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운동삼아 집앞의 강가를 따라서 길이 끊기는 곳까지 가봤다. 한 2km 가니까 바로 끊기는 바람에 그다지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ㅡ_ㅡa;; 이 Tay라는 이름의 강은 서울의 한강보다 조금 넓을까 싶은 곳으로, 가끔 낚시하는 사람도 보이지만, 솔직히 여기서 잡은 물고기를 먹고 싶을까 싶다. 강 하구로 좀더 내려가면 해달도 있는 것 같은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거기까지 뻗어있지 않은 것 같다.

Map of the River Tay

이 도시 - 던디 Dundee - 는 "발견의 도시 City of Discovery"라는 이름으로 관광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 이름을 자청하는 건 오래전 이 도시에서 만들어진 배의 이름이기도 해서지만, 도시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발견의 역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강변을 따라 가다보면 그 역사를 알려주는 홍보물 같은 걸 잔뜩 세워두었다.

History of Dundee - Signs along the riverside of Tay

근데, 이 입간판들의 내용이 좀 묘한 데가 있다. 그동안 두어번 강가를 따라 걷거나 뛸 기회가 있었는데, 그동안 파악하기론 모두 5개의 자랑스러운 발견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History of Dundee - RRS Discovery
History of Dundee - the Fifies
History of Dundee - the Tay Whale
History of Dundee - World Record Attempt
History of Dundee - the Tay Bridge

RRS Discovery: 남극탐험을 위해 건조된 연구선 디스커버리호는 얼음을 뚫고 나가는 배를 만들 수 있는 던디의 조선공에 의해서 1901년에 만들어졌다. 2년 후 이 배는 얼음에 둘러싸여 좌초되었고, 얼음에 갇혀있는 동안 있었던 사건들은 많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던디에는 이 사건에 대한 박물관인 Discovery Point도 있고, 퇴역한 디스커버리호도 바로 여기에 정박되어 있다.

Fifies: 1873년부터 1966년까지 Tay 강을 건넜던 페리 서비스로, Tay Road Bridge가 건설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지만 던디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고 한다.

Tay Whale: 낚시배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된 고래시체가 던디의 기름상인에게 팔려 한동안 마당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구경시켜 주다가, 고래전문가에 의해서 해체되었다고 한다.

Mercury: 무착륙비행 기록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머큐리호는 던디에서 아프리카 남단의 케이프 타운을 향해서 출발했지만, 악천후로 조금 못 미쳐 내리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Tay Bridge: 이 다리를 지은 철도회사 사장은 1879년 그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지만, 같은 해 연말에 허리케인 속에서 다리가 무너져 기차가 강물에 떨어지면서 승객이 모두 죽었고, 사장은 다음 해 자살했다.

... 뭐가 발견의 역사냐! 이건 마치 실패의 역사 같은 느낌이잖아. ㅠ_ㅠ 강변을 따라 가면서 이걸 하나하나 읽고 있자면, 다음엔 뭔가 그럴 듯한 역사가 나오겠지 하는 절박한 마음까지 생길 지경이다. =_=;;;

McGonagall Walk along with river Tay
게다가 강변을 따라 난 산책로 중간쯤에는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시인인 William McGonagall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맥고나갈 워크"라는 길이 있는데, 그 시인의 작품인 <Beautiful Railway Bridge of the Silvery Tay>가 길을 따라 새겨져 있다. 다리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한 이 시를 읽으면서 한쪽으론 그 다리가 무너진 재앙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만들어놓은 센스는 좀 이해불가랄까. (그나저나, 적다보니 이 시인의 이름이 익숙해서 찾아보니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맥고나갈 교수 덕택인 것 같다. -_-a )

좀 오래 지내면 이 도시의 가치관에 젖어들려나 모르겠지만, 일단 이 도시의 소위 자랑거리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생각은 이렇다.




그건 그렇고, 갈매기 목이 잔뜩 움츠러든 걸 보니 이제 확실히 가을인가보다. 9월 들어서는 확실히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부는 게 느껴진다. 여기에 온지도 벌써 한달. 날씨도 바뀌고 요리솜씨도 늘고 있다. 정말 살게 되니까 또 살아지는구나.

Seagulls in Cold WindSalmon Steak with Grilled Mushroom & Salad

뭐, 소시적부터 적응력 하나만큼은 인정받은 바퀴벌레같은 인종이라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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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외출장에서는, 오가는 모든 비행기 편이 에어 프랑스 Air France였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고, 특히 음식에 관한 자부심은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르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대표 비행사에서 제공하는 기내식은 어떨까... 사실 예약된 비행기표를 받아보는 순간부터 내심 기대가 많았다.

My first 'Air France' meal

하지만 정작 받아본 첫 기내식은 뭐랄까... 일단 음식 이름은 불어가 반이었지만 결국 다른 항공사에서 주던 음식과 전혀 다르지 않았고, 게다가 출국편에서는 프랑스 요리에 김치가, 입국편에는 튜브에 담긴 짜먹는 고추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늘을 나는 프렌치 레스토랑은 아마 first class에 앉아야 가능한 모양. 물론 서울~파리를 오가는 한국인들을 배려한 조치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음식이 그만큼 세계화되었다는 좋은 뜻이긴 했지만, 조금 색다른 걸 기대했던 입장에선 솔직히 실망이었달까. 그래도 와인은 꽤 좋았기 때문에 일단 만족했다.


그렇지만, 예상 외의 소득(!)이 있었다. 보통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것도 무척 신경써서 고른 듯한 어두운 은색(게다가 '펄'이 들어가 있는!)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눈에 확 띈 그 형태에는 제품 디자이너의 피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포크와 스푼은 삼각형으로 접혀 있어서 힘을 지지할 뿐 아니라 잡기도 좋게 되어 있었고, 나이프는 윗부분이 우아하게 휘어있는 형태로 역시 기능뿐 아니라 미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Plastic Silverware of Air France (upper side)
Plastic Silverware of Air France (lower side)
Plastic Silverware of Air France (grip)


이 눈에 띄는 모습을 보고 어딘가 숨어있을 '메시지'를 찾는 것은, 제품 디자인을 배우던 시절부터 소위 '직업병'이라고 했던 습관이고, 그 덕택에 모처럼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Signature of Philippe Starck on Air France Silverware

필립 스타크. Philippe Starck... 이 아저씨, 스스로는 "디자인을 죽였다"며 스스로 anti-designer로 활약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직도 살아있는 산업 디자이너 중 최고 지위를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의 자존심인가보다. 영국에서 시작해서 미국에서 꽃을 피운 산업 디자인은 현대 문명에 있어서 진정한 contemporary art 라고 할 수 있을진대, 문화의 중심이라는 측면에서 글자 그대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프랑스인에게 있어서 프랑스인으로 산업디자인계에서 짱짱하게 활동 중인 필립 스타크의 존재는 당연히 idolize될 수 밖에 없겠지.

뭐 어쨋든 이 식기들이 (최소한 그 일부만은) 필립 스타크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부터, 영국까지 오가면서 탑승한 4번의 Air France와 6번의 기내식은 그 이름을 발견하고 그의 작품을 수집하기 위한 일종의 퀘스트가 되어 버렸다. 기내식을 받으면 일단 그릇과 식기를 하나씩 뒤집어 보고, 이름이 발견되면 되도록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사용한 후 잘 닦아서 모았다. (좀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스튜어드/스튜어디스들은 그냥 이상한 동양인 정도로 생각하고 이해?해 준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렇게 모인 필립 스타크의 흔적은 꽤 많았다. 다양한 크기의 포크와 나이프, 스푼, 그리고 간식을 담는 상자까지.

Starck's works on the floor of my room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정보의 보고인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식기 세트 - LUX line - 는 이외에도 종류가 훨씬 많았고, 아니나 다를까 first class에 탑승해야 모두 사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저 잔들... 샴페인이나 와인을 따라도 손색이 없는 형태이면서도 바닥에서 올라온 '뿔'에 꼽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비행기가 좀 흔들려도 쉽게 넘어지지는 않을 것 같이 생겼다. 우왕. 흑... 뭐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지만, 언젠가는 꼭. -_-a

LUX Line silverware, designed by Philippe Starck
→ (c) Photo via Flickr/Kevo Thomson



얹혀있는 주제도 주제인지라 무척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녀온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나랑 별 인연이 없는 줄 알았던 필립 스타크 선생이 마련해준 보물찾기 이벤트 덕택에 작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여행... 이 외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면 좋겠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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