각은 그런 사람들과 매일을 보내야 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더이상 공감갈 수 없는 내용이었다.

Randy Pausch's thought on professionals

다른 교육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자세로 서로를 포용하고 하나의 그룹으로 협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 강연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강연자가 미리 자리에 올려놓은 인쇄물에 잘 요약되어 있지 않나 싶다.

Randy Pausch's note on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

Don't be afraid to be silly
그 외에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면, 발표자료의 대부분을 차지한 본인과 동료 연구자, 학생들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진에서 몸소 보여주려고 한 듯 했던 "바보같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순간 당신의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될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교육받았던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에는 상식에 벗어나는 어리석은 행동일지 몰라도,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전문가의 벽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이 CHI 2005 강연자의 이름은 Randy Pausch - CMU의 ETC, 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 라는 멋진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하고, Walt Disney나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함께 협업하며 어떠한 새로운 각도의 연구가 가능한가를 몸소 보여줬던 분이다. 젊은 나이에 ETC를 세우고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분야를 확립한 사람이기에, 한편으로는 무척 부럽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던 사람이다. 강의를 들을기회는 딸랑 한번이었지만,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 있던 나로서는 배울 게 참 많았던 강의였다.

어제 이런저런 관련된 내용을 찾다가, 오래간만이 이 이름을 보고 반가와 하려다가 "~2008)" 이라는 표시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부랴부랴 찾아보니 바로 한 달쯤 전에, 췌장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 CMU에서의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마지막 몇달은 가족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선고받은, 누구보다도 즐겁게 연구하고자 했던 뛰어난 인재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랜디 포쉬 Randy Pausch 가 CMU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는 'The Last Lecture'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동영상과 강의자료 등이 돌아다니고 있다. Randy의 마지막 강의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른 분의 블로그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위의 강의 동영상은 1시간이 넘는 긴 분량이다. 몇 부분은 CHI 2005에서도 봤던 내용인데다가, 강연 전반에 걸쳐서 그때와 거의 비슷한 즐거운 논조로 시종일관 사람들을 웃기며 한편으로 고양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In memory of Randy Pausch
이런 사람이 40대에 수많은 가능성을 뒤로 한 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접하고는 아마도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그는 UI/HCI 분야의 선구자였으며, 누구보다도 공학 기술을 UI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이를 성취하는 데에 큰 열정을 보였으니 HTI 분야의 거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마지막 이미지는 발표내용 중 몇번이나 인용된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y let us prove how badly we want things." (해석하자면, 장벽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건 우리가 그걸 얼마나 원하는지를 증명해 보이라고 있는 것이다... 정도가 될까?) 라는 문장이다. 전체적인 발표내용에선 좀 벗어나지만, 뭔가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할 때, 틀에 벗어나 왠지 바보같아 보일지 모르는 행동을 해야 할 때, 머리는 이 길이 맞다는 걸 알지만 걱정과 의심이 앞설 때 한번쯤 되돌아 보고싶은 내용이다.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y let us prove how badly we want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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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전혀 다른 문화권에 와서 살다보니, 여러가지 눈에 밟히는 자잘한 UI 상의 차이점들이 보인다. 워낙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들이라 지금에나 불편함을 느끼지 곧 익숙해지겠다 싶어서, 익숙해지기 전에 몇가지 정리해 두려고 한다.

1. TV 리모컨

TV remote controller with UK mental model
영국의 TV 리모컨이 모두 이런 방식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TV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이 TV이거나 셋탑박스거나 케이블이거나 외부영상이거나 하는, 어쨌든 TV와 다른 영상입력 방식이 대등한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의 버튼을 한번씩 누를때마다 순차적으로 입력이 바뀌는 반면에, 이 곳의 리모컨을 보니 TV 입력 버튼은 따로 있고, 별도의 "Source" 버튼을 누르면 TV 외의 외부입력들이 하나씩 순서대로 선택되도록 되어있다. 즉 TV는 따로 생각하고, 다른 외부입력들만이 대등한 그룹으로 묶여있는 것이다. (참고로 저 리모컨은 우리나라 S사의 것이다)

해외 시장을 위한 TV 리모컨 UI를 해본 적 없어서 이런 사실을 몰랐는데, 이만큼이나 다른 멘탈모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니 리모컨 UI 디자인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까다로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전구 소켓
Various light bulb sockets in UK
룸메이트 화장실의 전구가 나가서 새 걸로 바꿔 끼우려고 하는 걸 돕다보니, 전구 소켓의 모양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다. 다른 조명들을 뜯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나사 방식의 전구도 있지만, 화장실과 복도에는 저 (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맞춰끼우는 방식의 전구와 소켓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별히 무슨 차이점이 있거나 한 걸까? 처음 보는 형식의 전구 소켓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한 나라에서 두가지 방식으로 전구를 조립한다는 것도 신기해서 한번 찍어두었다.


3. 전원 플러그 스위치
UK switch, with ON label on Off side
집안에 있는 대부분의 On/Off 스위치가 비슷하게 생겼으니 아마도 무슨 잘 정리된 표준 같은 게 아닌가 싶은데, 유독 벽에 붙어 전원 플러그의 전원을 끄고 켜는 스위치는 "ON" 표시가 포함되어 있다. 좀 희한하다 싶은 것은 "ON" 표시가 사실은 "OFF"쪽에 인쇄되어 있어서, On 되어 있는 상태에서 "ON"이라는 표시가 보이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그 쪽을 눌러 스위치를 "OFF"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더라는 거다.

집안에 있는 모든 -_- 스위치를 보니 모두 아랫쪽을 누르면 ON으로 고정되어 있으므로 사실 사용자로선 그냥 무의식 중에 이해하고 쓸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정작 위 사진의 두 스위치 중에 어느 쪽이 "ON" 상태냐고 물어보면 조금은 당황하지 않을까.


4. 라디에이터 다이얼
Radiator dial with ambiguous pictogram
침실에 달린 라디에이터를 보고 꽤나 당황했다. 도대체 "○"는 뭐고 "●"는 뭐고 "▥"는 뭐냐! 고민하던 끝에, 화장실 라디에이터에 달린 다이얼을 보고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Another example of radiator dial pictogram
결국 속이 빈 동그라미는 난방을 끄고, 채워진 동그라미는 켜고, 난방의 세기는 |→||→|||→|||| 순서대로 커지는 건데, 침실의 라디에이터는 무슨 이유에선지 강약조절하는 부분이 '대충' 표현되어 ●~"||||"으로만 되어 있고, 화장실의 것은 각 단계가 모두 표시되어 있다. 이건... 아무리 화장실 방식(?)에 익숙한 사용자래도 픽토그램을 무시하고 그냥 상식대로 -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점점 커진다든가 - 써보고 나서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5. 보일러 전원과 온도조절장치
Pull-down boiler switch
Boiler dials with opposite mental models
이 집의 전체 온수와 난방은 중앙집중식을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유독 화장실에 붙어있는 샤워부쓰에는 별도의 전기 보일러가 붙어있다. 그런데 첫날 도착해보니 온수가 나오지 않고, 보일러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거다. 다음 날 시설관리자한테 물어보니, 왼쪽 사진과 같이 천정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켜야 보일러에 전원이 들어가고, 온수를 쓸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저 "스위치"는 화장실 천정에, 그것도 샤워부쓰의 반대편에 붙어있었는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들 알아내서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는 왜 전원스위치가 본체에서 떨어져 벽에 붙어있는 경우가 이리 많은 거냐고! -_-=3 )

기껏 전원이 들어온 보일러에 붙어있는 두 개의 다이얼도 참 난감한 UI인 것이, 큰 다이얼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려서 물을 켜는 장치로 점점 돌릴수록 물 온도가 온수→냉수로 바뀌게 되어 있는 것이고, (물의 양을 조절하는 장치는 없었다 -_- ) 작은 다이얼은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물 온도를 냉수→온수로 바꾸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다이얼에 대한 조작 멘탈모델(시계방향으로 돌릴 수록 증가)을 물이 나오도록 켜는 조작개념이나 물 온도를 높이는 조작개념에 맞춰봐도, 온통 반대로 되어 있는 훌륭한 UI 오류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보일러만큼은 아무리 오래 써도 익숙해지지 않을 듯. ㅡ_ㅡa;;;


6. 변기 물내림 버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집만 그런 줄 알았더니, 회사 화장실도 왠만한 공중 화장실도 사진과 같은 이중 버튼을 사용하고 있었다. 작은 버튼을 누르면 '소변용'으로 물이 조금만 내려가서 물을 절약할 수 있고, 큰 버튼을 (혹은 두 버튼을 함께?) 누르면 ... 뭐 물이 많이 쏟아진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경우'에 따라 물내림의 양을 조절하는 레버나 버튼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영국에서는 이게 일종의 표준으로 자리잡아 버린 듯 하다.





... 적고 나서 보니 역시 참, 자잘하다. ㅡ_ㅡa;; 나중에 읽어보면 스스로도 "뭘 이런 걸 가지고 주절거렸다냐..."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게 이 글의 목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냥 언젠가는 손과 눈이 익숙해져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게 될 것 같아서, 5일 정도 겪어본 일상의 UI를 지금의 때묻지 않은(?) 눈으로 스크랩해 두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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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UI 디자인을 하려면, 어디서든 좋으니까 창구 업무를 맡아 보세요."

내가 종종 하는 얘기다. 특히 후배들이 "방학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요?" 라고 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더니, 결국은 아무도 물어보러 오지 않게 됐다. ... 그건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좋은 '인터페이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창구'라는 '시스템'과 '방문자' 간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게 들린 걸까?



만화 - 주로 일본의 - 에서나 등장하는 이상적인 점원이 있다. 성실하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은 기본. 손님을 관찰하지 않는 듯 하면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나서서 설명해야 할 때와 손님이 가만히 둘러보고 싶을 때를 알고 있다. 상품에 대한 지식이 해박할 뿐 아니라, 점포의 내력과 브랜드의 의미에 대해서도 마치 주인인 듯이 애정을 가지고,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짤막하게 설명해 주곤 하는... 오늘 딱 그런 분을 만났다.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 강남본점

강남역 7번출구쪽 뒷골목을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체인사업본부'들이 눈에 많이 띄이는데, 솔직히 간판을 보고는 그런 곳 중의 하나인 줄 알았다. 근데 한켠에 뭔가 디자인샵 같은 느낌도 나고 해서 들어가보니 이거 꽤 재미있다. 상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반은 '프랭클린 플래너'를 위해 할애하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이 속속 눈에 띄었던 거다.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 강남본점

알고보니 이 점포, '프랭클린 플래너'를 총판하고 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라는 소매업 체인의 본점이란다. 옆에 붙어있는 카페에서는 맛있는 (내가 Lavazza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와 다양한 종류의 차를 팔고 있었고, 몇가지 크기의 세미나실 같은 공간을 대여해 주는 듯 했다.

이 가게에서 팔고 있는 물건 중에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 생소한 브랜드인 <에코파티 메아리>의 'Recycled Sofa Leather' 시리즈였다. 말 그대로 폐기된 가죽소파의 쓸만한 부분을 모아서 제품을 만든 거다. ㅡ0ㅡ;;

Recycled Sofa Leather Pencil Case - by Mearry.com

이 <메아리> 브랜드는 명지대 교수님이 주축이 되어 만드셨다는 브랜드라고 하며, <성공가게>에서는 소파가죽 재사용 제품군(?) 외에도 버려지는 현수막으로 만든 편안한 느낌의 가방도 팔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별걸 다 재사용했다 싶은데, 나름 디자인이 편안하니 좋다.

무엇보다 점원이 점포와 진열상품에 대해서 이만큼 깊이로 설명해주는 곳은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참 재미있는 브랜드를 둘이나 발견했구나...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가죽필통을 골라 계산을 하고 종이봉투(비닐봉지가 아니다!)를 받아들고 나왔다.



그 점원 분에게서 '좋은 UI 디자이너'의 모습을 본 것은, 사실 한참 나중에 종이봉투를 열면서 였다. 아무 생각 없이 봉해진 스카치 테이프를 뜯다가, 테이프의 한끝이 살짝 접혀있는 걸 발견한 거다.

Adhesive Tape with Good UI

이렇게 테이프 한쪽을 접어서 붙이면 나중에 떼어낼 때 손톱을 세워 뜯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 지식을 이용하는 것은 주로 자신이 사용할 테이프를 보관할 때 나중을 위해서 살짝 접어놓을 때 뿐이지, 다른 사람이 뜯을 포장을 위해서 저렇게 마음과 수고를 쓴다는 것은 참 흔치 않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UI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도, 그 분이 제공해준 십여분의 경험은 여러가지로 배울 게 많은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가 오늘 고수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좀 친절한 점원을 만난 것 가지고 꽤나 오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오늘은 왠지 감상적인 하루여서 그랬나보다고 변명하고 싶다. 감상마저 UI 운운하는 건 참 웃기는 짬뽕이지만. ㅡ_ㅡa;;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 Leaflet on paper bag

어쨌든 재미있는 컨셉의 가게와 브랜드를 만난 덕택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UI 디자이너보다도 훌륭한 UX를 제공하고 있는 분을 만난 덕택에, 난 여전히 내 개똥철학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좋은 UI 디자인을 하려면, 창구 업무를 맡아 보세요." 라고 말이다.



P.S. 참고로 난 창구 업무를 해본 적이 없다. ㅋㅋ 그래서 내 UI가 늘 22% 부족한 걸까. ^^;;; 단지 군대에서 한동안 위병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위병 업무 중에서 마네킹 마냥 서있다가 경례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군부대라는 '시스템'과 다양한 방문자나 인근주민이라는 '사용자' 사이의 창구... 즉 '인터페이스' 역할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뿐이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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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의 CHI 2008에서는, 이전 연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별난 모습이 하나 있었다. 이전까지 말그대로의 전문분야 - HCI - 에만 집중해왔던 모습과 달리, 다음과 같은 웹페이지를 따로 개설해서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Sustainability on CHI conference... starting at 2008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학회에서 환경을 생각해서 이만큼의 뭔가를 주장한다는 건 사실 나에게 기이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차라리 전산/전자공학회여서 슈퍼 컴퓨터에 사용되는 전원을 줄이거나 발열량을 줄인다거나 한다면 모를까, HCI 혹은 UI가 환경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저 홈페이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학회에서 발표된 "Go Green"하기 위한 노력이란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 앞으로 CHI에서,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논문을 쓸 수 있다.
  • 학회장 한켠에서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 학회 개최지에서 생산된 음식(local food)와 썩는 플라스틱 용기를 쓴다.
  • 논문집에 재생지를 사용했다.
  • 학회에서 나눠준 가방을 모아주면 필요한 곳에 기증하겠다.
  • 학회장 어디에서나 종이/유리/깡통을 분리수거할 수 있도록 했다.

A slide from closure of CHI 2008 - saying returned conference bag will be donated to orphanages in Kenya
... HCI 하고는 아무 상관없잖아... OTL... 게다가 어떤 건 학회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그래서 학회가 마무리되면서까지 오른쪽 슬라이드를 내거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솔직히 새로운 UI 트렌드도 안 잡히고, 딱이 유행하는 UI 연구 소재가 떨어지니까, 이젠 딴 동네에서 유행하는 것까지 갖다붙이는구나..." 라는 거 였다.

그외에도 학회가 참가자들에게 택시보다는 버스를, 차량보다는 걷기를 종용하는가 하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머그잔을 들고 오라는 소리까지 하는 걸 보면서, 사실 CHI 학회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꽤 심각하게 하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몇개월 후, 다름 아닌 이번 7/8월호 <Interactions>지의 머릿기사에서 이 지속가능성을 다루는 것을 보고, UI 디자이너로서 이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좀 더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이 소위 식자들의 대화에 끼는 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싶어서 찬찬히 읽어 보았다.

Interactions July-August 2008, ACM, featuring "Changing Energy Use Through Design"

결국 Usability와 Sustainability 사이에도 고리는 있었던 셈이다. ㅡ_ㅡa;;

이 기사 - Changing Energy Use Through Design - 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 한 인용문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제품의 전력소모를 줄이려는 노력을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어떤 인터랙티브한 제품이 얼마나 효율적이든 간에, 디지털 제품이 소모하는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사용자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 Nonetheless, no matter how efficient an interactive product maybe, a large portion of energy consumed by a digital product is often governed by user behaviour.  

언뜻 들으면, 아항~ 싶기도 하다. 즉 우리 UI 디자이너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적은 사용자 행동패턴을 유도하는 그런 UI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Sustainability-friendly design과 Usability-friendly design이 평행선을 그릴 수 있을까?

이 기사에서 주장하는 내용(사실 상세한 항목들은 뜬구름과 갖다끼워넣기의 극치를 보여주는지라 인용하고 싶지도 않다)은 십수년 전의 universal design의 모토를 떠올리게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이 결국 궁극적인 편의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디자인된 제품은 일반 대중에게도 그 '편의성'을 상업적인 수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을 (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universal design의 이상은 몇가지 사례만을 제외하고는 그닥 현실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말았고, 그때처럼 "Sustainable UI"도 - 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 그런 환상을 열정적인 학생들에게 잠시 주입시키고 회사 입장에서는 의미 없는 포트폴리오를 양산하게 하다가 말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든다. (혹은, 내가 '사회생활'을 너무 오래 한 것일까? @_@;;; )

그나마 universal design 개념을 자의든 타의든(?) 적용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제품들은, 사실 디자인 본연의 관점에서 볼때에도 훌륭하고 완성도 높은 스타일링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 성공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Sustainable UI를 통해서 등장할 성공적인 "스타일링"은 뭐가 될까? 자연주의적인 재료선택이나 Zen 스타일, 혹은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20년전의 "Green Design"의 부활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느 것도, 사실 Usability와는 그다지 궁합이 맞을 것 같지 않으니 UI 디자이너들 한동안 참 머리 좀 아프겠다. 한동안 전산학에서 던져주는 주제를 따라서 유행을 만들고 그 안에서 헤매고 하더니만, 이젠 인문학으로부터의 주제에도 이렇게 휘청휘청하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ㅡ_ㅡa;;;



P.S.
사족으로, 위 <Interactions>지의 기사와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내 생각에 진짜 Sustainability와 Usability의 결합을 시도했던 한 연구를 소개한다. 이 논문 - Energy-aware User Interfaces: an Evaluation of User Acceptance - 은 2004년 CHI에서 발표된 HP Labs의 연구로, 어떤 종류의 평판 디스플레이(이를테면, OLED나 PDP가 그렇다)는 검은색 픽셀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에 착안해 다음과 같은 스크린들을 제안하고, 사용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수용도 acceptance 조사를 보고했다.

Energy-aware User Interface by HP Labs, CHI 2004

이 연구에서 제시된 화면 중 어떤 것은 분명 좀 오바한 측면이 없지 않고, 연구자들도 발표 중에 위 Fig.3을 보이면서 "이런 화면은 배터리가 거의 떨어져 간다든가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쓰일 것"이라고 부언한 기억이 난다.

비록 이 연구가 대단한 지속가능성의 철학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휴대기기의 배터리 수명을 화면을 꺼서 늘려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에 만일 Sustainability와 Usability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공로는 이번의 <Interactions>지 머릿기사가 아닌 이 HP Labs의 연구원들에게 credit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S.
그래도 Sustainability를 연구하는 친애하는 후배들은, 이런 나의 독설에 휘둘리지 말고 꼭 '우리 디자이너가 진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내 솔직한 심정이다. (알았지?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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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2.0

2008.07.08 13:44
낙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심심할 때마다 백지에 자신만의 로고타입 logotype (그래픽화된 글자로 이루어진 상표 같은 거...였던가;) 을 끄적이는 습관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아무 생각 없이 해적질해서 사용하던 글꼴들이 누군가의 피땀어린 노고라는 걸 알게 되고 (물론 그 누군가의 피땀이 얼마나 저렴하게 사업화되었는지도 알게 되긴 하지만), 뭐 부가적으로 상용화에의 합법성을 위해서 -_- 글꼴을 사서 쓰게 되면서, 아 물론 폰트 한벌 만드는 게 고생스럽고 신경써야 할 것 많다는 건 알겠지만 쫌 비싸다는 생각에 '직접 만들죠?' 하는 말이 목구녕까지 나올 뻔 한 때가 있다. 물론 그 경우엔 영문 알파벳 정도고, 사실 한글 글꼴 파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지고 말지만.

그래선지, 내 노트에 끄적거려진 로고타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낙서)를 보면 대부분 - 아마도 80% 이상 - 은 영문을 이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시각 요소가 훨씬 적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재미있는 사이트가 나왔다.

http://www.fontstruct.com/
FontStructor from FontStruct.com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Font Structor"에 들어가보면, 왼쪽에는 다양한 기하학적인 도형의 brick들이 있고 한켠에는 내가 이미 사용한 brick들이 따로 모이고 있다. 대표적인 그리기 도구인 브러쉬, 지우개, 네모그리기, 복사/붙이기, 선그리기, 이동 등이 제공되어 있고, Zoom in/out은 물론이고 pixel view를 위한 미리보기 창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다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해서 brick의 크기 비율을 가로 혹은 세로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고. (모든 brick의 크기가 한가지 비율로 함께 변하는 건 좀 아쉽다.)

뭐 어쨌든 이 사이트의 가장 훌륭한 점은, 바로 이렇게 플래쉬로 만들어진 "Font Structor"에서 방문자가 만든 글꼴을 True Type Font (TTF)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거다! 뭐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어중이 떠중이가 글꼴 디자인에 얼마만큼의 재능을 보여줄지 모르겠다 싶다면 다음 글꼴들을 보자.

Top Picks of User-Generated Font from FontStruct.com
Top Picks of User-Generated Font from FontStruct.com
Top Picks of User-Generated Font from FontStruct.com

사용자에 의해서 rating된 대략 순위권의 글꼴들이다. 다소 조잡한 게 끼어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 상용화된 글꼴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품질의 그림들이다. 이 "User-Generated Font" 글꼴들은 모두 TTF 파일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당연히 작성자(=폰트 디자이너)의 동의에 의해서, 모두 무료료 제공된다.



사실 이 웹사이트의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사이트가 바로 글꼴을 판매하는 FontShop.com 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게 되겠다. FontStruct의 정식 URL도 사실은 http://fontstruct.fontshop.com/ 이다. 글꼴을 파는 곳에서 이렇게 매출을 떨어뜨리는 짓을 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O_O;;

Web 2.0의 트렌드 중 하나인 Crowd-Sourcing... 혹은 UGC 혹은 UCC의 물결 속에서, 제품 디자인이나 UI 디자인이 그랬듯이 글꼴 디자인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나보다. 물론 FontStruct에서 디자인할 수 있는 글꼴은 영문 알파벳 대문자, 게다가 각 글자의 크기가 모두 동일한 소위 "네모 글꼴 modular font"로 제한되어 있고, 모든 글꼴 목록의 맨 아래는 훨씬 미려하고 전문적인 "탈네모 글꼴 non-modular font"가 하나씩 소개되어 본래의 글꼴 쇼핑몰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건 이 사이트를 만든 쇼핑몰 측의 입장에 의한 링크고, 사실 이 사이트의 FontStructor 플래쉬에서 세부적인 곡선 편집 기능을 추가하고, 앞뒤에 오는 글자에 따른 자간 조정 옵션을 추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26자 알파벳 대소문자에 숫자 10개 정도 넣는 작업은 꽤 많은 네티즌들이 자신의 폰트를 가지고자 한다면 기꺼야 감수할 분량이라고 보고, 여차하면 글꼴 산업이 통채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오버한다... OTL.. )


내 경우에는, Flickr.com 이 생긴 이래로 멋진 사진을 찾기 위해서 GettyImages.com 에 가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다. 둘 다 좋은 사진이 있고 잘 tagging 되어 있어서 검색이 쉬운데, 분량은 Flickr.com 이 월등히 많은데다가 저작권 보고를 위한 watermarking이 없고 대부분은 고해상도 원본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용도의 사용 +_+ 에는 유료인 GettyImages.com 보다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좀 눈에 띄는 글꼴이 필요한데 딱이 사서 쓸 수는 없을 때, 그냥 로고타입으로 쓰려고 개성있는 영문 네모 글꼴이 필요하다면, 앞으로는 글꼴 CD를 뒤지며 어느 회사와 계약을 하는 게 싸게 먹힐지를 고민하기보다 FontStruct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 근데 한글의 경우엔 - 우선 네모글꼴이라도 - 이런 사이트 하나 안 나오나? 물론 뭐 "글자모양이 워낙 다양하고", "조합되는 경우의 수가 많고", "고려해야 할 점이 많고" 하기도 하겠지만, User-Generated Font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익모델이나 최소한 ownership 모델을 제공한다면 뭐 말도 안 되는 소린 아니라고 생각한다. Flickr에 올리든 Tistory에 올리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가 보호해주는 만큼만 보호되는 거고, 뭐 도둑 많은 세상에서 좀도둑까지 일일히 신경쓰면 위염만 도질 뿐이다. ㅡ_ㅡa;;

(그러니까 여기 글 좀 맘대로 퍼가지 말았으면 하는디?
 ... 이야기하고 퍼가신 분은 제외 -_-+ )



P.S.
끝으로, 내가 만들어본 글꼴이다. -_-a;; 클릭하면 팝업이 뜨고, [View] 메뉴에서 Input Text 선택한 다음 영어 대문자로 ABCDEFG라고 넣으면 아래와 같이 Stan1ey라고 나온다. ... 그럼 뭐 굳이 넣어볼 필요는 없겠다. ;ㅁ; (아 물론 아래 글꼴을 TTF로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지만...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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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고백. 나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나온 "다치코마"라는 로봇을 좀 과하게 좋아한다. -_-;; 사무실 책상에는 작은 피규어 인형이 숨어있고, 집에는 조립하다 만 프라모델도 있다. 한동안 PC 배경으로 다치코마를 깔아두기도 했고.

Tachikoma Welcoming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인간적인 상호작용과는 전혀 동떨어지게 생긴 이 로봇(들)은 독특한 장난스런 말투와 동작,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없이 인간적으로 만드는 그 호기심으로 인해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다치코마를 좋아하는 건 거기에 더해서, <공각기동대>에서 다치코마가 맡고 있는 '캐릭터' 때문이다. 다치코마는 '대체로 인간'인 (세부 설명 생략;;) 특수부대 요원을 태우고 달리거나, 그들과 함께 작전에 투입되어 어려운 일(이를테면, 총알받이)을 도맡는다. 이들은 인간에 준하는 지능을 갖고 인간을 돕지만, 자신들이 로봇임을 알고 있고 부상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불필요함을 안다.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다치코마의 집단지능이 높아지고, 이들은 점차 사유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대화를 하게 된다.

Tachikoma Discussing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왜 인간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가?"
"전뇌를 가진 인간이 왜 여전히 비효율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로봇에게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남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한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담론'들은 아주 조금만 과장하자면, 이미 우리 생활에 들어와있는 많은 자동화 기기와 Intelligent UI의 이슈인 Autonomy vs. Control 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이다. 청소로봇의 사례까지 갈 것도 없이, 사람이 가까이 가면 열리는 자동문에서부터 이러한 이슈는 크고 작은 사용성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소재가 된다. 실제로 <공각기동대>의 어떤 에피소드들은, 보다가 자꾸 HRI 이슈가 등장하는 바람에 몇번이나 되돌려 보곤 한다.


실은, 이 다치코마를 간단한 대화와 제스처가 가능한 정도로 만든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한번 적어 보았다.



물론 위의 '더미'에는 별 관심이 없다. (판매용이 아니라고도 하고;;) 하지만 미래에 다치코마의 머리가 될 인공지능의 발달과, 그 훨씬 전단계인 오늘날의 상용화된 인공지능들 - 다양한 센서와, 단순하더라도 무언가를 판단하는 중첩된 if 문들 - 은 아무래도 굉장히 많은 숙제를 던져주려고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제는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주 가까우니까 말이다.

Tachikoma Exhau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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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터치' 유행은 GUI의 작은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GUI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던 digitizer가 처음에 화면 위에서 직접 위치를 입력하는 것 - light pen은 1957년부터 쓰였다고 한다 - 에서 시작했다가, 마우스(1963)그래픽 타블렛(1964)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공간적으로 매핑되는 다른 표면에서 간접적으로 입력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터치패널을 화면에 직접 장착한 터치스크린(1971)이나 최근의 타블렛 LCD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생각해보면, 최근의 터치 UI는 사실 딱히 새로운 UI의 흐름이 아닌 기존 GUI 입력 방식 중 유난히 주목 받고 있는 한 가지일 뿐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Light pen
First computer mouse
Early digitizer tablet, or graphics tablet
Wacom Citiq 21UX, tablet LCD screen


Apple iPhone에 적용되어 있는 "터치 UI"가 훌륭한 이유는, 사실 터치 입력을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 심지어 손가락 기반의 터치 UI를 디자인할 때의 기준에 대해서는, 기존의 PDA UI 관련연구에서 도출된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 - 기존 GUI에 없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GUI에 물리적인 metaphor와 tangibility를 좀더 제공하고, 그로 인해 몇가지 widget들을 창안하고 상업적으로 증명했다는 데에 있겠다. (이것도 어쩌면 상업적인 목적으로 UI에 이름 붙이기의 일환일지도...)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는 터치 UI에 관한 글들이 죄다 "Tangible UI" (이하 TUI)로 분류되어 있고, 여기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사실 이게 대세를 거스르기 위해서 조금 과격하게 왜곡된 생각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터치 다음의 UI가 뭘까?에 대한 이전 글을 쓰고 나서 (정확하게는, 쓰다가 지쳐버려서 내팽개치고 나서) 이 분야에 대한 의견이 종종 눈에 띈다. 내가 앞의 글의 두번째를 쓰면서 가지고 있던 키워드는 소위 'deep touch' 라는 거 였는데, 사람들은 좀더 확실하고 커다란 next step을 지향하고 있는 듯 하다. 연달아 눈에 밟히길래 한번 정리해 봤다.


(1) 현실기반 인터랙션 (RBI: Reality-Based Interaction)
2006년 CHI 학회에서 논의를 시작해서 지난 4월의 CHI 학회에서 정리된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생활하면서 습득한 주변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그대로 확장하여 사용할 수 있는 상호작용"을 뜻한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직관적으로 tangible interaction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지만, RBI를 'framework'으로 정리하면서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범위는 TUI를 포함하면서 그보다 훨씬 넓다.

주로 미국 Tufts University 사람들로 이루어진 RBI 연구자들은, UI는 명령어 방식(1세대; command-line)에서 그래픽 방식(2세대; GUI or WIMP)으로, 그리고 현실기반 방식(3세대;RBI)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금 너무 단순화되는 과정에 중요한 몇가지가 빠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렇게 GUI 뒤를 이을 RBI는 다음과 같은 체계(framework)로 연구개발될 수 있다고 한다.

Four RBI Themes

위의 RBI 연구주제에서 각각의 의미와 그것이 포괄하고 있는 UI 연구사례는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위 논문과 학회발표에서 요약함)

① Naive Physics (NP)
사람들이 물리적 세상에 대해서 공통의 지식을 갖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으로, TUI 에서 특별한 형태의 슬롯을 사용해서 사용방법을 가이드하는 것이라든가, Apple iPhone에서 적용한 UI (터치를 이용해서 물리적 조작을 모사한 것이라든가 중력방향을 인식하는 것 등)가 해당된다.

② Body Awareness & Skills (BAS)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신체를 움직이고 조정하는 기술을 갖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서 몸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실제로 특별한 시설이나 런닝머신(treadmill)을 걷게 하는 것과 같이 전신을 이용한 UI 들이 포함된다.

③ Environment Awareness & Skills (EAS)
주변 환경의 존재를 인지하고 환경 안에서 대안을 찾고, 조작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음을 전제한다. 많은 가상현실(VR), 혼합현실(MR), 증강현실(AR)에서 공간적 조작을 보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widget들이나, 위치기반서비스(LBS?)와 같은 맥락 기반(context-awareness) 연구 등이 이 분류에 포함된다.

④ Social Awareness & Skills (SAS)
공간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파악하고, 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를테면 TUI는 다른 사람과 작업맥락을 공유(CSCW?)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며, Second Life와 같은 가상세계(VW) 혹은 가상환경(VE)에서도 아바타를 통해 이러한 방법을 지원한다.

... 조금 과하게 넓다. -_-;;; 결국 현재 Post-GUI (혹은 논문이 주장하는대로, Post-WIMP)의 대안으로서 연구되고 있는 모든 UI를 실용화가 멀든 가깝든 모두 하나의 지식체계 안에 몰아넣고 이해해 보자는 건데, 조금은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저자들의 주장처럼 이렇게 함으로써 "중구난방으로 연구되는 각각의 주제를 하나의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건 십분 동의하지만, 연구 자체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발표를 듣는 내내 들었다.

한가지 재미있었던 점이라면, 이런 다양한 접근 방식을 "현실기반 reality-based"라는 키워드로 묶음으로써 UI 설계의 방향성 같은 게 하나 제시될 수 있다는 거다.

RBI as Artificial Extension of Reality

RBI as Artificial Extension of Reality - Examples

발표에서 말한 "Real + Extension"이라는 것은, RBI를 위한 UI 설계에서는 일상의 행동은 그 원래의 역할에 부합하는 기능과 연동되고, 그보다 좀더 확장된 행동을 통해서 일상행동으로 할 수 없었던 슈퍼-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위 슬라이드에 예시되었듯이 대상을 좀더 집중해서 주시하는 것으로 투사(X-ray vision) 기능을 구동한다면 별도의 메뉴나 버튼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interaction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발표 직후의 질의응답에서 이러한 analogy가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없음을 지적하는 질문들이 꽤 격하게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RBI 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 UI 설계 방향성 중 하나는 되리라고 생각한다.


(2) 유기적 사용자 인터페이스 (OUI: Organic User Interface)
CACM 200806 - Organic User Interfaces
미국 전산학계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Communications of ACM> 잡지의 지난 6월호에서는, OUI라는 개념을 커버 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ACM: Association of Computing Machinary의 약자로, 전산 분야의 가장 큰 학술단체) 이 이슈의 커버스토리는 유명한 여러 연구자들이 한 꼭지씩 맡아서 기사를 올렸는데,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Organic User Interfaces (Communications of ACM, June 2008)

- Introduction / Roel Vertegaal and Ivan Poupyrev
- The Tangible User Interface and Its Evolution / Hiroshi Ishii
- Organic Interaction Technologies: From Stone to Skin / Jun Rekimoto
- Emerging Display Technologies for Organic User Interfaces
  / Elise Co and Nikita Pashenkov
- Organic User Interfaces: Designing Computers in Any Way, Shape, or Form / David Holman and Roel Vertegaal
- Sustainability Implications of Organic User Interface Technologies: An Inky Problem / Eli Blevis
- Designing Kinetic Interactions for Organic User Interfaces / Amanda Parkes, Ivan Poupyrev, and Hiroshii Ishii
- What Makes an Interface Feel Organic? / Carsten Schwesig
- Interactions With Proactive Architectural Spaces: The Muscle Projects / Mas Oosterhuis and Nimish Biloria
- Dynamic Ferrofluid Sculpture: Organic Shape-Changing Art Forms / Sachiko Kodama

첫번째 글("Introduction")에 따르면, OUI는 e-Paper나 다른 flexible display를 중심으로 얇고 작고 유연해진 전자소재(배터리, 스피커, SoC, 회로기판 등)에 의해 기대되는 무한한 자유도가 HCI 디자인에 미칠 영향을 예견한 개념이다. (사실 정확한 '정의'는 나와있지 않고, "Such phenominal technological breakthroughs are opening up entirely new design possibilities for HCI, to an extent perhaps not seen since the days of the first GUIs." 라든가 "A future led by disruptive change in the way we will use digital appliances: where the shape of the computing device itself becomes one of the key variables of interactivity." 라는 표현이 그나마 가까운 듯 하다.)

같은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OUI의 연구주제는 다음과 같다. (역시 요약)

① Input Equals Output: Where the display is the input device.
마우스나 조이스틱이 아닌 터치스크린으로 UI를 보다 직접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을 언급하며, 멀티터치나 압력센서 등 터치스크린 입력을 좀더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이 해당한다. (위 기사 중 Jun Rekimoto의 글 참조)

② Function Equals Form: Where the display can take on any shape.
기존의 사각평면 형태의 화면이 아니라, 그 용도에 따라 필요한 모양으로 재단할 수 있는 화면으로 e-Paper 외에도 프로젝션, OLED, EPD, 광섬유, 혹은 전기적으로 발광하는 도료 등을 언급하고 있다. (위 기사 중 David Holman 글과 Elice Co의 글 참조)

③ Form Follows Flow: Where displays can change their shape.
사용 순간의 작업내용과 상황에 따라 제품이나 화면의 크기와 형태가 바뀌는 제품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위 기사 중 Amanda Parkes의 글 참조. Kas Oosterhuis의 글에서는 심지어 형태가 바뀌는 건물도 나온다.)

... 사실 글 제목과 각각의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한 저자의 이름들을 봐서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이 일련의 "Organice User Interfaces" 기획기사를 아무리 꼼꼼히 읽어봐도 기존에 자신들이 하던 연구주제 - 이시이 교수님의 TUI, 레키모토의 AR, Poupyrev의 3D UI - 를 한번 더 큰 틀에서 묶고자 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사실은, 묶을까 하고 모였다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각자가 골백번 했던 똑같은 이야기들을 그냥 스크랩해 놓은 느낌이라는 게 더 맞겠다. OUI라는 개념에서 뭔가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래와 같은 도표가 나오긴 하지만 사실 다른 기사의 내용과는 엄청나게 상충되는 관점이다. -_-;;;

from GUI to OUI - by Display Breakthrough

그나마 이 OUI 기사 중에 맘에 드는 (생각이 일치하는) 대목은, Carsten Schwesig의 "What Makes an Interface Feel Organic?"이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사실은 이 기사들 중 거의 유일하게 기존의 natural한 UI와 organic한 UI가 뭐가 다르길래? 라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 나름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Carsten에 따르면, "유기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는 다소 다르지만 - 물리적 개체나 그 은유에 집중하기보다 물리적 현실과 인간적 경험에 대한 아날로그적이고 지속적이며 변화하는 속성을 강조하는 접근이다."

Organic interface design represents a less literal approach which, rather than focusing on physical objects or metaphors, emphasizes the analog, continuous, and transitional nature of physical reality and human experience. By combining sensitive analog input devices with responsive graphics, we can create user experiences that acknowledge the subtleties of physical interaction.
(from "What Makes an Interface Feel Organic?" by Carsten Schwesig)

위 인용문에서와 같이, Carsten은 이러한 나름의 정의(?)와 함께 Sony CSL의 Gummi Prototype, Nintendo의 Wii, Apple의 iPhone 등을 예로 들면서 아날로그 센서를 통한 미묘한 조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사실 내가 HTI를 떠올리면서 가지고 있던 미래 UI의 모습에 상당히 근접한다. 센서와, 물리적인 피드백과, 자유로운 정보표시 방법과... 그러고보면 이 OUI라는 개념도 어느 정도 공감되긴 하지만, 역시 이 글 외에는 전혀 개념을 통일하려는 노력이 보이지도 않는 다는 것이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이상과 같이 "GUI 이후 UI"의 주도권을 잡을 두가지 개념이 고작 2개월 간격으로 연달아 제시되는 것을 보면서, 사실 이번만큼은 예외적으로 좀 착잡해지는 기분이다. 왠지 몰라도 내 눈에는, RBI도 OUI도 뭔가 이슈가 필요하다는 니즈에 의해서 준비되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쥐어짜낸 개념으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지난 몇년간 유행하던 연구주제들을 그냥 엮어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framework에 구겨넣은 게 빤히 보이고, 그것마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삐져나오고 헐겁고...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읽으면 읽을수록 난리도 아니다.

결국, 블로그를 핑계삼아 정리하면서 내려진 나의 결론은:

① 세계 모든 UI 연구자들이 "다음 이슈"를 찾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② 이미 나온 것들 - TUI, AR, e-Paper, ... - 외에는 특별한 게 없다.
③ 결국 적합한 기술을 찾아 그 중 하나를 상용화하면, 그게 "다음"이 된다.
④ Multi-Touch를 봐라.
⑤ 따라서, HTI 연구가 중요하다.

이게 바로 "我田引水"라는 거다. 움홧홧! s(^0^)z


P.S. (자수하여 광명찾자) 근데 글의 시작과 결말이 미묘하지 들어맞지 않는다? ㅋㅋㅋ 뭐 맞추려면 맞추겠지만 말 바꾸기 귀찮다. ㅡ_ㅡ 또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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